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방천량(方天亮)
4월하순이후, 홍콩의 5명 주요국장이 교체되었다. 베이징은 동작이 더욱 컸다. 중공총서기 시진핑은 직접 홍콩경찰의 '우두머리' 덩빙창의 실질적인 뒷배경인 중국공안부 부부장 쑨리쥔을 체포했다. 이후 공안부와 홍콩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
4월 24일, 베이징시인대회의에서는 공안부 상무부부장 왕샤오홍의 베이징시 공안국국장 직무를 면직시키고, 동시에 기얜쥔(亓延軍)을 베이징시 부시장, 공안국 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1주일내에 중국 공안부의 두 부부장에게 나타난 관직변동이다. 하나는 쑨리쥔이 조사를 받게 된 것이고, 하나는 왕샤오홍이 겸직업무에서 면직된 것이다.
왕샤오홍의 뒤를 이어 베이징시공안국장이라는 '구문제독'의 요직을 차지한 사람은 왕샤오홍의 부하이자, 베이징시 공안국 부국장으로 있던 기얜쥔이다.
기얜쥔은 1964년 10월생이고, 산둥(山東) 라이우(萊蕪) 사람이다. 일찌기 산둥과 허난성 소방총대 총대장을 지냈다. 2015년 8월 공안부 소방국 방화감독처 처장, 소방국 부국장을 지낸다. 2016년 5월에는 베이징시 공안소방총대국장(촟대장)에 오른다. 2019년 1월에는 베이징시 공안국 당위부서기, 부국장, 상무부국장등의 직무를 맡았다.
기얜쥔은 전후로 허난, 베이징 공안계통에서 왕샤오홍과 함께 일을 했었고, 왕샤오홍이 시진핑에게 공안부 부부장으로 발탁된 후, 기얜쥔은 왕샤오홍에 의하여 베이징시 공안국 상무부국장이 되어 왕샤오홍의 제1부수(副手)가 된다.
왕샤오홍은 시진핑과 사적인 교분이 두텁다. 일찌기 1990년대에 푸저우시위서기로 있을 때, 왕샤오홍은 푸저우시공안국장을 지냈고, 시진핑의 안전보위를 책임졌다. 그는 시진핑의 호위무사라 할 수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왕샤오홍은 당시 시진핑의 집 아랫층에 살았다. 펑리위안이 푸젠에 살지 않았으므로, 시진핑이 출장가야하는 기간동안 항상 딸인 시밍저(習明澤)를 왕샤오홍의 집에 맡길 정도로, 왕샤오홍의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은 아주 강하다.
최근 장쩌민파가 장악한 정법위 공안계통에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4월 19일, 공안부 부부장 쑨리쥔이 낙마하고 4월 20일, 사법부장이자 전 공안부 상무부부방인 푸정화가 사법부 당조부서기의 직에서 물러났다. 4월 21일, 푸정화가 중공정법위고위층회의에 불참하고, 시진핑이 저장에 있을 때의 옛부하이면서 랴오닝성장으로 있는 탕이쥔(唐一軍)이 정법위회의에 참석했다.
아마도 양회후 푸정화는 사법부장의 직위도 지킬 수 없게 될 것같고, 탕이쥔에게 물려주게 될 것같다.
2019년 5월, 공안부에 특근국이 설치되었고, 11월, 왕샤오홍이 최초로 '특근극당위서기, 국장'의 신분으로 공개된다.
당시 왕샤오홍이 가진 직함은 이미 7개나 되었다. 공안부당위부서기, 상무부부장으로 북경시부시장, 북경시공안국당위서기, 북경시공안국장을 겸임하고, 또한 특근국당위서기, 국장을 겸임한다.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공안부부부장은 일반적으로 산하의 국장을 겸임하지 않는다. 왕샤오홍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당시 <신기원>주간평론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정부내에 사람이 없는 것같다(朝中無人)" 시진핑이 안심하고 맡길 사람이 왕샤오홍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왕샤오홍도 시진핑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이번에 쑨리쥔을 체포할 때, 갔던 사람은 중기위의 인물이 아니라, 왕샤오홍 특근국이 관할하는 중앙경위단이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이변풍'에서 소식통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쑨리쥔을 조사하는 것은 원래 아주 정교하게 계획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쑨리쥔은 금년 2월 우한폐렴이 발생한 우한으로 가서 '안정유지'를 감독했다. 이는 시진핑진영의 인물이 특별히 고안한 '조호이산(調虎離山)의 계책이고, 쑨리쥔을 우한으로 보낸 것은 왕샤오홍이 쑨리쥔의 업무를 인수받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쑨리쥔이 우한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쌍규"를 당한다. 쑨리쥔은 4월 1일이전에 중기위에 의해 조사를 받는다. 베이징은 4월 18일 덩빙창이 15명의 민주파인사를 체포한 다음 날, 대외적으로 쑨리쥔이 조사받는다는 소식을 공개한 것이다.
