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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무제)22

한무제(漢武帝) 무릉(茂陵): 도굴꾼들이 가장 탐내는 능묘중의 하나 글: 호북위성TV <대게비(大揭秘) 도굴을 얘기하자면, 중국고대의 장례습속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후장(厚葬)은 중국장례문화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다. 대량의 보물을 땅 속에 묻는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재물을 탐하는 자들이 노리게 되고, 이로 인하여 중국특색을 지닌 '도굴문화.. 2016. 12. 18.
파출백가(罷黜百家): 한무제의 가장 큰 실수 글: 이중천(易中天) 한무제는 기실 아주 가련하다 염철회의의 소집은 시원6년(기원전81년)의 일로, 한무제가 죽은지 겨우 6년으로 시골미한(屍骨未寒)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현량문학들의 발언은 철저히 청산하는 의미를 드러냈다. 비록 원래 한무제가 없었더라면 현량문학도 있.. 2014. 8. 26.
누가 한무제를 황제로 만들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만일 아교를 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황금으로 집을 만들어 살게 하겠습니다." 이 귀에 익숙한 '금옥장교(金屋藏嬌)'의 이야기는 야사 <한무고사>에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의 뒷면에는 소리장도(笑裏藏刀)의 탈적(奪嫡)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2014. 7. 17.
한무제의 독존유술(獨尊儒術) 글: 이중천(易中天) 한무제는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 이것은 천추만대에 영향을 끼친 중대사이다. 이때부터, 중화제국은 국가의식형태가 생기고, 변함없는 핵심가치가 생기게 된다. 제국은 하나의 제도로서 이천여년간 안정적으로 연속.. 2014. 7. 17.
금옥장교(金屋藏嬌)는 애정동화가 아니다. 글: 조염(趙炎) 4살짜리 사촌동생이 14살짜리 사촌누나를 처로 취한다. 한무제 유철(劉徹, 원명은 劉彘)이 약 4살때, 고모인 유표(劉嫖)는 그를 무릎에 안고서 그에게 장난스럽게 묻는다: "너는 처를 취하고 싶으냐?" 유철은 말한다: "예" 유표는 곁에 있는 많은 궁녀들을 가리키며, 그.. 2014. 5. 30.
한무제: 진시황보다 장생불사를 추구한 황제 글: 소랑(小浪)3 모택동은 유명한 <심원춘.설>의 후반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강산여차다교(江山如此多嬌), 인무수영웅경절요(引無數英雄竟折腰), 석진황한무(惜秦皇漢武), 약수문채(略輸文采), 당종송조(唐宗宋祖), 초손풍소(稍遜風騷).....구왕의(俱往矣), 수풍류인물(數風流人物), .. 2014.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