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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당중종독살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15. 1. 14.

글: 문방장궤(文房掌櫃)


신구 <당서>와 <자치통감>에 따르면, 당중종 이현(李顯)은 독상당했다. <자치통감>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기상시 마진객은 의술로, 광록소경 양균은 요리를 잘애서 모두 궁정을 출입했다. 위후와 사통했고, 이 일이 누설되면 주살당할까봐 두려워 한다; 안락공주는 위후가 임조칭제하면 자신이 황태녀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서로 공모하여, 떡에 독을 넣어 올린다. 육월, 임오일, 중종은 신룡전에서 붕어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위황후의 두 애인인 양균과 마진객은 황후와 사통한 일이 들통날까 겁을 냈고, 위황후는 황제가 되고 싶었고, 안락공주는 모친이 먼저 황제가 되면 자신이 황태녀가 되려고 했다. 이들은 모두 당중종이 눈엣가시라고 여긴다.


그래서,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모의하였고, 양균과 마진객은 전문인 장기를 살려서 한 명은 떡을 만들고, 한명은 그 안에 독약을 넣는다. 몇 사람이 분업하고 협력하여, 한꺼번에 맛있는 독든 떡을 만들어 낸다. 이 독이 든 떡은 어떻게 중종에게 보내어 졌는가? <자치통감>에는 적어놓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영화 드라마에서 상상할 여지를 충분히 주었다.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버전은 당중종이 한밤중에 상소문을 살펴보는데, 돌연 배가 고팠다. 뭔가 먹고싶어할 때, 안락공주가 웃으면서 들어온다. 손에는 떡이 들려 있었다. 부황이 배고프실까봐 야참을 들고 왔다고 말한다. 당중종은 딸이 이렇게 관심을 보이자 크게 감동하여 한꺼번에 다 먹어버린다. 그 결과 먹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이 오고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목숨을 잃는다. 대체적인 스토리는 <수호전>에 나오는 반금련이 무대랑을 독살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이런 견해의 합리성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자치통감>은 경룡4년의 오월 즉 당중종이 죽기 1달전에 특별히 이런 내용을 넣었다: "오월, 정묘일, 허주사병참군 언사사람 연흠융이 상소를 올려 말하기를, '황후가 음란하고, 국정에 간여하며, 종족이 강성하다; 안락공주, 무연수, 종초객은 종사를 위험하게 하려 한다'" 누군가 황후의 음란과 공주, 부마와 대신의 모역을 고변한다. 이것은 대사이다. 중종은 당연히 고발인인 연흠융을 불러서 직접 물어본다. 만일 그의 고발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국가의 정치적 재난이다. 반드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당연히 무고라면, 고발자 본인은 만겁불복(萬劫不復)이다. 중종의 엄한 추궁에, 연흠융은 자신이 고발한 내용을 견지하며 대의늠름했다. 기실 당중종은 다신의 처와 딸에 대하여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궁중의 이런 스캔들을 지방의 하급관리까지 모두 알아버렸다.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흠융을 풀어준다. 생각지도 못하게 연흠융은 대전을 나가자 위황후의 일당인 재상 종초객이 보낸 사람에 의하여 대전앞에서 살해당한다. 의롭게 할말은 다한 신하의 피가 대전이 계단을 물들인다. 중종은 비록 그 어느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처와 딸에 대하여 대단한 분노를 나타낸다. 위황후와 그녀의 일당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책을 생각한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대책을 생각해낸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당중종을 독살하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권력을 빼앗고, 죄행을 감추기 위하여, 한 명은 남편을 모살하고, 한 명은 부친을 모살했다. 정말 인륜도덕이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고, 그 죄는 죽어서 마땅하다. 다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는 모두 승리자가 쓴다는 것을.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후궁궁중투쟁의 실패자이다. 발언권을 다 빼앗겼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은 정말 그렇게 된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로, 비록 위황후와 안락공주가 권력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비록 사서에 당중종이 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없지만, 그리고 이때 사망한 것이 약간 돌연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현재의 모든 사서는 입을 맞춘 듯이 중종은 처와 딸에게 독살당한 것이라고 하지만, 다만 필자는 그래도 중종이 분명히 독살당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중종이 독살당한 일에 대하여 <구당서>는 기재하고 있지 않다. 그저 시간이 더욱 이후인 <신당서>와 <자치통감>에 나온다. <구당서>는 단지 사람들이 안락공주와 태의가 모의하여 당중종을 독살하였는지 의심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위후가 중종을 독살하는 것은 매우 멍청한 짓이다. 그녀가 이전에 권력을 조종한 것을 보면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외에 위후는 이융기에게 죽은 후, 여전히 일품고명부인의 신분으로 예우를 받아 매장된다. 만일 그녀가 정말 흉수라면,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신당서>와 <자치통감>의 위후가 당중종을 독살한 사건에 대한 기록은 아주 엉성하다. 역사를 짜맞춘듯한 혐의가 있다.


