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소기64

북대(北大)와 문혁(文革) 글: 임휘(林輝) 중공고위층 강생(康生)의 지시를 받아, 1966년 5월 25일, 북경대학 철학과 당지부서기인 섭원재(聶元梓)가 앞장서서 '전국최초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 후, 이 대자보는 모택동의 지지를 받게 되고, 문혁이 북대, 북경 및 전국에서 기세등등하게 전개된.. 2012. 7. 9.
산화난만시 정의별양농: 모택동유소기양가후인취회측기(聚會側記) 글: 공동매(孔東梅) 2004년 여름, 어느 주일의 저녁, 나와 모친 이민(李敏)은 아주 의미있는 모임에 참석했다. 유소기(劉少奇)의 부인 왕광미(王光美) 할머니가 소집하여, 모택동, 유소기 두 집안의 후손들이 경성에서 함께 모여서 우정을 얘기하는 자리였다. 모임은 19시로 정했는데, 우리가.. 2012. 3. 27.
보이보(薄一波)가 남긴 부정적 유산 글: 여이위(余以爲) 어떤 조직이건 성문(成文), 불문(不文)의 원칙이 있다. 중국공산당의 성문조항은 무시해도 된다. 대부분은 고의로 애매하게 표현하였기때문에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기때문이다. 진정 역할을 하는 것은 불문의 원칙이다. 잠규칙(潛規則)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중의 .. 2012. 3. 27.
신중국 국가주석(國家主席)제도의 변천 글: 이계화(李桂華)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시, 국가기구체계에 국가주석에 관한 조항은 없었다. 그저 '중앙인민정부주석(中央人民政府主席)'을 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중앙인민정부주석은 독립한 국가기관이 아니었다. 그저 중앙인민정부위원회의 구성원이었다. 그러므로.. 2012. 2. 1.
요문원(姚文元): 잉크병안에서 기어올라온 정계고위층 글: 하국승(夏國勝) 요문원의 일생은 붓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해를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는 사람을 해치더라도 잘 해쳤고, 명리(名利)를 다 거둔 것은 3번이었다: 첫번째는 호풍을 비판하여 두각을 드러냈고, 둘째는 <영이비고(靈以備考)>로 새로운 스타가 되.. 2012. 1. 11.
주은래의 총리지위를 위협했던 두 인물 글: 김산(金汕) 주은래는 신중국의 제1대 총리로서, 27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이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27년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문화대혁명시기에 그의 자리는 가장 큰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왕홍문(王洪文.. 2011.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