중국의 관례에 따르면, 먼저 내부적으로 증거조사를 마친 후, 대외적으로 조사개시를 선언한다. 중기위에서 조사하는 사람은 100% 중대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떤 관리가 조사받는다는 말은 실제로 그 관리의 낙마를 의미한다. 다시는 원래의 직무로 돌아갈 수 없고, 당기나 국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공안부는 쑨리쥔의 문제를 3가지로 통보했다: 첫째, 구시심비(口是心非), 양봉음위(陽奉陰違), 유령불행(有令不行), 유금부지(有禁不止), '양면인'으로 '양면파'였다. 둘째, 임인유친(任人唯親), 임인유리(任人唯利), 랍방결파(拉幇結派), 소집단, 소써클을 만들었다. 셋째, 자신을 조직보다 위에 놓고, 망자존대(妄自尊大)하며, 아행아소(我行我素)했고,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산하기관이 분장업무를 자신의 권한으로 했다.
쑨리쥔과 호콩의 관계에 대하여 중국은 '반송중'운동때, 홍콩의 소위 '지폭제란(止暴制亂)'의 지휘중심을 홍콩에 설치하지 않고 선전에 두었다. 명목상으로 공안부장 자오커즈가 주관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부부장 쑨리쥔이 홍콩 완차이경찰본부에 앉아서, 반송중기간동안 홍콩의 여러 건의 투신, 바다에서 떠오른 시신사건등을 쑨리쥔이 막후에서 조종한 것이다.
쑨리쥔이 조사받는 원인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5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쑨리쥔은 시진핑에 대하여 불경한 언행을 했고, 시진핑의 안전에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시진핑이 우한으로 가서 중국바이러스(우한폐렴)의 상황을 시찰하러 갔을 때, 쑨리쥔이 보안업무를 맡았다. 그 동안 쑨리쥔이 지휘하는 우한의 지방경찰은 시진핑이 데려간 호위인원과 충돌을 일으켰고, 시진핑의 안전에 우려를 발생시켰다. 그후 쑨리쥔은 아주 불만을 가졌고, 원망을 표시했다.
소식에 따르면, 시진핑이 도착한 곳에, "근거리에 배치된 것은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든 무장호위인원으로 모두 중앙경위단 소속이었고, 임무에 참여한 우한경찰은 총에 실탄을 장전하지 못했으며, 시진핑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시진핑이 데려온 저격수는 오히려 우한현지경비인원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둘째, 쑨리쥔은 "시자쥔(習家軍)'에 속하지 않는다. 시진핑은 그에 대하여 안심하지 못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공내부에 '다오시(시진핑타도)'세력이 준동하고 있어 고위층에서 사람을 교체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셋째, 쑨리쥔이 공안국 제1국을 장악하고 있던 동안, 친히 샤오젠화사건, 홍콩코즈웨이베이서점사건, 709사건등 대형사건을 처리했고, 중국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힌다. 이는 간접적으로 홍콩의 반송중운동을 일으켰고, 시진핑이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다.
넷째, 쑨리쥔은 항상 "시반(習辦, 시진핑판공실)" 혹은 "펑반(彭辦, 펑리위안판공실)"의 명의로 공안부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以令諸侯)"의 모습이 있었다.
다섯째, 쑨리쥔은 우한례렴의 핵심기밀을 미국에 누설했다. 특히 우한P4실험실의 정보를. 어떤 사람은 심지어 쑨리쥔이 바로 미국에서 중국고위층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쑨리쥔이 호주에 유학한 기간 및 관리로 있을 때, 호주 및 미국의 정보기관에 포섭된 것같다는 것이다.
