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1383 "와신상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글: 유병광(劉秉光)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얘기하면, 습관적인 사고에 따라, 사람들은 월왕 구천을 떠올린다. 그리고 구천이 고생을 하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노력한 것을 생각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와신상담"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다. 이를 통하여 각고의 노력을 .. 2013. 4. 13. 명나라의 4차에 걸친 북경위기 글: 창해일적수(滄海一滴水) 명나라가 건국한 후 276년간(1368년-1644년), 일찌기 3번이나 제국의 심장인 수도를 직접 위협하는 대사건이 벌어졌고, 명나라는 거의 멸망직전까지 갔다. 이 3차의 대사건은 각각 1449년 야선(也先)이 이끄는 와랄(瓦剌)부의 북경포위공격; 1550년 엄달한(俺達汗)이 .. 2013. 4. 13. 진시황의 250만대군은 어떻게 사라졌는가? 글: lielie 진나라 멸망이전의 군대는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분명히 250만명이상이다. 이 250만명의 진나라군대는 진나라멸망전에 어디에 분포되어 있었는가? <사기>와 관련사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50만의 진나라군대는 영남에 주둔하고 있었다. 총사령관은 임효(任囂)이고, .. 2013. 4. 13. 명나라 대예의지쟁(大禮儀之爭)의 진상 글: 자작자애2(自作自愛2) 정덕제(正德堤)가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가 오기까지 35일간, 양정화(楊廷和)는 실제로 대명제국을 통치한다. 그는 즉시 이미 죽은 황제의 조정을 해체하고, 변방주둔군을 불러들여 태감들을 제압하고 나서, 경사의 부대는 그들 원래의 지휘관들에게 돌려주었다... 2013. 4. 13. 효과군(驍果軍) vs 와강군(瓦崗軍): 수나라말기 양대강군의 전투 작자: 미상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효과군(驍果軍)"은 우둔위(右屯衛)에 예속되어 있었고, 황상(수문제)의 친위대이다. 개황3년, 수문제는 효위군(驍衛軍)과 과의군(果毅軍)을 합쳐서 효과위(驍果衛)로 만들었고, 군대내의 장병들로 충당했고, 혈응(血鷹, 핏빛 매)를 왼쪽팔에 문신으.. 2013. 4. 13. 중국근대사상의 번역문제 글: 풍학영(馮學營) 초기 중국의 외국과의 교류를 보면 번역인재가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네르친스크조약>은 3개의 언어본으로 체결되었다: 만주어, 러시아어, 그리고 라틴어. 그리고 "라틴어가 우선한다." 대청국과 제정러시아가 조약을 체결하면서 모두 제3국언.. 2013. 4. 13. 이전 1 ··· 127 128 129 130 131 132 133 ··· 23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