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증국번)

증국번은 사위 5명을 왜 하나같이 못난이들로 골랐을까?

중은우시 2018. 6. 7. 11:28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청나라말기의 명신 증국번은 독보적인 안목으로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다. 그러나, 누구든 실수할 때가 있는데, 증국번의 실수도 유명하다.


증국번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는데, 사위를 고를 때마다 항상 실수했다.


증국번의 장녀는 증기정(曾紀靜)(1841-1871)인데, 증국번의 한림원 동료이자 친구인 원방영(袁芳瑛)의 아들 원유생(袁楡生)에게 시집을 갔다. 원유생은 방탕하기 그지없는 자였고, 부채만 쌓여갔다. 증기정과 결혼한 후에도 여색을 탐하고 술독에 빠져 살았으니 쓰레기같은 인물이었다. 결국 증국번이 직접 감독하려 하자, 이 사위는 아편을 먹고 자살하여, 증국번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린다.


증국번의 차녀는 증기요(曾紀耀)(1843-1881)인데, 진원연(陳源䆓)의 아들 진송년(陳松年)에게 시집간다. 진송년은 과거에 실패하고, 성격이 포악해서, 자주 증기요를 때렸다. 둘째딸은 평생 우울하게 살다가 죽는다.


증국번의 삼녀는 증기침(曾紀琛)(1844-1912)인데, 나택남(羅澤南)의 아들 나윤길(羅允吉)에게 시집간다. 나윤길도 성격이 아주 포악했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증기침에게 불같이 화를 냈으며, 증기분(曾紀芬)에게 마통(馬桶)을 닦도록 시키기도 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가 없다. 증국번은 사위교육을 잘 시키지 못했고, 딸이 친정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증기침은 나씨집안에서 죽을 때까지 참고 지내야 했다.


증국번의 사녀는 증기순(曾紀純)(1846-1881)인데 대청의 중신 곽숭도(郭嵩濤)의 아들 곽의영(郭依永)에게 시집간다. 그러나, 곽의영은 몸이 좋지 않았고, 증기순과 결혼한지 3년만에 병사한다. 증기순은 과부로 지내다가 36살에 병사한다.


증국번의 오녀는 증기분(曾紀芬증)(1852-1935)인데, 18살에 섭집규(聶緝槼)에게 시집간다. 섭집규의 부친은 현관(縣官)으로 하급관리였고, 섭집규도 뛰어나지 못했다. 과거에 응시하여 계속 낙방한다. 증국번이 발탁해서 섭집규는 상해제조국에서 일을 맡았고, 나주엥 순무까지 승진한다. 그가 증국번의 사위 중에서는 가장 나은 편이다. 그러나 뛰어나다고는 할 수가 없고, 모두 증국번이 도와주어서 얻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