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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126

초선(貂蟬)의 아들이 선비(鮮卑)의 10만철기를 대파했다? 글: 문재봉(文裁縫) 먼저 얘기할 것은 "초선(貂蟬)"이 원래 인명(人名)이 아니라, 한나라때 시종관원(侍從官員)이 쓰는 관모(官帽)의 장식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검으면서 얇고, 얇으면서 가볍고, 가벼우면서 뚤려 있어 아주 아름다웠다. 후궁에 모자를 관리하는 관직을 별도로 설치했는데, 사람들은 '초선'이라는 말로 이런 모자를 관리하는 여관(女官)을 지칭했다. 나중에는 미녀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어 쓰이게 된다. 다음으로, 에는 초선에 관한 여하한 기록도 없다. 가장 먼저 초선이라는 인물이 나타난 것은 라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초선의 성은 임(任)이고, 원래 여포(呂布)의 처였다. 임도(臨洮)의 전란중에 여포와 헤어져서 나중에 왕윤(王允)의 집으로 흘러들어간다. 초선이 향을 사르고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2020. 11. 21.
유비, 관우, 장비는 어떻게 생겼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를 보면,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용모는 모두 선명한 특색이 있다. 너무나 선명하여 수천수만명 속에 있어도 바로 찾아낼 수 있고, 한번 보면 잊지 않을만한 그런 용모이다. 먼저 유비를 보자. "키는 칠척오촌,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뜨려지고, 두 팔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간다. 눈으로 자신의 귀를 돌아볼 수 있고, 얼굴은 관옥(冠玉)같고, 입술은 분을 바른 것같다." 다음으로 관우를 보자: "키는 구척, 수염은 2척이다; 얼굴은 대추같고, 입술은 분을 바른 것같다; 단봉안(丹鳳眼), 와잠미(臥蠶眉)이다. 용모는 당당하며 위풍이 늠름하다." 장비는 또 어떨까?: 키는 팔척, 표두환안(豹頭環眼, 표범같은 머리에 동그란 눈), 연액호수(燕頷虎鬚, 큰 턱과 호랑이수염), 목소리는 큰 우.. 2020. 11. 20.
여포: 겨우 무명장수 2명을 죽였을 뿐인데, 왜 '삼국제일맹장'이 되었을까? 글: 취간역사(趣看歷史) 중국역사상 여포는 유명한 인물이다. 근 2천년동안 그는 '삼국제일맹장'으로 떠받들어진다. 당연히 엄격히 말하자면, 그는 '동한말기제1명장'이라 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찌감치 조조에게 죽임을 당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포의 용맹은 유명하다. 그는 "비장(飛將)"이라고 불릴 뿐아니라, 에서 무한히 떠받들어져서 심지어 '유비,관우,장비' 세명과 혼자 싸우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다만, 역사상 진정한 여포는 그렇게 대단한 전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출도한 이래 단지 2명의 무명장수를 베었을 뿐이다. 호뢰관전투에서 여포는 병사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그는 "5합도 겨루기 전에 방열(方悅)을 참하고, 손으로 극을 들어 목순(穆順)을 주살했다." 너무나 .. 2020. 11. 19.
주유(周瑜)는 적벽대전때 동오(東吳)의 대도독(大都督)이 아니었다?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주유는 적벽대전을 주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후인들은 '삼국주랑적벽(三國朱郞赤壁)'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다만 손권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양로(兩路)의 부대를 파견했고, 각각 주유와 정보(程普)이고, 좌우독(左右督)으로 임명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적벽대전은 주유가 독립적으로 지휘한 것이 아니고, 주유는 대도독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의 진상은 그렇다면 어떠했을까? 대도독이라는 관직이 정식으로 나타난 것은 황무원년(黃武元年)이다. 유비가 촉한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정벌하러 오자, 손권(孫權)이 육손(陸遜)을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유비를 막게 한 것이다. 그가 지휘하는 수하의 장수들은 경력이 더 많고, 공로도 큰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주연(朱然), 반장(潘璋)등이.. 2020. 10. 22.
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 2020. 10. 20.
유비가 서촉으로 들어갈 때, 유장(劉璋)을 배신하고 유비에게 온 3명의 최후는...?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익주(益州)전투는 동한말기, 유비가 익주를 빼앗기 위하여 유장과 벌인 전쟁이다. 적벽대전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했다. 제갈량의 에 나오는 형주, 익주를 차지하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비는 일찌감치 익주로 진격하는 것을 도모했다. 이때 유장은 한중의 장로에게 제약을 받고 있었고, 다시 강대한 조조가 한중을 취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는 촉에 위협이 되었다. 장송(張松)은 그리하여 유장에게 유비를 불러들여 실력을 강화시키자고 건의하게 된다. 장송등의 권유로 유장은 유비를 촉으로 불러들인다. 211년, 유비는 촉에 들어간 후 처음에는 유장과 관계를 좋게 유지했다. 그러자 유장은 유비에게 병사를 내주며 그에게 장로를 치도록 한다. 다만, 유비는 가맹(葭萌) 일대까지 진군한 .. 2020.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