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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56

자치통감(資治通鑒): 차마 읽어내려갈 수 없는 잔인함 글: 장풍(蔣豊) 일찌기 위대한 인물인 모택동이 거작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비록 마음 속에 약간의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지도자는 일반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나도 일찌기 <<자치통감>>을 한번 통독해봐야겠다고 .. 2009. 12. 11.
당중종(唐中宗) 이현(李顯) 사망의 수수께끼 글: 유계흥(劉繼興) 무측천의 철혈통치가 끝나고 당현종(唐玄宗)의 개원성세(開元盛世)가 도래하기까지의 8,9년간은 상층통치계급이 흔들리고 동요하던 시기였다. 평범한 황제인 당중종 이현은 전형적인 "현부양부(賢夫良父)"였다. 후궁에서는 위후(韋后)의 권력남용을 종용하고, 딸인 안락공주(安樂.. 2009. 10. 29.
자치통감의 마지막 이야기 글: 장풍(蔣豊) <<자치통감>>(중화서국 1956년 6월 제1판)의 마지막 권은 294권이다. <<자치통감>>에 기록된 마지막 해는 959년이다. 왜 끝자리를 맞추어 960년까지 쓰지 않았을까? 당연히 당시는 중국이 서력기원을 사용하지 않았고, 사마광(司馬光)은 960년이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 2009. 10. 26.
무측천(武則天)이 무자비(無字碑)를 남긴 이유는? 글: 침묵과담(沈默寡談) 산서성 건현(乾縣)의 현성 북쪽에 있는 양산(梁山)에 위치한 건릉(乾陵)은 당고종 이치와 여황제 무측천의 합장묘이다. 중국역대제왕의 능원중 유일한 부부황제 합장묘이다. 묘앞에는 두 개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술성기비(述聖記碑)"로 무측.. 2009. 2. 12.
황소(黃巢)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 황소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으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오래전부터 여러가지 서로 다른 기록이 남아 있다. 우선은 당나라역사에 대하여 적은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재가 서로 자살과 타살로 다르게 기재되어 있.. 2006. 2. 6.
진시황(秦始皇)은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인가? 진시황의 신세내력에 대하여는 수천년간 여러가지 설이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진시황은 여불위의 사생아라는 전설이 가장 널리 퍼져있다. 이것은 <<사기>>와 <<자치통감>>등 권위있는 역사서에도 모두 기재되어 있고, <<한서>>의 작가인 반고는 직접적으로 진시황을 여정(呂.. 2006.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