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암암설사(巖巖說史) 1233년, 450명의 '충효군'은 기습을 통해 3,500명의 몽골철기를 참살한다.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길사복화(撒吉思卜華)는 도망가다가 맞아죽는다. 이어서 '충효군'은 승기를 틈타 계속 진격하고 8천의 한군(漢軍)은 뿔뿔히 흩어져 도망친다; 대장 동준(董俊)은 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사천택(史天澤)은 황급히 도망친다. 장유(張柔)는 포로로 잡히는 것이 겁나서 길가의 풀숲에 숨는다. 낭패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귀덕전투(歸德戰鬪)는 금나라가 이미 멸망에 가까웠을 때이다. 그렇지만 '충효군'은 여전히 몽골철기를 격파했다. 충효군은 금나라말기의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강력한 부대였다. 단병작전능력은 아주 강하여, 1대1의 전투라면 몽골군도 충효군을 이길 수 없었다. 이것은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