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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애종9

충효군(忠孝軍): 금나라 최후의 최강전투부대 글: 암암설사(巖巖說史) 1233년, 450명의 '충효군'은 기습을 통해 3,500명의 몽골철기를 참살한다.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길사복화(撒吉思卜華)는 도망가다가 맞아죽는다. 이어서 '충효군'은 승기를 틈타 계속 진격하고 8천의 한군(漢軍)은 뿔뿔히 흩어져 도망친다; 대장 동준(董俊)은 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사천택(史天澤)은 황급히 도망친다. 장유(張柔)는 포로로 잡히는 것이 겁나서 길가의 풀숲에 숨는다. 낭패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귀덕전투(歸德戰鬪)는 금나라가 이미 멸망에 가까웠을 때이다. 그렇지만 '충효군'은 여전히 몽골철기를 격파했다. 충효군은 금나라말기의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강력한 부대였다. 단병작전능력은 아주 강하여, 1대1의 전투라면 몽골군도 충효군을 이길 수 없었다. 이것은 사실이.. 2021. 12. 31.
몽금십년전쟁(蒙金十年戰爭): 초원제국과 삼림제국의 결전 글: 문재봉(文裁縫) 1209년, 몽골제국은 건립된지 이미 3년이 지났다. 징기스칸은 정예병을 양성해서 군사력이 강성해진다. 그는 초원의 백성들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거두어 들였다. 점점 세력이 커진 징기스칸은 다음 확장목표로 금나라를 겨냥한다. 이전까지 몽골은 금나라의 속국이었다. 다만 현재 몽골은 이미 옛날의 몽골이 아니다. 징기스칸은 이제 몽골은 그 어느 나라와도 일전을 벌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징기스칸은 금나라가 이전에 목려(木驢)의 혹형으로 안바하이칸을 처형한 원한을 잊지 않았다. 이 해에 금장종(金章宗)이 붕어하고, 완안영제(完顔永濟)가 황위를 승계한다. 그는 문약한 서생이고, 징기스칸은 이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를 무시했다. 다음 해, 완안영제는 사신을 몽골로 파견해서,.. 2021. 4. 21.
금(金)나라의 최후는 얼마나 비참했는가? 글: 장금(張嶔) 중국 역대왕조의 "마지막 순간"들 중에서, 일찌기 북송의 반벽강산을 무너뜨리고, 남송이 백년간 어르신으로 모셨으며, 중원대지를 차지했던 '대금왕조(大金王朝)'의 멸망전후의 장면은 참혹하여 실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얼마나 참혹했을까? 먼저 그 이름도 유명한 금나라말기의 대시인 원호문(元好問)의 글을 보도록 하자. 몽골이 남하하기 시작한 후, 한때 천하를 종횡했던 '대금철기(大金鐵騎)'는 계속 패퇴한다. 북방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다. 재능이 뛰어났던 원호문은 비분하여 금왕조 멸망전야의 보고 느낀 점을 기록했다. 예를 들어, 응주(應州)등지에서는 수년간 지속된 전란에 큰 가뭄까지 겹쳐서, 백성들은 도움을 받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거액의 세금까지 부담해야 했다. 실로 "참참수폐부(慘慘愁.. 2020. 12. 11.
변경대역(汴京大疫): 금나라 멸망의 서곡 글: 종가수(宗家秀) 금나라 천흥원년(1232년) 사월, 몽골대군이 금나라의 '남경개봉부'인 변경을 공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반달후에 철수한다. 몽골군이 철수한 후, 변경성내에 돌연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여 50일간 지속된다. 절반의 인구 근 100만명이 사망하고, 금애종(金哀宗)이 도.. 2020. 3. 4.
맹공(孟珙): 남송에서 악비보다 뛰어났던 장수 글: 육기(陸棄), 손옥량(孫玉良) 소련에 D. A. Volkogonov박사라는 유명한 군사전문가가 있었다. 그는 <스탈린: 승리와 비극>이라는 책을 써서 세계에 이름을 떨친다. 그의 2차대전에 대한 연구는 독보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 중국의 전사(戰史)에 대하여도.. 2018. 6. 15.
1234년 2월 9일: 하루에 2명의 금나라 황제가 죽은 날.....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하룻만에 두 황제가 연이어 죽었다. 어느 왕조인지 혹시 아는가? 바로 금왕조이다. 미친듯이 북송을 멸망시키고 변경을 점령했으며, 대명이 자자한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를 금나라 수도로 끌고갔던 그 왕조로 한때 불가일세하며 회남강북을 횡행하며 송고종이 .. 2016. 4. 22.
중국역사상 전쟁터에서 전사한 2명의 황제 글: 진령신(陳令申) 중국고대에, 전쟁터에서 전사한 사람은 대부분 장군과 병졸이다. 그래서 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만일 전사자가 구오지존인 황제라면 그것은 신기하고 희한한 일일 것이다. 역사상 확실히 그런 황제가 있었다. 한 명은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완안승린(完顔.. 2015. 3. 26.
신중국은 왜 조어대(釣魚臺)를 국빈관으로 삼았는가 글: 홍촉(洪燭) 필자는 어릴 때 남방에서 지냈다. 머나먼 북경에 두 곳은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가져다 두었다: 그중 하나는 중남해(中南海)이고, 다른 하나는 조어대(釣魚臺)이다. 중남해는 말할 것도 없이 조국의 심장이었다. 모주석이 그 곳에 있으면서, 글을 쓰고 나라를 통치했다. .. 2011. 10. 8.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황제는? 중국역사상 황제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았던 사람은 금(金)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금말제(金末帝) 완안승린(完顔承麟)이다.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마자 죽었으므로, 재위기간이 하루도 되지 않는다. 1233년 금나라의 애종(哀宗) 완안수서(完顔守緖)는 몽고군대에 쫓겨 채주(현재의 하남.. 2005.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