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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에게는 황위를 찬탈할 마음이 없었다

by 중은우시 2013. 8. 18.

글: 제갈주(諸葛周)

 

권신(權臣)으로서, 제갈량의 경우는 조조와 극히 유사하다. 관직으로 보자면, 조조는 무평후(武平侯), 승상(丞相), 영기주목(領冀州牧)이고; 제갈량은 무향후(武鄕侯), 승상, 영익주목(領益州牧)이었다. 촉한에는 익주 하나의 주밖에 없었으므로, 제갈량의 권력은 조조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조조가 그가 지배하는 다른 주의 주목을 모조리 겸임한다면 그와 상당한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에 있어서,유선이라는 괴뢰황제를 상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것은 유선을 괴뢰로 놔두면서,조야상하에서 자신이 충성스럽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해내려면,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조조는 <술지령(述志令)>을 내려서 자신은 황위를 찬탈할 마음이 없다고 구구절절히 얘기했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그러나 제갈량은 이것을 해냈다. 그의 생전에 그 누구도 그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황실에 충성하는 그 어떤 사람도 그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사후 천백년동안, 위로는 제왕장상부터,아래로는 여민백성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그를 충성의 전범으로 보았다. 지금처럼 충군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시대에와서야 비로소 회의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 것을 해낼 수 있었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몸이 바르면 그림자도 비뚤어지지 않는다. 제갈량은 근본적으로 황위를 찬탈할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말을 고대인들이 많었지만, 현대인들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자언(朱子彦)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시기가 성숙되면 제갈량은'한위고사'를 본받아, 촉에서 수선대(受禪臺)를 쌓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주선생은 심지어,제갈량의 북벌은 바로 자신의 황위찬탈을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이유는 개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이다:

 

첫째,권신은 반드시 황위찬탈의 야심을 가진다. 소위 "사람의 욕망과 추구하는 목표는 주관적, 객관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갈량이 촉한의 군정대권을 장악한 후, "기꺼이 어린 군주를 보좌할 마음을 가졌을지는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고 본다.

 

둘째, 제갈량은 "십석(十錫)이라도 받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일은 이엄(李嚴)부터 얘기해야 한다. 이엄은 일찌기 제갈량에게 "구석(九錫)"을 받고, 작위를 받아 왕에 봉해지라고 권한 바 있다. 구석은 9가지 규격의 극히 높은 특수한 예의이고, 일반적으로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구석을 받는다면, 그는 바로 '가황제(假皇帝)'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장래 '진황제'가 되기 위한 길을 닦아둔 것이다. 이엄이 이렇게 한 것은 아마도 제갈량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제갈량을 자극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제갈량의 응대가 부적절했다면, 분명 황위찬탈의 마음이 있다는 구실을 주게 되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어떻게 대답했는가? 그는 자신이 한황실에 충성하고 절대로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갈량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선제의 신임을 받아 지금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다만 선제의 조위를 토벌하여, 한황실을 부흥시키려는 유언을 완수하지 못했고, 그의 지우지은을 보답하지 못했다. 현재 존귀한 위치를 추구하는 것은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니다. 만일 조위를 소멸시키고 천하를 통일시킨다면, 모두 함께 봉상을 받을 것이다. 십석이라도 받을 수 있다. 하물며 구석이야." 주자언 선생은 이렇게 생각한다: "제갈량의 이 말은 대단히 포부가 큰 말이다. 스스로 '국궁진췌, 사이후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듣기 거북하게 말한다면, 오히려 난신적자가 할 말이다."

 

셋째, 제갈량은 유선은 눈에 두지 않았다. 증거는 바로 <출사표>이다. 완전히 가르치고 훈계하는 말투이다.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았다. 주자언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신하로서 할 말이 아니다. 마치 엄격한 부친이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교육시키는 말투이다. 특히 궁중부중구위일체(宮中府中俱爲一體)라는 말은 자신의 승상부의 지위를 황제의 궁중의 지위와 나란히 놓고 동등하게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이는 황제의 위에 능가(凌駕)하는 것이다. 이는 확실히 봉건전제체제에서 규정한 군신의 명분을 엄중하게 위반했다."

