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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56

장소(張韶)반란사건: 당나라때의 가장 웃기는 반란 글: 유병광(劉秉光) 역사의 큰 흐름에는 온갖 일들이 다 벌어졌다. 당경종(唐敬宗)때 아주 웃기는 반란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그것이 웃긴다고 하는 이유는 우두머리가 문신무장도 아니고, 황친국척도 아니고, 군벌제후도 아니며, 진승, 황소, 이자성, 홍수전처럼 용맹하고 강경한 농민반.. 2013. 6. 10.
송나라때의 관직명칭 글: 이개주(李開周) 양회기간동안 정협위원은 기구명칭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펼쳤다. 어떤 새로운 부서는 명칭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우기도 어렵고,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바로 더욱 길고 더욱 외우기 어려운 기구명칭들을 발굴해냈다. 예를 들어, "광.. 2013. 5. 4.
한위조(韓魏趙)에 멸망한 지백(智伯)은 소인인가 군자인가? 글: 완여청양(婉如淸揚) <자치통감>을 보면 삼가분진(三家分晋)때, 약소한 한,위,조가 오히려 강대한 지백을 멸망시킨 후, 사마광의 말은 아주 재미있다. 사마광은 말했다: "지백이 망한 것은 재승덕(才勝德, 재주가 덕보다 뛰어났다)이다.". 그후 사마광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내용.. 2013. 4. 13.
양광(楊廣)과 인수궁의 변(仁壽宮之變): 수양제는 어떻게 추화되었는가? 글: 고월(高月) 많은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양광은 인수궁에서 선화부인을 집적대었다고. 그리고 그와 양소가 주고받은 사신이 양견의 수중에 잘못 전달되어, 양견이 진노하여 다시 양용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양광이 시부간모(弑父奸母)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헛소리이다... 2013. 4. 13.
한소제(漢昭帝) 죽음의 수수께끼 글: 유병광(劉秉光) 유불릉(劉弗陵)은 한무제(漢武帝)의 어린 아들이고, 8살에 등극하여, 21세때 붕어했다. 13년간 재위했으며, 역사상 한소제로 불린다. 한소제의 죽음에 관하여, <한서.소제기>와 <자치통감>은 모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원평원년(기원전74년), .....여름사월 계미.. 2013. 4. 13.
수양제 양광(楊廣)은 어떻게 태자의 지위를 빼앗았는가?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진왕(晋王) 양광은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의 차남이다. 남방의 진(陳)을 멸하고, 북방의 돌궐에 항거하는 전쟁에서, 그는 큰 공을 세웠다. 정치적인 자본이 계속 증가하면서 영준하고 총명하며, 문장이 뛰어나고, 겉으로는 심침엄근(沈沈嚴謹)한 그는 실은 허부.. 2013. 4. 2.
유하(劉賀): 27일만에 황제에서 쫓겨난 황당한 인물 글: 유병광(劉秉光) 황제가 빨리 죽으면서, 자식이 너무 어리거나 자식이 없어서, 승계문제로 정치적인 혼란이 조성되는 경우가 있다. 서한때 발생한 '곽광폐립(霍光廢立)"사건은 그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원평원년(기원전74년), 한소제 유불릉이 사망하고, 그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2013. 3. 13.
진후주(陳後主)와 장려화(張麗華): 홍안화수(紅顔禍水)인가?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세상사람들은 모두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귀비(貴妃) 장려화는 진나라를 망하게 만든 홍안화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후주가 만든 궁정가무곡인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는 망국지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당시인 두목(杜牧)은 유명한 <박진회>.. 2013. 3. 13.
정관지치(貞觀之治)의 진상 글: 역사상나사사(歷史上那些事) "정관지치"는 중국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는 위대한 시대이다. 이 시대에 인민들은 자신의 생업에 편안하게 종사하고,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춤추었으며, 황제는 자상하였으며, 백관들은 자신의 직분을 잘 지켰다. 쌀독 안에는 다 먹을 수 없을 만큼이 쌀.. 2013. 2. 4.
수양제는 어떻게 죽었는가? 글: 구양박문(歐陽博文) 죽음은 사람의 인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생의 마지막 문턱이기도 하고,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백성의 생사는 문화적인 의미에서 대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저 개미와 같이 썩고 초목과 같이 문드러진다. 그러나 대인물들 특히 제왕군.. 2012.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