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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356

중국은 왜 항상 "국내외적대세력"을 들고나올까? 글: 왕우군(王友群)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수십번에 걸쳐 피비린내나는 정치운동을 발동시켰다. 매번 정치운동때마다 중공에 숙청당한 대상은 모두 중공에 의해 "국내외적대세력"과 관련이 있다고 칭해졌다. 즉, "자산계급의 당내대리인" 혹은 "국내외적대세력의 당내대리인"이라고 규정되었다. 고요(高饒)는 "자산계급의 당내대리인"으로 규정되다. 1954-1955년 중공은 당정후 첫번째 반당집단을 규정했다. "고강(高崗),요수석(饒漱石)반당연맹"이다. 고강은 당시 중공정치국위원, 중앙정부부주석, 중앙군위부주석, 국가계위주석이었고, 요수석은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었다. 고요는 중공에 의해 모택동을 우두머리로 하는 당중앙영도핵심을 '전복하기를 기도하고' '당과 국가의 최고영도권을 찬탈하고자' 했다고.. 2022. 12. 11.
빈곤은 독재자의 낙원이다. 글: 홍박학(洪博學) 미국인들이 중공에 수십년간 기망을 당한 후, 상무부는 최근 미국투자자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중국기업이 미국에 가서 해외 IPO(상장)을 해서 돈을 조달하는데, 그중 90%는 사기이다. 이 말이 현재 아직까지 중국에 남아 있는 외국자본, 외국투자자에게 어느 정도 경고작용을 할 지는 알 수가 없다. 현재도 여전히 30%의 사람들이 떠날 수 없는 원인은 공장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고,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시진핑이 계획경제의 옛날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코로나사태가 끝난 후에는 세계공장으로서 여전히 기능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마도 모두 잊고 있는 것같다. 중공은 거짓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조폭집단이다. 정상국가가 아니다. 개혁개방후에 시장경제를 학습했지만, '자유'라.. 2022. 12. 9.
백지혁명(白紙革命)의 배후는...? 글: 대종사(大宗師) 시진핑이 등극한지 1달도 되지 않아서, 시진핑을 타도하자는 백지혁명이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시작되었다. 그 기세는 맹렬하고, 광범위하여 모든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백지혁명이 이처럼 단기간내에 성숙되고, 체계를 갖추며, 현대의 방식으로, 통일된 보조, 강령을 내놓으며, 동시에 전국 각지, 각 대학에서 신속히 전개된 것을 보면 그 배후에 강력한 정치적세력이 계획하고, 조율하고, 조종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세력은 공산당과 정부의 내부에 있다. 시진핑이 일거에 조사해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조사하도록 시키는 사람이 아마도 그 세력의 앞잡이이거나 혹은 동정하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공산당의 건국후에 일어난 모든 민변(民變)의 배후.. 2022. 11. 30.
임표(林彪)와 등소평(鄧小平)의 은원(恩怨) 글: 조대부(趙大夫) 임표, 등소평은 모택동의 득의문생(得意門生)으로 일찌기 모두 모택동의 후계자 반열에 올랐다. 한명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이름을 넣었던 모택동의 후계자이고, 다른 한명은 모택동의 사후 사실상의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렇다면, 등소평과 임표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미묘했다. 제1대영도집단의 핵심구성원으로서 어느 정도 유량(瑜亮, 주유와 제갈량)심리도 있었다. 그들은 일찌기 상하급관계였기도 했고, 일찌기 밀접한 협력관계이기도 했고, 또한 심각한 대립관계이기도 했다. 등소평과 임표는 일생동안 교류가 거의 없었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등소평의 딸 모모(毛毛)가 등소평을 회고하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등소평과 임표는 개인적인.. 2022. 11. 24.
중국-베트남 공산당총서기회담에 대한 양국의 보도 비교분석 글: 주효휘(周曉輝) 2022년 10월 31일,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베트남공산당총서기 응우엔푸쫑(阮富仲)과 회담을 거행했다. 응우엔푸쫑은 중공20대이후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외국지도자이다. 그리하여 중국은 아주 높은 규격으로 접대했으며, 새로 선임된 정치국상위가 모두 참석한다. 이번 회담에 대하여, 중국의 관영매체인 신화사와 베트남의 관영통신사인 VNA(Vietnam News Agency)는 모두 이를 보도했다. 비록 양국은 모두 사회주의국가이지만 최근 들어 무실(務實)한 태도로 민생에 관심을 가진 베트남은 보도에서도 그것이 나타났고, 신화사처럼 헛소리나 상투적인 내용으로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내용으로만 보도하지는 않고, 반대로 더 많은 실제내용과 다른 사실들을 토로했다. 이런 것들은 신화사에서는 다루지 .. 2022. 11. 3.
"홍기거(紅旗渠, 홍치취)"의 진상은...? 글: 주효휘(周曉輝) 연안에서 모택동을 참배한 후, 시진핑은 신임 정치국상위를 이끌고 다시 허난(河南), 안양(安陽) 린저우시(林州市, 옛 이름은 林縣)로 가서 또 다른 "홍색교육기지" 홍기거기념관(紅旗渠記念館)을 참관했다. 홍기거라는 이름에 대하여, 많은 중국인들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각종 '정신'을 창조하는데 뛰어나 정신병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중공은 일찌감치 1971년 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어 소위 '홍기거정신'을 대거 선전했다. 작년 중국당국이 내놓은 100부짜리 다큐멘터리 제36부에서도 역시 중공의 거짓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중국당국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홍기거는 1960년대, 현지인민들이 천수답의 열악한 생존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중공당국의 지지하에 태행산(太行山)의 산허리에 '인장입.. 2022.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