 

이 세 가지 이유중에서, 첫째는 그 자체로 근거가 약하다. 예를 들어, 곽광은 황위를 찬탈하지 않았다. 만보를 물러서서 말하더라도, 역사상 모든 권신이 황위찬탈의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것을 가지고 제갈량에게는 황위찬탈의 마음이 있다는게 증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은 어쨌든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행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행위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는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제갈량의 이 말은 확실히 금기를 범했다. 다만 제갈량이 왜 이렇게 말했을까? 그가 말한 대상은 이엄이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엄은 제갈량의 정적이다. 제갈량이 만일 통상적인 이치에 따라, "엄하게 이엄을 질책하였다면", "정중하게 자신은 한 마음으로 군주를 모신다"고 하였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이 곳에는 은 삼백냥을 묻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조조의 충심표명이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던가? 제갈량은 "가구석"이 금기를 범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정적이 말을 하자, 오히려 그는 마음이 당당할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갈량이 다시 자신의 뜻은 조위를 없애고, 한실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전에는 일체의 개인대우문제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흉노가 아직 멸해지지 않았는데, 어찌 집안을 이루겠습니까?"라는 호기와 같다. 이엄의 입을 막았을 뿐아니라, 다른 모든 제갈량에 대하여 안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심지어 유선에게도, 최소한 조위를 멸하기 전에는 그의 황위가 안정적일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셋째도 마찬가지로 제갈량이 황위를 찬탈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비록 이런 말들이 듣기 거북한 것이지만, 명나라때의 대신 해서(海瑞)가 황제를 욕한 말 보다는 훨씬 듣기 좋다. 설마 해서가 황위찬탈의 마음을 지녔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면 더 많은 것은 "정이 깊으면 책망하는 것도 심하다."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제갈량에게 황위찬탈의 야심이 없다면, 그 증거는 있는가? 있다.

 

첫째, 제갈량은 가족세력을 기르지 않았다. 자신에 충성하는 세력도 기르지 않았다. 이전의 왕망찬한(王莽簒漢)이건, 조위찬한(曹魏簒漢)이건, 아니면 이후의 사마찬위(司馬簒魏)이건, 찬위이전에, 이들 권신은 모두 죽어라 자신의 가족세력을 길렀다. 조위를 보면, 조조가 권력을 장악한 시기에, 조비, 조식, 조인, 조홍, 조진 여기에 조씨가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하후씨집안이 있다. 조씨의 가족세력은 조야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와 반대로, 제갈량의 가족세력은 아주 약하다. 제갈량의 아들이 비교적 어렸던 원인을 제외하고도,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갈량이 적극적이로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 제갈량 가족은 위,촉,오의 삼국에서 모두 고관을 지낸다. 자제도 아주 많았다. 그러나, 제갈량은 그들을 촉한으로 불러 자신을 돕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후사가 없자 형에게서 한명을 양자로 데려왔을 뿐이다. 정치적으로 세력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실력이 안된다. 제갈량이 죽었을 때, 집안에는 뽕나무 팔백그루가 있었고, 전답 십오경이 있었으며 그외에 다른 재산이 없었다. 아예 자신의 가족이 충분한 경제력을 축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황위를 찬탈하려는 사람이 할 일인가?

 

둘째, 제갈량은 인재선발측면에서 한황실에 충성했다. 황위찬탈의 장애는 황제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서 온다. 대신들이 황제에 충성할수록, 찬위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찬위할 생각을 가진 사람은 충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 얘기한 바 있다. 조조는 찬위를 위하여, "재주만 있으면 등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나의 정부는 충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나중에 사마씨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이 "진소정신(晋少貞臣, 진나라에는 곧은 신하가 적다)"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제갈량이 사람을 쓰는 첫번째 기준은 한실에 충성하느냐였다. 그는 "이심불가이사군(二心不可以事君)", "부삼강부정(夫三綱不正), 육기불리(六紀不理), 즉대란생의(則大亂生矣)"라고 한다. 모두 알다시피, "삼강"의 으뜸은 군신관계이다. 이 말은 그저 말하는 것뿐이 아니다. 제갈량이 발탁하고 중용한 사람들을 보라. 하나같이 한실에 충성심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강유는 촉한이 이미 멸망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복국을 생각한다. 그는 위나라의 촉을 토벌하는 주장(主將)인 종회가 일방에 할거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종회에게 위나라의 모든 장수를 죽이도록 권한다. 그리고 그 기회를 틈타 촉한을 부흥시키려 한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살신지화를 불러왔다. 호삼성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강유의 마음은, 시종 한나라를 위한 것이다. 천년동안 붉게 빛난다." 만일 제갈량에게 찬탈의 야심이 있었다면, 그가 어찌 한황실에 이렇게 충성스러운 대신을 기용하겠는가? 그것은 자신의 적을 만드는 꼴이 아닌가?

