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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민114

"현무문의 변" 진행경과 글: 맹헌실(孟憲實) 무덕9년 6월 4일, 아침, 모든 것은 정상처럼 보였다. 이건성(李建成)과 이원길(李元吉)은 만나서, 동쪽에서 현무문으로 다가갔다. 이건성이 비교적 방심했던 이유는 현무문이라는 이 중요한 장소를 지키는 장군이 자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현무.. 2007. 5. 25.
당태종의 후계자 선정 배경 만년의 당태종에게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태자문제였다. 정관17년 4월, 이승건(李承乾)이 태자위에서 폐위되었다. 이후 태자가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장손황후의 또 다른 두 아들이었다. 바로 위왕(魏王) 이태(李泰)와 진왕(晋王) 이치(李治)였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이태의 조건이 훨씬 뛰어났다. .. 2007. 5. 23.
"현무문의 변"에서 감추어진 중요한 부분 글: 맹헌실(孟憲實)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현무문사건의 많은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가려졌는데, 왜 위지경덕(尉遲敬德)이 황제(당고조 이연)를 연금한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는가? 처음에는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발견한 것은 이 글은 모두 위지경덕전에 기재.. 2007. 5. 17.
난정서(蘭亭序)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난정서>> (당. 풍승소 모본, 신룡본, 북경고궁박물원 소장) <<난정서>> (원. 조맹부 모본) <<난정서>> (송. 인종 조정 모본) <<난정서>> (수. 개황 모본) <<난정서>>(청. 강희 모본) <<난정서. 현대. 모택동 글씨) <<난정서>> (청. 정판교 모본) 글: 예방육.. 2007. 4. 1.
비수지전(淝水之戰) : 초당(初唐) 역사가들의 허구인가? 기원383년, 동진(東晋)의 사현(謝玄)은 8만의 군대를 이끌고 비수(淝水)에서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의 100만대군을 격파했다. 이것이 중국역사상 유명한 "비수지전"이다. 동진은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이겨서 천하를 안정시켰을 뿐아니라, 이 전쟁은 후세사가들에 의하여 중화문명이 생존하.. 2007. 3. 18.
당태종 이세민과 후궁들 장손황후(長孫皇后)는 어릴 때 이름이 관음비(觀音婢)이고, 당태종 이세민의 정실 황후이다. 이세민과 장손황후의 애정문제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아무렇게나 만든 텔레비전 연속극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논하자면, 몇몇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 2007.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