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국연의127

도원결의때 관우,장비는 왜 유비를 '큰형님'으로 모셨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삼국연의를 보면, 도원결의는 장비가 제안한다. 왜 장비가 제안했을까? 그것은 도원(桃園)이 장비의 것이기 때문이다. 유비와 관우는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기실 '도원결의'에서 가장 핵심문제는 어디에서 결의하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큰형님'이 되느냐는 것이다.. 2015. 2. 20.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진상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마속의 죽음을 얘기하자면, 역대이래로 사람들은 마속이 가정(街亭)의 패배이후, 제갈량의 본영으로 돌아와 부형청죄(負荊請罪)한다. 결국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벤다. 경극 <실가정(失街亭)>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 이런 인상은 기실 나관중의 <삼.. 2015. 2. 13.
여포는 기실 선량한 사람이다. 글: 이치아(李治亞) 후세인들이 삼국연의를 읽으면 여포에 대하여 욕을 해 마지 않는다. 무슨 반복무상(反復無常)이라고 말한다든지, 장비가 말하는 것처럼 '삼성가노(三姓家奴)이며, 가장 신의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기실 다른 사람이 삼국연의를 볼 때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예를 .. 2015. 2. 10.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지 않았다.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삼국연의>에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동탁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어서, 사도 왕윤이 신하들을 불러모아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돌연 조조가 박수를 치며 크게 웃는다. "조정의 공경들이 밤부터 낮까지 곡을 하고, 낮에서 밤까지 곡을 하.. 2015. 2. 10.
소년 제갈량은 조조의 손에 죽을 뻔했다 글: 유려평(劉黎平) 제갈량이 띠집(茅廬)을 떠나기 전에 조조와는 거의 만난적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소년시대에 제갈량의 목숨은 한때 조조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는 한헌제 초평4년(193년)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 해, 조조의 부친 조숭(曹嵩)은 전란을 피해, 산동 낭야일대에 거.. 2015. 2. 10.
삼국시대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대 영웅 글: 복녕객(福寧客) "곤곤장강동서수(滾滾長江東逝水), 랑화도진영웅(浪花淘盡英雄)" 그렇다면, 삼국의 국세에 영향을 가장 크게 준 10대인물은 누구일까? 가헌(稼軒, 신기질)은 "생자당여손중모(生子當如孫仲謀)......천하영웅적수(天下英雄敵手) - 조류(曹劉)"라는 말을 했다. 이 세 사람이.. 2015.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