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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54

엄수(嚴修): 단포원세개(斷袍袁世凱)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어린황제 부의가 즉위하자, 그의 부친 재풍이 감국이 된다. 재풍은 광서제의 동생이다. 일단 취임하자 원세개를 향하여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 칼은 머리를 향하여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저 발 위를 내리쳤다. 원세개에게 족질(足疾)이 있다는 이유로 .. 2014. 4. 29.
송교인 암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글: 대중일보 1913년 3월 20일 밤, 후닝(滬寧)기차역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붐볐고, 인파는 끊이지 않았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와 함께, 송교인은 배웅나온 황흥, 우우임 그리고 요중개등과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검표소로 들어갔다. 바로 이 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검.. 2014. 4. 4.
신해혁명과 유언비어 글: 유흔(劉欣) 유언비어는 현재에도 핫이슈이다. 어룡혼잡(魚龍混雜)의 인터넷세계에서, 유언비어는 없는 곳이 없다. 심지어 진화화(秦火火)같은 전문적인 유언비어제조자까지 나타나서 확실히 사람들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유언비어'의 '직업화'추세는 갈수록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 2014. 4. 4.
금전: 청나라조정을 무너뜨린 윤활제 글: 풍학영(馮學榮) 청나라조정의 붕괴는 무창의거때문이다. 혁명당인은 만청왕조의 멸망에 확실히 주요한 추진역량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경시하는 점이 있다: 청나라조정이 무너진 과정에서 기실 '금전'이라는 것이 '윤활제'의 작용을 잘 했다는 것이다. 금전은 확실히 이 역사발전을 .. 2014. 3. 2.
송교인: 부서진 헌정꿈 글: 김만루(金滿樓) 신해년에 혁명당(革命黨) 사람들은 일심동체가 아니었다. 그중 손중산 일파와 송교인 일파는 이념에서 엄중한 이견이 있었다. 일찌기 동맹회 시절에 황흥(黃興)과 손중산(孫中山)간에 미래 국기(國旗)를 다투는 사건이 있었다. 송교인은 손중산이 "평소에 솔직히 털어.. 2014. 2. 9.
김정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글: 호각조(胡覺照) 전제사회에서 황권이 지고무상인 이유는 군권(軍權)이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수중에 군대가 있으므로 황제라는 조폭두목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군권이 지탱해주지 않는다면 황권의 가치는 마이너스이다. 보통백성이 되고 싶어도 되지를 못한다. 이것은 중.. 2014. 1. 15.
역사법칙: 일본의 변신은 항상 중국과 부닥친다. 글: 정만군(程萬軍) 일본수상 아베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후, 다시 일본의 심장 신도의 성지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참배했다. 그는 이번 신년담화에서 상징적으로 중국한국에 '선의'를 얘기했을 뿐, 바로 헌법개정의 결심을 드러낸다. 이와 거의 동시에 내각에서는 "비군(備軍)" 대계.. 2014. 1. 15.
북양총리 조병균(趙秉鈞)은 왜 원세개에게 암해(暗害)를 당했는가? 글: 장부걸(張溥杰) 조병균은 자가 지안(智安)이고 하남 임여(臨汝) 사람이다. 1859년에 태어나서 19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신세내력은 상당히 전설적이다. 상당히 "이 형님은 하나의 전설이다"라는 대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는 유랑아로 성이 무엇인지도 .. 2014. 1. 14.
송교인식의 정치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다. 글: 정만군(程萬軍) 송교인암살100주년을 맞이하여 무수한 찬양의 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중국인의 오래된 고질을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좋다고 하면 무한히 끌어올린다. '호인'의 과실과 반성을 얘기하는 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신해혁명후의 중국제일정당의 실제창시자로서 송교.. 2013. 11. 16.
송교인: 중국근대헌정의 최후희망 글: 장천범(張千帆) 나는 개인적으로 미신이 있다. 항상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하다고 믿는다. 백년전의 그 13(1913년)에 과연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3월 20일 저녁, 상해 기차역에서, 한 발의 총탄이 청넌정치가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나이 겨우 32살이었다. 이것은 보통.. 2013.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