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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현무문사변때 이세민이 데리고간 10명은 누구인가?

by 중은우시 2018. 12. 20.

글: 소담야사(笑談夜史)





장안성에서 권력쟁탈전이 벌어졌다. 이세민과 이건성 사이에 벌어진 권력쟁탈전을 현무문사변이라고 부른다. 결국은 이세민이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세민은 현무문사변때 10명을 데리고 갔다. 그럼, 그들 10명은 각각 누구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첫째, 장손무기(長孫无忌)이다. 장손무기와 이세민은 처남매부간이다. 그는 이세민과 이건성간에 갈등이 생기자 이세민에게 먼저 손을 쓰라고 권한 인물이다. 그후 이세민을 따라 현무문사변을 일으켰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고, 문사(文史)에 능통하고 심지가 뛰어났으며 계모가 고심했다. 이번 현무문사변에서의 큰 공로로 나중에 고명대신이 되고 태위(太尉), 동중서문하삼품이 된다. 그러나 나중에 허경종(許敬宗)에 의해 유배된다.


둘째, 위지공(尉遲恭)이다. 그는 성격이 순후하고 충후했다. 싸움에 능했으며 일찌기 이세민의 목숨을 구해주고, 선웅신(單雄信)을 물리친 바 있다. 현무문사변때는 이원길(李元吉)을 죽이기도 했다. 나중에 우무후대장군에 봉해지나, 그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미신에 빠져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았다.


셋째, 후군집(侯君集)이다. 그는 성격이 독특했다. 어떤 일을 좋아하다가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성격이 착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투에서 남다른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나중에 병부상서가 되는데, 성격으로 인하여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암암리에 태자로 하여금 모반하도록 이끌어 사형에 처해졌다.


넷째, 장공근(張公謹)이다. 그는 용맹하고 비범하며, 현무문사변때 이세민이 결심하도록 도운 인물이다. 그리고 일생동안 조심스럽게 살면서 정원군공(定遠郡公)에 봉해지고, 나중에 돌궐을 토벌하는 전투에 참가한다. 병사한 후 좌효위대장군에 추봉된다.


다섯째, 유사립(劉師立)이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이 아주 적다. 많은 정보다 불분명하다. 그는 원래 이세민 수하의 친병(親兵)이었고, 현무문사변때 이건성을 죽이는데 참가하여 양무군궁(襄武郡公)이 된다.


여섯째는 공손무달(公孫武達)이다. 그는 평생동안 호방했다. 현무문사변때 공손무달은 앞장서서 상대방과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나중에 여러번 이세민을 위하여 공을 세워 우무위대장군에 봉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을 때 죽는다.


일곱째는 독고언운(獨孤彦雲)이다. 현무문사변때의 공으로 역양군공(歷陽郡公)에 봉해진 후 다른 병변때 목숨을 잃는다. 그의 공덕에 관하여, 당덕종은 특별히 그를 능연각(凌煙閣) 공신의 하나로 추가해서 그림을 그려넣는다.


여덟째는 두군작(杜君綽)이다. 그는 현무문사변에 참가했을 뿐아니라, 나중에 고구려를 정벌하는 전쟁에도 참가한다. 그는 이세민을 따라 각지방을 따라다닌다. 현무문사변후에는 개국현후(開國縣侯)에 봉해진다. 마지막에는 조정에 나갔다가 불행히 사망하고 양공(襄公)으로 추봉된다.


아홉째는 정인태(鄭仁泰)이다. 그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는 중년장수라 할 수 있다. 현무문사변때는 선봉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우무위대장군에 봉해진다. 아쉽게도 전쟁에서 패배하여 연이어 강등당한다.


열째는 이맹상(李孟嘗)이다. 이세민을 따라 현무문사변에 참가하여 무수현개국공에 봉해진다. 나중에 돌궐토벌에 참여하고, 마지막에는 장안에서 돌연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