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남경과 히로시마

중은우시 2006. 5. 16. 01:56

프랑스의 첼시라는 이름을 가진 여기자는 2차대전때 피해를 입어 파괴되었던 도시들을 탐방하였고, 이러한 도시들이 전후에 어떻게 발전변화해갔는지를 추적했다고 한다. 그 중에 두 개의 도시에 대하여 그녀는 가장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의 남경과 일본의 히로시마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이 두개의 도시는 2차대전중에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도시들이었기 때문이다. 첼시가 두 개의 도시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읽어보면, 중국인으로서는 놀랍고 부끄러운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 중에 중요한 몇 가지만을 들어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후도시유적의 보호

 

남경은 현재 당년의 "대학살"의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 남경대학살기념관은 도시에서 떨어져서 건설되어 있다.

 

히로시마는 당년의 원다탄폭파중심부근의 건축물잔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여기에 히로시마세계평화기념자료관을 건립하였다.

 

2. 사망자의 통계

 

남경대학살은 현재 공포된 공식통계숫자는 36만명이상이라는 것이다. 만명단위도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남경대학살기념관의 "곡장(哭墻)"에는 단지 3000여 사망자의 이름만 새겨져 있다.

 

히로시마는 2001년 8월 6일 공고한 원자판피해자수는 221,893명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이름은 모두 히로시마세계평화공원에 새겨져 있다.

 

3. 기념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수

 

남경시민은 매년 남경대학살기념관에서 기념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수는 2,000명정도이고, 가장 많을 때에도 1만명이 넘지 않는다. 이것은 남경시 인구의 1/2,800 또는 1/560에 불과하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방문한 사람은 580만인차이며 매년 평균 58만명차에 미치지 못한다.

 

히로시마시민은 매년 기념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수가 5만명정도이고, 히로시마인구의 1/21이다. 히로시마평화공원과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에는 매년 150만인차가 참관한다.

 

4. 선전과 연구

 

남경시는 오랫동안 남경대학살에 대한 선전이나 연구가 부족했고,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남경대학살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히로시마는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가 첫번째 원자탄이 투하된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1996년에 히로시마평화기념지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