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역사(知歷史)
이건성은 대당의 황태자로서, 그의 적계역량과 인맥자원은 엄청나게 대단했다. 문신,무장이 부지기수였고, 원래 이세민을 수습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아쉽게도 한번 실수하여 모조리 잃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를 따르던 심복들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그 중의 대표적인 인물 8명을 뽑아서 살펴보기로 한다.
위징(魏徵). 위징은 이건성 신변의 최고모신(謀臣)이었다. 여러번 이건성에게 먼저 손을 써서 이세민을 제거하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건성이 손을 쓰지 못했다. 현무문사변후 이세민이 묻는다. "너는 왜 우리 형제간의 감정을 이간질했는가?" 위징이 대답한다. "태자께서 일찌감치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세민은 이건성의 부하들을 다독이기 위하여 위징으로 하여금 이건성의 하북에 있는 무장역량을 다독이도록 하고 그를 죽이지 않는다. 위징은 그 후에 주군을 바꾸어 이세민에게 충성을 다한다. 그리하여 공동으로 정관성세를 만들어내고 군명신현(君明臣賢)의 천고가화를 만들어 낸다.
왕규(王珪), 왕규는 이건성 태자부의 비서실장격이다. 태자부의 지시는 모두 그에게서 나왔고, 이건성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이건성이 죽은 후 왕규는 위징과 마찬가지로 주군을 바꾸어 재상(宰相)까지 오른다. 그는 위왕(魏王) 이태(李泰)의 스승을 지내고, 이세민은 자신의 딸을 왕규의 아들에게 시집보낸다. 그는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위징처럼 충직했다. 그 부하를 보면 그 주군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이건성이 왕규와 위징을 중용한 것은 거꾸로 이건성은 확실히 황제가 될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골라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예(羅藝). 나예는 이건성이 유흑달(劉黑闥)을 토벌한 후 하북에 심어놓은 군사역량이다. 입장은 상당히 명확했다. 이세민이 심복을 보내어 그를 회유하려 했는데 그는 핑계를 잡아 때려버린다. 나예는 고의로 돌궐군을 막지 않아 돌궐인들이 장안성까지 진격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이세민은 온갖 힘을 다 모아서 겨우 돌궐인을 물리친다. 돌궐인들이 물러나자마자, 이번에는 나예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세민은 장손무기(長孫無忌)와 위지공(尉遲恭)을 보내어 반란을 평정하게 한다. 나예는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다. 나예는 돌궐인의 손을 빌어 이세민을 제거함으로써 이건성의 복수를 하려 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이원(李瑗). 이원은 이건성과 사촌형제간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이건성이 이세민을 죽이려고 할 때 그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한 적이 있다. 현무문사변후 이세민은 그를 경사로 불러들인다. 그는 사정이 탄로난 줄 알고, 동료 겸 친척인 왕군곽(王君廓)과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상의한다. 그러나 왕군곽은 그를 목졸라 죽이고 수급을 경사로 보낸다. 조정에서는 명을 내려 그를 종실속적에서 이름을 빼서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낟. 그의 처첩은 이세민이 거둔다.
위정(韋挺). 이건성이 어려서부터 같이 놀면서 자란 친구이다. 태자부의 경호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이건성은 그에게 상당히 잘해주었고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양문간(楊文干)사건으로 이건성이 곤경에 빠지고 그는 유배된다. 그래서 현무문사변때 그는 장안성에 없었다. 이세민은 그를 불러들여서 자녀를 결혼시켜 사돈이 되고, 그 이후 벼슬은 상서우승(尙書右丞), 이부시랑(吏部侍郞), 황문시랑(黃門侍郞), 어사대부(御史大夫)등을 지낸다. 이세민이 요동을 정벌할 때 그는 후방에서 군수물자조달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유배되었다가 병사한다. 만일 현무문사변때 그가 경사에 있었다면 이원길과 마찬가지로 이건성에게 조심하라고 권했을 것이고, 아마 이건성은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설만철(薛萬徹). 설만철은 나예와 친구이다. 나예가 이건성에게 그를 추천했고, 이건성의 심복이 된다. 현무문사변 당일, 설만철은 이건성이 곤경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2천명을 이끌고 현무문을 맹공한다. 그리고 진왕부도 공격하려 한다. 나중에는 종남산으로 도망가서 화를 피한다. 나중에 나와서 자수를 하는데, 이세민이 말한다. 이는 모두 충성심에서 나온 행동이다. 의로운 인물이다. 그리고는 그의 죄를 추궁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는 여러번 전공을 세운다. 돌궐, 토곡혼, 설연타, 고구려와도 모두 싸워본다. 이치(李治, 당고종)가 즉위한 후 방유애(房遺愛)의 모반에 연루되어 장손무기에게 주살당한다.
풍립(馮立). 그는 무예가 뛰어났고, 글도 약간 읽었다. 이건성이 자신의 오른팔로 여긴다. 이건성이 죽은 후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다. 이때 풍립은 말한다: 살아 있을 때 남의 은혜를 받았는데, 죽었다고 하여 모두 도망치다니, 그게 정말 잘하는 일인가. 그리고 그는 병력을 모아서 현무문을 맹공하여, 현무문의 수비장수 경군홍(敬君弘)을 죽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는 이걸로 태자에게 보답을 했다. 그리고는 자수한다. 이세민이 말한다. 너는 우리 형제의 감정을 이간질했고 ,나의 장병을 죽였다. 그런데도 감히 돌아왔단 말이냐. 풍립이 말한다. 태자는 저에게 은혜가 있습니다. 그를 도와 당신과 싸운 것은 제 직책입니다. 이세민은 그를 풀어준다. 그러자 그는 저는 반드시 죽음으로써 태자(이때의 태자는 이세민임)에게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풍립은 검소하고 청렴했으며, 광주도독으로 있을 때 사망한다.
배구(裴矩). 배구는 이건성 태자부의 관가(管家)였다. 태자부내외의 일과 상벌등음 도두 그가 주재했다. 이건성과 이원길이 죽은 후, 태자부와 제왕부(齊王府)의 이천여명이 태자부에 모여 완강하게 저항했다. 이세민은 배구로 하여금 다서 권하게 한다. 그러자 동궁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배구는 정관원년에 병사한다. 배구는 역대이래로 북제(北齊), 북주(北周), 수(隋)나라에서 벼슬을 지냈고, 일찌기 수문제, 수양제, 우문화급, 두건덕 등을 모시면서 그는 시종 존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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