 

셋째, 제갈량은 부하, 후손을 교육할 때 명리(名利)에 담백하고, 원대한 이상을 가지라고 한다. 즉, 정충보국(精忠報國)을 얘기한다. 제갈량은 계속하여 예의와 충신(忠信)을 부하들에게 강조했다. 그리고 명확하게 '충'을 촉한의 군규(軍規)에 넣었다. 부하들에게 나라를 위하여 순국할 것을 요구했다. 외인들에게 그러했을 뿐아니라, 자신의 후손에 대하여도 그렇게 요구했다. 제갈량은 자신의 외조카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모름지기 뜻은 높고 멀리 세워야 한다. 선현을 본받고 정욕을 끊어라."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기를 요구한다. 아들에게 남긴 <계자서(誡子書)>를 보면, "비담박무이명지(非淡泊無以明志), 비녕정무이치원(非寧靜無以致遠)". 즉 명리에 담백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원대한 이상추구를 견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정말 의미심장하다. 제갈량 일생의 거울이기도 하다. 황위는 공명이록의 최고점이다. 바로 제갈량이 '담백'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원대한 이상이다. 조위를 소멸시키고, 한실을 부흥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천하대치(天下大治)를 이루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에서 촉한제국은 위로는 장상공경에서 아래로는 보통사병까지 대부분이 충성심이 강했다. 촉한이 멸망했을 때, 촉군의 장사들은 비분에 스스로 칼을 뽑아서 목숨을 거둔 자들이 많았다.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 손자 제갈상은 더더욱 정충보국의 모범이다. 등애의 병사들이 면죽성의 아래로 밀려올 때, 제갈첨에게 투항을 권하는 서신을 보낸다. 만일 그가 투항하면, 낭야왕으로 추천해주겠다는 것이다. 당시 촉한 자체는 이미 국력이 거의 소진되어 있었고, 전략적인 형세도 극히 불리했다. 군대는 대다수 전방에 나가 있었고, 제갈첨의 수중에는 군대도 많지 않았다. 투항은 아주 이성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제갈첨은 노하여 사신을 죽이고, 등애와 전투를 벌인다. 결국 그는 순국한다. 제갈첨의 아들인 제갈상은 원래 도망가서 목숨을 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부자가 국가의 중한 은혜를 입었는데, 일찌감치 황호(黃皓)를 참하지 못하여, 나라가 기울어 패했으니,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위군에 뛰어들어 순국한다. 이것이 어찌 찬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교육해낼 수 있는 자녀들이겠는가?

 

