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51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세가지 정치적 실수 글: 황작비비(黃雀飛飛) 265년 8월, 사마소(司馬昭)가 병사한다. 아들 사마염이 부친의 자리를 이어 상국(相國), 진왕(晋王)에 오른다. 이 해에 그의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십이월, 사마염은 위나라의 황제 조환(曹奐)이 물러나서 선양하도록 강제하고, 스스로 등극하여 진(晋)왕조를 개창한.. 2013. 9. 14. 유선(劉禪) 외도사건: 가정폭력사건으로 불거지다 글: 섭지추(葉之秋) 건흥12년 이월, 즉 234년, 촉한(蜀漢)의 도성에는 조야를 깜짝 놀라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직 미모다 남아있는 중년의 호씨(胡氏)가 남편인 유염(劉琰)을 가정폭력으로 고발한 것이다. 조사를 하다보니, 이것은 당금황제 촉한의 후주 유선의 외도사건으로까지 발전.. 2013. 9. 14. 제갈량에게는 황위를 찬탈할 마음이 없었다 글: 제갈주(諸葛周) 권신(權臣)으로서, 제갈량의 경우는 조조와 극히 유사하다. 관직으로 보자면, 조조는 무평후(武平侯), 승상(丞相), 영기주목(領冀州牧)이고; 제갈량은 무향후(武鄕侯), 승상, 영익주목(領益州牧)이었다. 촉한에는 익주 하나의 주밖에 없었으므로, 제갈량의 권력은 조조.. 2013. 8. 18. 사마소: 삼국시대 가장 노련한 모사 이치아(李治亞) 삼국시대 후기, 조위의 사마의는 위나라를 대체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고자 했다. 그의 두 아들도 노모심산했다. 사마의가 죽은 후, 조위의 대권은 점차 사마씨에게 잠식된다. 사마사(司馬師)가 죽은 후, 사마소는 더더욱 용상에 앉고 싶어했다. 그러나 서쪽에는 촉한.. 2013. 8. 17. 유비는 왜 유선을 태자로 삼았는가? 글: 이치아(李治亞) 유비는 대단한 영웅이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니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나중에 군대를 이끌고 성도를 함락시킨 후에 조비가 한나라의 황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여러 신하들의 옹립하에, 황제가 된다. 국호를 대한(大漢)이라 .. 2013. 8. 4. 동오(東吳)는 왜 멸망했는가? 글: 이치아(李治亞) 동오는 왜 멸망했을까? 조위(曹魏)와 비교하면 사마의 부자와 같은 권신도 없었고, 유선(劉禪)과 같이 평용한 군주도 없었는데....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조위나 촉한과 비교하면 강동의 오나라는 망국의 이유가 더욱 있었다. 첫째, 손권은 만.. 2013. 6. 26. 이전 1 ···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