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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262

중국역사상 문인과 무장의 숙명 글: 운중군(雲中君) 도연명은 행택현령의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리고 채국귀은(採菊歸隱)의 길을 선택한다; 시선 이백은 재주가 넘쳤고, 원대한 포부가 있었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많은 시가를 남긴다. 관료로서는 뜻을 펼치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 2013. 11. 16.
만리장성은 단지 외적을 막기 위한 것일까? 글: 양혜왕(梁惠王) 고대에 "관량(關梁)"은 합쳐서 불렀다. 바로 교량(橋梁)과 관문(중국어로는 '關卡')을 합친 말이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이는 같은 것이었다. 왜 "교량"을 "관문"과 같이 취급했을까? 첫째는 고대인들이 변경(국경선)은 자연스러운 산(山)과 물(水)을 기초로 한다. 강물.. 2013. 11. 10.
여자화장실이 없던 시절 글: 이개주(李開周) 요즘 남자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간다면, 고도근시이거나 변태일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분명히 얻어맞으며 끌려나올 것이다. 다만, 민국시대에 남자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자주 있던 일이다. 믿기지 않으면 1931년 6월 5일자 <월화보>, 1931.. 2013. 11. 10.
왜 중국인은 혈기는 없으면서 반란은 잘 일으켰는가? 글: 마혹(摩酷) 중국인에게 혈기는 없다. 이것은 역사나 일상생활에서 무수한 사례를 여기저기서 첮아볼 수 있다. 다만 만일 시야를 넓혀보면, 큰 역사의 각도에서, 중국인은 반란을 가장 좋아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반란의 횟수가 많기로, 빈도가 잦기로 따지면 세계역사상 보기 드물.. 2013. 10. 7.
당덕강(唐德剛): 삼협사관(三峽史觀) 글: 부국용(傅國湧) 2009년 10월 26일, 일대사학자 당덕강 선생이 갔다. 1920년에 출생한 그는 난세에 태어난 것이다. 역사는 그가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직업일 뿐아니라, 그의 인생경력과 생명체험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군벌혼전, 국민혁명, 항일전쟁, 국공내전등 일련의 대역사를 친히 .. 2013. 8. 5.
고힐강(顧頡剛): 중국고대사에 원자폭탄을 던진 인물 글: 한삼주(韓三洲) 90년전인 1923년 5월, 30살된 고힐강은 공개적으로 전현동(錢玄同)에게 보내는 1통의 서신과 안어(按語)를 발표해서, 명확히 그의 "겹겹이 쌓아서 만든 중국고사(層累地造成中國古史)"이론을 제기한다. 이 이론의 기본내용은 이렇다. 선진(진나라이전)의 역사기록은 한 층.. 2013.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