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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22

아방궁의 역사진상 (1): 아방궁 "삼백리"는 가능한가. 글: 진경원(陳景元) 만일 중국 대부분의 경전적인 사료를 뒤져보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아방궁(阿房宮)'이라는 세 글자를. 항상 진시황의 이름과 같이 나오며 둘은 굳게 연결되어 있다. 소위 "진황위무도(秦皇爲無道), 작아방지궁(作阿房之宮)"; "진축아방(秦築阿房), 영성이전(&#36194.. 2018. 2. 23.
진시황릉의 허실(9): 진시황은 현지에 매장하는 것이 현명한 조치이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이 만일 함양에서 죽었다면, 역대제왕이 경성에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항상 마련해둔 냉장된 보관장소가 있고, 궁내에는 장례활동을 치르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비불발상'을 할 때, 궁문을 걸어잠그고, .. 2018. 2. 7.
진시황릉의 허실(8): 비불발상(秘不發喪)은 조건이 필요하다. 글: 진경원(陳景元)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진시황응 여산에 묻었다(葬始皇驪山)"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황제가 붕어하니, 교산에 묻었다(黃帝崩, 葬橋山)"이라는 기록도 있다. 섬서성의 황제릉은 비록 매년 대형제사활동을 벌이지만, 사람들은 그 무덤의 진실성에 대하여 계속하여.. 2018. 2. 7.
진시황릉의 허실(2): 진시황의 능묘 "예수(預修)는 잘못 전해진 것이다. 글: 진경원(陳景元) 사마천의 <사기>에서 "진시황이 처음 즉위한 후 천치여산(穿治驪山)했고, 천하를 병합하고나서 천하의 무리 70여만명을 보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진시황이 등극하자 즉시 자신의 능묘를 "예수(預修, 미리 만들다)"했다고 말한다. 기실, 이는 완전히 .. 2018. 2. 6.
[황자쟁위술] 차도살인술(借刀殺人術) 승기타겁패(乘機打劫牌) 유장편 황위승계를 노리는 황자는 시시때때로 기회를 노리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한편으로 현덕(賢德)하다는 것과 군주의 풍도를 보여 부친이 자신에게 안심하고 권력을 넘겨줄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목을 여러 곳에 심어서 부친 정책의 문제점을.. 2015. 11. 1.
모택동과 하자진(賀子珍)의 결혼일자는? 글: 복녕객(福寧客) 1959년 7월 9일, 전 강서성제1서기 양상규(楊尙奎)의 부인 수정(水靜)은 여산(廬山)에서 하자진과 밤을 새워 얘기를 나누었고, 하자진에게 모택동과 언제 결혼했는지 물어보았다. 하자진은 수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1928년 영신(永新)에서 주석과 결혼했다. 당시에는.. 2014.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