그것은 이런 의미이다. 위후가 종초객과 혼외연애를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여러 명의 남자들과 사통했다. 그녀의 침대에 오른 남자들 중에서, 산기상시(황제 곁의 시종) 마진객은 의술에 정통하고, 광록소경(요리담당) 양균은 요리의 고수이다.


위후는 마진객, 양균과 사통한 일이 당중종에게 발각되면 그녀를 죽일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황태녀가 되고자 하는 안락공주와 상의하여, 마진객, 양균과 공동으로 독떡을 만든다. 그후 다시 안락공주가 당중종에게 먹인다. 당중종이 먹은 후에 즉시 급사한다.


위후의 음란함을 당중종이 몰랐을 리 없다. 황후가 한번 사통하는 것이나 백번 사통하는 것이나 차이가 크지 않은데, 어찌 돌연 위후는 사통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했을까? 당중종이 살아 있을 때, 위후에게 뭐라고 하지도 않앗고, 오히려 위후모녀를 두둔해주었는데, 위후모녀가 그를 왜 죽이려 하겠는가.


다시 말해서, 당중종이 살아 있어야 그의 명의로 위후모녀는 당당하게 안국상왕 이단, 태평공주등 반대파를 탄압할 수 있었다. <구당서>에도 안락공주를 언급할 때, 그저 그녀는 황태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지, 부황을 독살하려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위황후모녀가 구급도장(狗急跳墻)하여, 천하의 금기를 어기고 황제를 독살하였다는 것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아마도 승리자의 거짓말일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중종이 만일 독살된 것이라면, 그가 어찌 그렇게 돌연 사망했을까? 왜 죽기 전에 조그만큼의 징조도 없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 이것은 이현의 가족유전병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이당가족은 심뇌혈관의 유전병력이 있다. 당고조, 당태종, 장손황후, 당고종은 모조리 '기질(氣疾)", "풍질(風疾)"같은 병을 앓았다. 이는 고대에 심뇌혈관류의 질병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이당왕조의 황제들은 모두 장수하지 못했다. 당태종은 52살까지 살았고, 당고종은 56살까지 살아서, 부친과 할아버지보다는 많이 살았다. 이현은 55세에 사망했으니 정상이라 할 만하다. 그 외에, 어떤 심뇌혈관환자는 명확한 병증을 나타내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발병한다. 예전의 당고종 이치와 마찬가지로 젊을 때부터 병석에 누워 있는다. 다만, 어떤 심뇌혈관 질병은 급격히 발병하고, 사망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런 류의 병세는 설사 오늘날의 의사라고 하더라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하물며 1천여년전의 당왕조임에야. 그래서 이현은 사전에 무슨 질병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돌연 사망한다. 이는 심뇌혈관 발병의 일반적인 규율에 부합한다. 이렇게 보면, 사서에서 위후모녀가 중종을 독살했다고 하는 것은 천고의 원안(寃案)이다. 당연히 이는 필자의 추측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