중국문제전문가인 탕징위안(唐靖遠)은 위의 다섯가지 원인을 분석하면서, 모두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쑨리쥔의 낙마의 유일한 진정한 원인은 바로 "절할설(切割說, 잘라내기)"이라는 것이다.
"쑨리쥔이 했던 일은 현단계에서 겉으로 보기에 시진핑에게 불리하고, 또한 아주 불리한 것이다. 그를 체포하는 것은 이런 불리한 요소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가 과거에 했던 일은 지금 단계에서 이미 거대한 정치적 마이너스자산이 되어 있다. 잘라내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탕징위안에 따르면, 쑨리쥔은 중국에서 반대파와 인권변호사를 탄압하는 최고위직 인물이고, 파룬공신자를 탄압한 실제집행인이다. 그리고 홍콩민주항쟁운동을 진압한 비밀경찰의 총지휘관이다. 이런 인물이라면 많은 혈채를 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혈채가 당국에 부담이 되면 잘라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시진핑은 현단계에서 국내외로부터 거대한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다. 탕징위안은 이렇게 말한다. 시진핑이 아마도 그를 잘라냄으로써 일정한 정도로 국내외에서 탄압받은 사람들의 원망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동시에 당내에서 나올 수 있는 날카로운 책임추궁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당중앙은 영원히 광명정확하다. 나쁜 짓을 한 것은 모두 아래의 집행자들이다. 그리하여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처벌하면서 승진한 혹리(酷吏)의 최후는 결국 스스로의 잘못때문인 것이다.
대기원의 평론가인 리정콴(李正寬)은 <쑨리쥔을 체포함으로써 시진핑이 위기국면을 벗어날 수 있을가>라는 글에서 시진핑의 기회와 골치거리에 대하여 분석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쑨리쥔은 단지 부부자급 인물이지만, 그는 큰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오시'의 장쩌민파 인물에 속한다. 쑨리쥔을 구금하는 것은 전 정치국상위, 정법위서기 저우용캉을 체포한 것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진핑이 19대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생각지도 못하게, 2017년 19대 전날, 시진핑은 적의 우두머리를 체포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장쩌민, 쩡칭홍과 타협해 버렸다. 장쩌민, 쩡칭홍은 시진핑이 '일존'에 오르는 것을 승락하고, 시진핑은 장쩌민, 쩡칭홍을 체포하지 않겠다고 보증했다. 금방 옛사람들이 말한, "금적불금왕, 필연조화앙"이라는 말이 들어맞게 되었다. 이번에 시진핑이 쑨리쥔을 체포한 것은 중공이 무너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얻은 좋은 기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한 큰 일은 바로 군대통제권을 장쩌민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다. 그러므로, 장쩌민이 심어놓은 군위의 두 부주석 쉬차이허우, 궈보슝이 차례로 낙마한다.
군대개혁후, 시진핑은 원래 저우용캉사건을 빌어, 장쩌민파가 장악하고 있던 정법계통을 새롭게 일신하려 했었다. 여기에는 공안, 무경, 법원, 검찰등 장쩌민파를 제거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장쩌민파는 극력 저항했고, 시진핑이 정법위계통을 숙청하는 일은 계속 미뤄지게 된다.
쑨리쥔의 낙망와 푸정화의 면직은 아마도 시진핑이 정법위계통을 교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2017년 11월, 공안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자오커즈가 돌연 시진핑에 의해 공안부장에 임명된다. 자오커즈는 연령, 경력으로 볼 때, 시진핑이 뽑은 과도기적 인물에 불과하다. 왕샤오홍이 점차 승진하여 그의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2017년 양회때, 자오커즈는 64살이고, 이미 은퇴를 준비할 연령이다. 2016년 1월, 그는 허베이성 인대상위회주임에 선임되었었다. 즉, 자오커즈는 원래 65세이후, 인대주임만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리잔슈가 그를 좋게 보아서 시진핑에게 추천했고, 공안부장에 올라 대내안정유지의 칼잡이가 된 것이다.
이후에 아마도 왕샤오홍이 자오커즈의 뒤를 이어 공안부장에 오를 것이다. 자오커즈는 아마도 양회후 장쩌민파의 궈셩쿤의 뒤를 이어 정법위서기를 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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