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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관료사회 철칙: 신군불용구신(新君不用舊臣)

by 중은우시 2017. 7. 21.

글: 풍현일(馮玄一)





이세민이 즉위한 후, 소우(蕭瑀)의 운명은 곡절을 겪기 시작한다. 이세민시대에 소우는 "삼기삼락(三起三落)"을 겪는다. 


제1차, 정관원년 십이월에 발생한다. 이세민이 새로 즉위하고 비록 소우를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임용하지만,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를 중용하기 시작하고, 점차 소우를 멀리 한다. 소우는 마음 속으로 불만을 갖는다. 그리하여 황제에게 밀주(密奏)를 올려 불만을 얘기한다. 이 일로 당태종의 분노를 사서, 그를 면직하며, 소우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반성'하도록 한다. 그러나 공신이므로, 얼마후 당태종은 다시 그를 기용하고, 먼저 태자소사의 직을 주고 다시 그에게 상서좌복야의 직을 회복시킨다.


제2차, 소우가 또 다른 대신인 진숙달(陳叔達)과 말다툼을 벌여, 당태종의 분노를 산다. 소우는 성격이 강직하고 성격이 날카로웠다. EQ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그래서 쉽게 다른 사람과 싸웠고, 쉽게 황제의 분노를 샀다. 당시, 당태종은 대신들과 정무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소우와 진숙달은 의견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조정에서 싸우기 시작하고,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은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 일은 당태종의 인내심을 무너뜨렸다. 그는 매우 화가나고, 그 자리에서 어안을 밀쳐버리고,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린다. 그리고 성지를 내린다: "소우, 진숙달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언어가 실태하고 황상에 불공하니 함께 모든 관직에서 파직하니, 집으로 돌아가서 문을 걸어닫고 반성하라."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당태종은 다시 그를 기용하지만, 더 이상 재상은 아니었다.


제3차, 정관20년, 소우가 동료들과의 관계가 나빠졌으므로, 그가 제안한 의견이 여러차례 당태종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분노하여 출가할 것을 청한다. 그러나 정말 출가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은, 이세민이 동의를 해버린 것이다. 이를 보면, 이세민은 소우에 대하여 이미 신뢰를 잃었고, 붙잡을 생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소우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을 바꾼다. 이 일은 이세민을 분노하게 한다. 그는 즉시 조서를 내려, 그의 재상직위와 모든 작위, 봉읍을 면직시키고, 경성밖으로 쫓아낸다. 이는 조우에게 가장 침중한 타격이 된다. 이해에 그는 이미 73세의 노인이었다.


정관21년, 소우의 병이 위중해진다, 이세민은 그의 송국공 작위를 회복시켜준다. 그리고 금자광록대부를 내린다. 그러나 그는 이때 병이 이미 심각했다. 당태종은 그에게 옥화궁으로 가서 요양하게 해준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옥화궁에서 사망한다. 향년74세이다.


이세민이 즉위한 후, 이연시대의 재상은 소우를 제외하고 모조리 이선으로 물러난다. 더 이상 권력의 중심에 머무르지 못했다. 유독 소우만이 여전히 정치일선에서 활약했다. 그렇다면 외 이세민은 위징(魏徵), 설만철(薛萬徹)등 형인 태자 이건성(李建成) 집단의 인물들은 용납하면서, 아버지인 이연(李淵)의 심복인 소우는 용납하지 못했을까?


소우의 처지는 그 자신에게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지나치게 강직해서 자주 황제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나 또 다른 더 중요한 원인은 이세민의 용인심리였다. 이세민은 친히 태자 이건성을 제거해서 승리자가 된다. 그는 위징등 이건성의 옛신하들의 앞에서 아주 강력한 심리적 우세를 보인다. 그는 쉽게 이들을 다를 수 있었다. 다만 이연은 이세민의 부황이다. 그가 형을 죽이고, 부친의 퇴위를 핍박했으며 이는 원래 대역무도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 속에 분명히 그림자가 있었다. 하물며 이연은 정관9년에야 사망한다. 그래서 이세민은 소우를 대할 때, 마음이 복잡했다. 철저히 그를 쫓아내고는 다시 여론의 공격이 두려워서 그를 남겨둔다. 그러나 그가 말을 듣지 않고, 자꾸 어긋나게 되며, 자주 자기를 들이받는다. 이런 심리상태하에서, 소우의 '삼기삼락'이 나타난 것이다.


소우는 그래도 행운아이다. 그는 그래도 개명한 군주를 만났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삼기삼락'처럼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하로서 직언하고, 강직했다. 그러나 적절하게 군왕의 마음에 영합할 줄도 알아야 하지, 절대로 군왕의 절대권위를 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결말이 참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