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22 모택동은 왜 하자진(賀子珍)과 복혼하지 않았는가? 작자: 미상 하자진은 모택동과 헤어진 후,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성격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연안을 떠난 그날부터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1949년 그녀의 여동생 하이(賀怡)가 북경으로 가서 모택동과 복혼하여 부인의 지위를 되찾는 것을 논의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 2013. 10. 10. 한고조 유방과 그의 장남 글: 동리채국(東籬採菊) <사기>의 "고조본기"를 세심하게 읽은 독자라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고조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기 전에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여태공의 딸인 여치(呂稚), 즉 나중의 여후(呂后)이다. 여후는 평생동안 자식을 둘 낳는데, 한 명이 효혜제(孝惠帝)이.. 2013. 8. 15. 악비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 글: 양무후(陽武侯) 악비가 민족독립정신의 상징이 된 후, 그의 비정상적 사망은 사람들이 천년간 가슴아파한 사건이 되었다. 민간의 이야기와 소설의 내용에 따르면, 죽어마땅한 진회(秦檜)와 그의 부인 왕씨(王氏)는 개인적인 사욕과 매국노의 근성으로 원래 직도황룡하여 금나라를 철.. 2013. 3. 31. 여산쟁탈전(廬山爭奪戰): 일산육주(一山六主) 글: 동현평(董顯萍), 백조양(白朝陽) 관광지구 남문에서 입장권을 사서 여산을 오르는데, 180위안이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삼첩천에서 폭포를 보려면 다시 64위안짜리 입장권을 사야 한다. 석문간 산위와 산아래 모두 매표소가 있고 표값은 50위안이다. 여산이라는 하나의 산을 오르는데.. 2013. 2. 4. 진시황의 죽음에 대한 추리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의 사후 3개월동안 온량거(轀輬車)에 놓아두고, 매장도 하지 않고 장례도 치르지 않으면서,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함양(咸陽)으로 돌아와서 여산(驪山) 북록의 능묘에 묻혔다는 주장은 통상적인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떤 시신이라도, 엄격한 냉동, 방.. 2012. 9. 20. 황제사후 비불발상(秘不發喪)의 비밀 글: 대지약(大智若) 일세를 풍미하고, 권력을 독단,전횡하며 풍운을 질타했던 황제가 죽은 후에 시체가 썩을 때까지 그냥 놔두고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이들 제왕의 시체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제환공의 경우 공자소백(公子小白)이 계모를 써서 왕위를 .. 2012. 4. 12.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