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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민국 후기)

되돌아보는 항일전쟁사 (발췌)

by 중은우시 2006. 10. 10.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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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항일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중국대륙에서 공개된 역사에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우선, 역사교재에서 공산당 및 중국인민해방군의 항일전투가 위주이고, 국민당과 국민혁명군은 부수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한가? 본인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첫째, 쌍방에서 희생한 고급장군의 수량을 보면, 항일전쟁에서 중국대륙의 견해에 따르면 노구교사건이래로 1945년 6월까지 국민혁명군에서 소장 이상의 장군이 모두 115명이 희생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 중 상장(대장)이 8명, 중장이 42명, 소장이 65명이다. 국민정부의 하응흠에 따르면 희생된 장군이 모두 206명이라고 되어 있다. 100여명이건 200여명이건간에 장군들이 많이 희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희생이 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에서 희생된 고급장군은 단 2명 뿐이다. 좌권(左權, 8로군의 부총참모장)과 팽설풍(彭雪楓, 신4군의 사단장) 장군이 그들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국민당이 부수적인 입장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둘째, 항전한 일본군과 그 지역을 보더라도, 국민혁명군의 공헌은 8로군이나 신4군보다는 훨씬 크다. 국민혁명군의 대일항전지역이 주전장이었고, 대부분의 일본군을 맞이하여 싸웠다. 국민혁명군은 서북이외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팔로군과 신사군은 화북과 화중등의 일부지역에서만 싸운 것이다. 즉, 부분전투에만 참여한 것이다. 국민혁명군이 승리한 전투에서는 일본군 수만명을 죽였다. 예를 들어 태아장대첩, 만가령대첩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군대가 가장 자랑하는 평형관대첩에서 겨우 1천여명의 일본후송부대를 섬멸하여을 뿐이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군의 장군들중 중국에서 사망한 자는 모두 129명이라고 한다. 그 중 단지 3명만이 팔로군과의 전투중에서 죽었다.

 

셋째, 항일전쟁승리후 일본군이 항복할 때, 중국의 대표는 국민혁명군총사령관 하응흠이었지, 팔로군의 총사령관 주덕이 아니었다. 많은 일본군은 팔로군, 신사군에 항복하려하지 않았다.

 

이외에 전략상에서 공산당은 항일에 적극적이었고, 국민당은 항일에 소극적이고 반공에만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이 그러한가? 전혀 아니었다.

 

국민당과 국민혁명군의 대일항전의 전략은 '지구소모전략'과 나중에 '공간으로 시간을 벌고 작은 승리를 모아 큰 승리를 거두는 것'이었다. 이것은 실제로 모택동의 '지구전을 논한다'에서 말한 것과 내용이 같은 것이었다. 일본군의 우세한 무기와 잘 훈련된 군대와 싸우는데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송호전쟁을 예로 들면, 국민당은 78개 사단, 7개 독립여단, 3개 잠정편성여단, 7병 7개단, 헌병 1개단, 공둔 제2 내지 제9대대와 잠정편성대대, 그리고 심지어 재정부세경총단, 중안군관학교교도총대, 상해시보안총단, 상해시경찰총대, 강소성보안단까지 전선으로 보냈다.

 

송호전쟁이 터진후 하루에 평균 국민당의 1개사단병력이 사망했다. 제3전투지구사령관 풍옥상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 한개사단 한개사단을 전장에 투입했다. 어떤 사단은 투입후 3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절반이 죽었다. 어떤 사단은 5시간만에 2/3가 죽었다. 이 전쟁은 용광로와 같아서 들어가면 녹아버렸다"

 

당시 국민당의 최정예부대인 제98사단은 18일간의 전투에서 62%의 전투병력을 상실했고, 대대장 및 그 이하의 장교 200여명이 사망했다. 국민혁명군 제8다단의 도치악부대는 3주간의 작전끝에 8000여명이 700명으로 줄었다. 국민혁명군 78사단의 467연대는 투입되자마자 10분만에 전부 사망했다. 송호전쟁때 일본군은 비행기가 3000여대이고, 국군은 250대였다. 일본군은 항공모함 4대, 전투함 100여척이 있었지만 국군은 하나도 없었다. 일본군은 참전병력이 25만이고, 장비가 최신이었으나, 국민혁명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여러번 총사령관을 갈아치워야 했다.

 

이 송호항전에서 국민혁명군은 85개사단을 소모하고, 333,500여명이 사망했다.

 

장사회전을 보면, 제1차 장사회전때 일본군 3.3만명을 죽이고, 제2차 장사회전때는 4.8만명을 죽였으며, 제3차 장사회전때는 5.6만명을 죽였다. 중국대륙의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는 임표의 평형관대첩때 1000여명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혁명군의 이 승리도 기념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