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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무제)22

한무제(漢武帝)는 왜 막내아들 유불릉(劉弗陵)을 황위후계자로 삼았을까? 글: 팔점종사기(八點鐘史記)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 기원전156년 7월 14일 - 기원전87년 3월 29일)은 서한(西漢)의 제7대 황제이다. 한무제는 16세때 등극하여, 중앙에는 중조(中朝)를 설치하여 황권을 공고히 했으며, 지방에는 13주의 자사(刺史)를 두어 제후왕과 지방고위관료에 대한 감찰을 강화했다; 찰거제(察擧制)를 채택하여 인재를 설발하고; 문화적으로 동중서(董重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을 확립하여, 유가사상을 국가의 통치사상으로 삼는다. 군사적으로는 외적을 물리쳐 영토를 확장하고 국위를 선양했다. 동으로 조선을 병합하고, 남으로 백월을 점령했으며, 서로는 대완을 정벌하고, 북으로 흉노를 격파했다. 이렇게 한나라의 기본적인 영토를 확립하고, 한무.. 2023. 6. 28.
한무제(漢武帝)와 서왕모(西王母)신앙 글: 장서산(張緖山) 서한(西漢) 한무제때 가장 중대한 사건중 하나는 서역을 경영했다는 것이다. 장건(張騫)이 한무제의 명에 따라 서역으로 간 직접적인 목적은 대월지(大月氏)와 연합하여 공동으로 흉노(匈奴)를 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흉노의 중원에 대한 위협을 철저히 소멸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월지는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후, 안락한 환경에 만족하여 다시 흉노에 복수할 생각이 없었다. 장건은 비록 외교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서역의 풍토인정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서역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었다. 에는 장건에 가지고 온 견문을 기록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특히 눈에 띈다: "조지(條枝)는 안식(安息)의 서쪽 수천리에 있고, 서해(西海)에 접해 있다....안식의 장로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조지에는.. 2023. 6. 10.
한무제때 "무고지화(巫蠱之禍)"의 막후인물은 누구일까? 작자: 미상 무고(巫蠱)의 통상적인 해석은 한 무리의 독충(毒蟲)을 하나의 그릇에 넣고[고(蠱)라는 글자 자체가 벌레를 놓아두는 그릇(皿)이라는 뜻이다], 독충이 서로를 잡아먹게 한 후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한 마리의 독충을 '고'라고 부르는데, 그 독성이 아주 강하다고 한다. 무고술의 구체적인 방법은 오동나무로 만든 작은 인형의 위에 저주할 사람의 이름, 생진팔자등을 쓰고 마법과 저주를 한 다음 고를 저주받을 사람이 거처한 곳 혹은 근처에 풀어주고, 이를 통해 저주받는 사람의 영혼을 통제하고 조종한다는 것이다. 그럼 2천여년전에 발생했던 무고지화가 어떻게 서막을 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기원전92년, 한무제 유철(劉徹)은 건장궁(建章宮)에서 한 남자가 검을 차고 용화문(龍華門)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2021. 1. 14.
한무제는 왜 유불릉(劉弗陵)을 후계자로 삼았을까? 글: 구어정(九魚亭) 유불릉의 생모는 조첩여(趙婕妤)이다. 구익부인(鉤弋夫人)이라고도 불리고, 권부인(拳夫人)이라고도 불린다. 한번은 한무제가 사냥을 갔는데, 하간국(河澗國)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한무제의 곁에 있던 방사가 현지에 기녀자(奇女子)가 있다고 말한다. 한무제는 미신을 믿어, 사람을 보내어 찾게 했더니, 금방 한 여자를 찾아낸다. 그 여자가 바로 구익부인이다. 여자는 아주 기괴했다. 두 손을 꽉 쥐고 있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펴고자 해도 펴지지 않았다. 한무제는 호기심이 발작하여, 직접 말에서 내려, 그 여자의 주먹을 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의 자하선자가 자청보검을 뽑는 사람은 하늘이 골라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마침 지존보가 자청보검을 뽑아서, 그 후에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 2020. 10. 8.
복비죄(腹誹罪)에 관하여 글: 송지견(宋志堅) 장탕(張湯)도 사마천이 <혹리열전>에 집어넣었다. 실사구시적으로 말하자면, 그 10명의 '혹리(酷吏)'들 중에서 그는 그래도 청렴한 편이다. "장탕이 죽고나서, 가산은 오백금이 넘지 않았다. 모두 하사받은 것이고, 다른 사업은 한 것이 없다." 그러나 공정한 법집행.. 2018. 11. 14.
한무제는 왜 구익부인을 죽여야 했을까?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무릇 업적을 세운 제왕들은 큰 재주도 지녔지만 큰 재앙도 만들어낸다. 이런 인물이 역사상 드물지 않다. 그 걸출한 대표인물은 바로 진시황과 한무제이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 풍격이 아주 비슷할 뿐아니라, 개인적인 취향도 거의 비슷했다. 일생동안 장생불로.. 2018.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