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88

무술변법운동의 핵심주력은 누구인가? 글: 진명원(陳明遠) 과거에 많이 알려진 내용은 "강유위(康有爲, 캉유웨이)가 무술변법의 지도자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나중에 캉유웨이, 양계초(梁啓超, 량치차오)가 선전하고 조작하고 날조한 것이다. 실제로, 1898년 광서제가 '무술변법'을 시작할 때의 .. 2008. 6. 20.
야사(野史) 속의 이연영(李蓮英) 글: 신공무기(申公无忌) 정사(正史)를 읽는 틈틈이 야사(野史)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청나라말기의 역사를 읽다보면 대태감(大太監) 이연영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그는 세력을 부리고 권력을 농단했으나, 신분은 미천해서 정사에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야사에서는 각종 에피소드와 .. 2008. 6. 19.
진비(珍妃) : 서태후에게 대든 특이한 후궁 글: 중화유산 중국의 봉건사회에서 후궁은 그저 황제의 후손을 잇기 위한 도구이며, 전례를 행할 때 곁에서 서 있는 역할을 할 뿐이었고, 자신의 의지나 개성을 가져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에 감히 봉건예절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하고, 세속에 대하여 도전을 한, 강렬한 반항심리를 지닌 .. 2008. 1. 2.
처마(車瑪) : 대청제국의 가장 키작은 난장이 청나라에서 가장 난장이는 누구인가? 많은 중국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아주 생소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인디애나주 녹스시(Knox City)에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어린 아이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중국의 처마(車瑪)이다. 왜냐하면 그.. 2007. 11. 28.
청나라의 마지막 3명의 황제는 왜 자식을 두지 못했을까 글: 미상 광서제도 자손이 없고, 그의 전임황제인 동치제도 자손이 없고, 그의 후임황제인 선통제도 자손이 없다. 동치제는 19세때 죽었는데, 아들 하나 딸하나 남기지 못했다. 야사에 의하면 황제가 죽었을 때 황후인 아루터씨가 이미 임신했다고 하지만, 믿을만한 사서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 청.. 2007. 11. 2.
첨세채(詹世釵) : 청나라때 세계 최고의 키다리? 1880년경 홍콩에서 찍었다는 사진 무원현 홍관촌에 남아 있는 첨세채 집의 문: 3미터가 넘는다. 글: 추효(鄒曉) 강남도시보 기자 청나라때 사람이 쓴 <<야우추등록(夜雨秋燈錄)>> 권4의 <<장인(長人, 키다리)>>편에 보면, 강서성 무원현(婺原縣) 사람인 첨새채는 먹을 만들어 생계를.. 2007.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