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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96

여사낭(呂四娘)이 옹정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왜 지금까지 전해지는가? 글: 포강객(浦江客) TV드라마 <견환전>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청나라역사붐을 이룬다. 그중 옹정제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는 <견환전>에서 내용을 두찬(杜撰)한 것으로 인하여 이 역사의 미해결이슈는 더욱 오리무중이 되었다. <견환전>의 내용은 이렇다. 섭란의(葉瀾依)는 .. 2013. 4. 16.
명십삼릉중 왜 12개는 무자비(無字碑)가 세워졌을까? 작자: veryhope 명십삼릉에는 괴이한 현상이 있다. 이는 사릉(思陵)을 제외하고 명십삼릉의 나머지 12개릉은 비록 모두 명나라때 건조되었지만, 모든 릉에는 당시에 문자를 새기지 않은 석비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이를 "무자비"라고 부른다. 이들 석비는 왜 당시에 문자를 새기지 않았을.. 2013. 4. 13.
건륭제(乾隆帝)의 후계자선정: 아들을 보지 않고 모친을 보다 글: 자일(子逸) 옹정은 비밀건저(秘密建儲)제의 창시자이다. 건륭은 제도의 첫번째 수익자이다. 그는 즉위한 이후, 여전히 이 제도에 따라 후계자를 지정했다. 건륭은 일생동안 3번 후계자를 선정했다. 이전 두 번은 모두 후계자의 요절로 실패했고, 마지막에 건륭은 황위를 황십오자 영염.. 2013. 4. 13.
영국사신 매카트니의 기록: 건륭과 화신의 동성애 글: 문회독서주보 1793년, 영국의 매카트니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한다. 건륭제와 신하들은 이번원상서(理藩院尙書) 화신(和珅), 대학사 송균(松筠)부터 신임 양광총독(兩廣總督) 장린(長麟), 그리고 전체 여정을 함께 한 천진도대(天津道臺) 교인걸(喬人傑)과 통주협장(通州協將) 왕문유(.. 2013. 2. 8.
<사고전서>에 서양서적을 실은 이유는? 글: 포강객(浦江客) &lt;사고전서(四庫全書)&gt;는 건륭37년(1772년)부터 시작하여 10년가량의 시간을 들여, 대량의 인력물력을 들여 편찬한 대형 총서(叢書)이다. &lt;사고전서&gt;는 많은 유학자, 한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완성한 건륭제가 친히 정한 국가적 사업이었다. 건륭가경연간의 고거학(.. 2013. 2. 4.
건륭제의 어용보도(御用寶刀) 글: 문재봉(文裁縫) 스크린에서 관중들이 잘 알고 있는 건륭제는 손에 일년 사계절 부채가 들려 있다. 그의 우아하고 고귀한 기질을 보여주는 이외에 필요한 때면 부채가 방어무기로 쓰이기도 한다. 매번 위기의 시각에 이 부채는 건륭제의 손에서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적을 사지로 몰.. 2012.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