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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기64

모택동의 다섯 명의 후계자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화국봉(華國鋒, 화궈펑)은 모택동이 다섯번째로 선택한 후계자이다. 유소기(劉少奇, 류샤오치)가 모택동이 선택한 첫번재 후계자이고. 1945년 중공칠대(中共七大, 중국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에서, 유소기는 모택동의 후계자라는 신분으로 나타났다. 그때 유소기를 위해서 여론을.. 2008. 6. 6.
1949년 대만점령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1949년 신중국건국초기에 모택동은 주로 무력방식으로 대만을 해방하고자 하였다. 일찌기 1949년 5월,모택동은 화동야전군(華東野戰軍) 부사령관 속유(粟裕)에게 명령을 내려 삼야(三野)부대를 조직하여 대만공격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당시 상해전투가 막 끝났고, 화동의 많은 지역이 아직 해방되지 않.. 2007. 5. 11.
유소기의 소위 "살인멸구(殺人滅口)" 사건 문혁기간동안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유소기는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다. 강청(江靑), 강생(康生), 사부치(謝富治)등이 조직한 전안조(專案組, 전문사건팀)에서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죄명을 만들어 냈다. 즉, 유소기의 "살인멸구"사건이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유소기의 살인멸구사건의 내용은 이렇.. 2006. 10. 26.
연금후 사망한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 1. 팽덕회(彭德懷) 인민해방군 부총사령관, 군사위원회 부주석, 국방부장. 1959년 노산회의때 반당집단의 수괴로 지목됨. 북경으로 돌아온 후 서교 오가화원(吳家花園, 명나라 말에 청나라에 투항했던 오삼계의 옛날 집)에 연금되었음. 1개연대의 부대가 매일 24시간 감시하였음. 1965년 11월 성도 삼선건.. 2006.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