넷째, 제갈량의 수하는 아무도 그에게 찬탈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제갈량의 심복중에서는 아무도 제갈량에게 대우를 추가하도록 권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한번 권한 것이 바로 적대적인 이엄이었다. 이와 반대로, 조조이건, 손권이건 아니면 유비이건, 수하들은 계속하여 권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유일한 해석은 제갈량의 수하들은 모두 제갈량에게 찬탈의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갈량에게 찬탈의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가족에 충성하지도 않고, 개인관념이 강한 현대인들이다. 그들이 의존하는 근거는 그저 사료에 나오는 몇 가지 기록일 뿐이다. 설마 그들이 장완, 비위, 동윤, 위연, 강유, 양의등등 제갈량과 아침 저녁으로 함께했던 사람들보다 제갈량의 마음을 더욱 잘 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섯째, 당시에 확실히 제갈량의 권력독점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다만 아무도 제갈량이 야심을 가졌다고 직언하지는 않았다. 더더구나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주공은 유언비어를 두려워했다고 하였다. 즉 주공이 집권하던 시기에도 유언비어가 많이 떠돌았다. 그러나, 제갈량의 집권시기에는 유언비어가 나오지 않았다. 설사 이막(李邈)이 제갈량의 사후에 제갈량이 "신장강병(身杖强兵), 낭고호시(狼顧虎視)"하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제갈량의 권력독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도 "미필회반반지심(未必懷反叛之心)"이라고 인정한다. 제갈량의 집권기간동안, 정변, 반란은 거의 없었다. 공개적으로 반제갈량의 기치를 내건 반란은 한번도 없었다. 조조의 집권시기와 사마씨가 찬탈하기 전을 보면, 중앙정부는 내부정변이 계속되었고, 많은 지방정부에서도 여러번 반란이 일어난다. 결국 똑같은 말이다. 후인들이 당시의 사람들보다 제갈량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다고 할 수있느냐는 것이다. 찬탈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속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갈량에게는 아예 찬탈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왜 대권을 독점하며, 권력을 유선에게 돌려주지 않았는가?

후인들은 이에 대하여 5가지 가능한 원인을 내놓았다.

 

첫째, 유선이 너무 형편없었다. 그는 소인을 가까이하고, 싸우지도 않고 투항한다. 은혜와 의리를 저버렸고, 심간(心肝)도 없다.

둘째, 집정경험이 없다.

셋째, 제갈량은 허군실상(虛君實相, 군주는 권력이 없고, 재상이 실권을 가짐)을 주장했다.

넷째, 임무는 중하고 갈 길은 멀었다.

다섯째, 내부위기가 사방에 잠복되어 있어서 쉽게 권력을 넘겨줄 수 없었다.

 

이것들은 모두 중요한 원인이 아니다.

첫째, 유선은 비록 평용하지만, 이중천 선생의 말을 빌리면, "수성지군(守城之君)'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둘째, 그는 집정경험이 없지만, 이것은 제갈량이 그를 허수아비로 만든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제갈량이 혼자서 업무를 다 처리하는데, 유선이 어디에 가서 집정경험을 가진다는 말인가. 셋째, 허군실상은 촉한의 특징이다. 이것은 제갈량의 정치이념이 아니다. 제갈량의 정치이념은 그의 저작에서 명확히 쓰여져 있다: "군모기정(君謀其政), 신모기사(臣謀其事). 정자(政者), 정명야(正名也); 사자(事者), 권공야(勸功也). 군권기정(君勸其政), 신권기사(臣勸其事). 즉공명지도구립의(則功名之道俱立矣)." 즉 황제는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대신은 집행을 책임진다. 그리고 뒤의 두 가지는 어느 정도 이치에는 맞다. 그러나 '임무는 중하고 갈 길은 멀다"는 것이나, "내부위기가 사방에 잠복해 있다'는 것은 모두 '쉽게 권력을 넘겨주지 못한' 주요 원인이다.

 

기실, 제갈량이 유선에게 권력을 돌려주지 않은 주요한 원인은 딱 한 가지이다: 유선은 제갈량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좋은 황제가 아니었다.

제갈량은 정치가로서,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정치이상을 추구했다. 그의 모든 거동은 자신이 한실부흥, 천하평정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유리한지 여부를 준칙으로 삼는다. 유선에 권력을 넘겨주는 것은 이 이상을 실현하는데 확실히 불리했다.

능력으로 보자면, 유선은 기껏해야 '수성지군'이다. 재능을 따지자면 제갈량 자신보다 못하다. 또한 상대방의 조비, 조예, 사마의보다 못하다. 지향으로 보면, 유선은 웅심장지가 없다. 그저 한쪽에 편안히 지내고자 할 뿐이다.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그가 "망자비박(妄自菲薄)"이라고 질책했다. 제갈량이 어찌 자신이 평생을 분투하며온 이상을 이런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을 것인가? 대권을 유선에게 넘겨주면, 촉한은 남송이 될 것이고, 제갈량은 이강(李綱), 악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유선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이엄을 쫓아내고 전체 촉한제국을 장악한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그래야 위나라를 멸하고 조예을 참하고, 한실을 부흥시키는 위대한 청사진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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