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lielie
진나라 멸망이전의 군대는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분명히 250만명이상이다. 이 250만명의 진나라군대는 진나라멸망전에 어디에 분포되어 있었는가? <사기>와 관련사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50만의 진나라군대는 영남에 주둔하고 있었다. 총사령관은 임효(任囂)이고, 부사령관은 조타(趙佗)이다. 그중 복건의 10만은 각각 민중, 민남, 용암, 삼명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20만은 광동에 있는데, 각각 게양, 용천, 번우, 사회, 고주 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20만은 광서에 있는데, 각각 귀항, 오주, 하주, 계림, 하지 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2. 40만의 진나라군대는 장성을 지켰다. 각각 은천, 유림, 삭주, 대동, 장가구, 승덕 등지에 주둔했다.
3. 40만의 진나라군대는 관중, 함양에 주둔했다.
4. 기타 각 성에도 110만의 진나라군대가 있었다. 그중 10만은 상주, 단봉에 있고, 10만은 형주, 남양에 있고, 10만은 낙양, 운성에 있으며, 10만은 신정, 형양, 개봉에 있었고, 10만은 진중, 진성, 장치, 복양에 있으며, 10만은 한단, 석가장, 북경, 당산에 있었고, 10만은 산동의 덕주, 유방, 치박, 태안에 있었고, 10만은 안휘, 강소, 절강 삼성에 있으며, 10만은 강서, 호남, 귀주 삼성에 있고, 10만은 사천, 한중, 중경에 있으며, 10만은 농서, 주천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250만의 진나라군대는 어떻게 사라졌단 말인가? 사료의 기록을 보자:
1. 진승, 오광의 반란군이 정주, 개봉, 낙양, 남양등지의 진군을 없앴는데, 20만명 이상이다. 여기에는 주문이 동관, 관동, 화음등지에서 없앤 20만의 형도진군(刑徒晋軍)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2. 항량, 항우, 유방이 정도, 동아, 서주, 회북, 비주, 조장등지에서 없앤 진군이 10만명 이상이다.
3. 항우가 거록, 한단주위에서 제, 한, 위, 조등 각국의 제후와 장한, 왕리의 40만진군(관중, 함양, 진중, 진성등지에서 파견해온 인원)을 소멸시켰다.
4. 항우는 40여만의 초군을 이끌고, 관동, 낙양을 공격하여 30만 진군을 소멸시켰다. 그중 20만의 진군은 낙양의 신안에서 갱살된다.
5. 유방은 남양, 무관, 단봉, 상주 등지에서 15만의 진군을 소멸시켰다.
6. 전국의 각지 반군은 귀주, 중경, 호남, 호북, 강서, 안휘, 강소, 절강, 하남과 제, 한, 위, 조등 각국의 귀족과 산동, 하북, 산서등지에서 모두 35만이상의 진군을 소멸시켰다.
상술한 6개를 합하면 150만 진군이다. 아직 주문이 관동, 동관, 화음, 관중에서 소멸시킨 20만의 형도진군은 포함하지 않았고, 영자영이 마지막에 함양, 관중에서 이끌고 투항한 10만의 진군 숫자도 포함하지 않았다.
장성을 지키는 40만진군은 단지 은천, 유림에 있다. 즉, 영하, 섬서의 일대에 있는 10만진군은 진이세가 관중으로 불러들여 결전에 참여하게 했다. 나머지는 산서, 하북의 삭주, 대동, 장가구, 승덕 등지의 삼십난 대군이다. 분명히 위, 조, 연의 귀족군대가 막아냈다. 일부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고, 일부는 창끝을 거꾸로 돌려 반진대오에 합류했다. 혹은 사방으로 흩어져 숨거나 이름을 숨기고 은거했다. 그러나 30만진군의 군인성분으로 보면, 기껏해야 10만이 진나라 사람이고, 20만은 위, 한, 연, 제, 초등 나라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은 각국의 반진대오에 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영남에 주둔하는 50만 진군은 그 군인의 성분으로 보더라도, 분명히 10만은 진나라사람이고, 10만은 한, 위, 조 등의 사람이고, 30만은 초나라 사람이다. 주로 귀주, 호남, 호북, 강서, 안휘, 하남등지의 초나라사람이다. 진승, 오광의 '장초'의거는 3,5개월도 지나지 않아, 반드시 전국각지로 번져갔다.
영남의 30만은 원래 초나라사람으로 구성된 진군이니 반드시 진나라복장을 벗고 초,월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10만은 원래 한, 위, 조의 사람으로 구성된 진군이니, 반드시 더 이상 진나라병사로 남고자 하지 않았다. 즉, 영남3성의 50만진군은 마음이 흩어졌다. 당시 영남 50만진군의 최고사령관인 임효(호북인), 부사령관 조타(하북인)이 진이세의 팔백리쾌마전령을 듣지 않고 병력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당시 당지의 민심을 따른 것이다. 진나라군대는 월나라군대로 바뀌며, 남월국을 창립한다. 지역은 양광(광동,광서)과 귀주, 호남, 강서의 남부 및 복건의 ㅡ장주까지 합쳐서 1만여리에 걸친 땅을 차지했다. 10만은 원래 진나라사람으로 구성된 진군은 피살되거나 투항하거나 산림으로 도망쳐서 이름을 감추고 월인으로 변신했다. 이것은 바로 남월무제 조타가 입국할 때이다. 바로 40만월국군대를 보유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시 진이세가 전국각지에서 관중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던 진군이 단지 사천, 한중, 농서, 주천, 은천, 유림의 삼십만진군이었고, 원래 관중, 함양에 주둔하던 40만을 합하여도 70만진군일 뿐이었다. 이 숫자는 바로 진군이 관중, 함양에 파견한 것이고, 거록, 낙양, 신안의 세 곳에서 항우의 초군과 각국 제후군대에 소멸된 숫자이다.
계산해보면,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진시황의 250만진군은 바로 이렇게 사라진 것이다. 그러므로, 항우가 단지 8만초군을 이글고 장한, 왕리의 40만진군을 소멸시켰는데, 그것이 항우가 초군을 이끌고 모든 진군을 소멸시켰다는 관점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진군은 원래의 초나라인민이었다. '초'자의 깃발에 소멸한 것이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객관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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