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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평민 순(舜)과 귀족 우(禹)

by 중은우시 2011. 5. 22.

글: 압사룡(押沙龍)

 

 

 

우(禹)가 부친의 직을 이어받을 때, 이미 독고구검이었다. 나갈 수만 있지 물러설 수는 없었다. 만일 치수(治水)가 성공하면 그는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이고, 치수에 실패하면 부친 곤(鯀)의 말로가 바로 그가 가야할 길이다. 순(舜)이 절대로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순은 유가들이 아주 존경하는 사람이다. 우는 묵가(墨家)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유가는 인의도덕을 중시하고, 묵가는 고행이인(苦行利人)을 중시한다. 우는 십삼년간의 고행이인을 행한 인물이다. 우리는 우의 동기까지 추궁할 필요는 없다. 많은 경우, 사람의 동기는 추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선악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그저 이 점을 알기만 하면 충분하다: 십삼년동안, 우는 자신을 돼지, 개, 소, 말처럼 부렸다는 것이다. 가장 힘든 일을 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

 

우 자신이 한 말에 따르면, "친히 삼태기와 가래를 들고서 천하의 강물을 모아서 바다로 흐르게 했고, 그 때문에 장딴지에는 살이 없어지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어졌다. 소나기로 목욕을 하고, 거센바람으로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만국을 안정시켰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 우가 초췌하기 그지없어 손에는 손톱이 없고, 다리에도 털이 없었다고 하며, 걸음걸이도 절룩거려서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묵자는 그에게 오체투지할 정도로 감복하고 그를 '대성인'이라 부른다.

 

모두 대우치수(大禹治水)의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곤은 물길을 막는 방법으로 치수를 했다가 실패한다; 우는 물길을 소통시키는 방법으로 바꾸어서, 성공했다. 이것을 말로 하기는 쉽다. 그런, 세부사항을 고찰해보면 발견할 수 있다: 대우가 한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협곡을 잘라서 열고, 큰 산을 배열시키며, 강물의 길을 바꾸었다. 생각해보라.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얘기해보자, <동방불패>를 보았을 것이다. 동방불패가 손을 한번 휘저으면 집이 무너지낟. 한번 운기하면 모래와 돌이 날린다. 동방불패조차도 이런 일을 해낼 수는 없다. 하물며 몇천년전에 한 절름발이가 해내다니. 다시 말해서, 어떤 전문가들은 기운이 빠져서 말한다: "중국의 강물은 인위적으로 물길을 바꾼 흔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홍수는 정말 다스려졌는가? 혹은 대우가 그냥 운이 좋아서, 홍수가 스스로 물러난 것인가?

 

잘 알 수가 없다. 홍수가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대우의 공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최소한 작은 범위내에서의 물길은 정리했다. 그는 물자를 이동시키고 인민을 구조하고 생산을 안배하고 사상자를 감소시켰다. 당시 사람으로 보아서는 이는 구원자이다.

 

치수가 성공한 후, 순과 우 사이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의 버전은 이렇다. 순은 기쁘게 자신의 자리를 우에게 선양하였다는 것이다. 우는 안받겠다고 ㅎ고, 그 자리를 순의 아들인 상균(商均)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천하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아서, 우는 할 수 없이 천자에 오른다. 동시에 도통은 성인 넘버투(순)에서 성인 넘버 쓰리(우)에게 넘어간다(성인 넘버원은 요임금)

 

또 다른 버전은 비교적 어두운 이야기이다. 우는 순을 남방에 유배보내고, 황제위를 찬탈한다. 순은 망명도중에 호남의 창오산(蒼梧山)에서 사망한다. 그의 동생이 있는 비국(庳國) 봉지(封地)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여기서 또 항상 생기는 문제가 있다. 어느 견해가 더 믿을만 한가? 필자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은 일깨워주고 싶다. 순은 우와 부친을 죽인 불공대천의 원수라는 점이다. 당연히 이것도 충분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와 요의 대화를 볼 수는 있다. <상서.익직>과 <사기>에는 모두 이 기록이 남아있다. 순의 앞에서, 우는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업적을 찬미한다: "나는 산을 넘고 길을 뚫어, 양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구주의 강물을 서로 소통시키고,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물자를 이송시켜, 백성들이 안정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국토를 개척하고 제후국들이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내도록 해주었다; 나는...."

 

사법대신 고도(皐陶)는 그 자리에서 명령을 내린다: 전국은 대우를 본받아라. 본받지 않으면 범죄로 처리하겠다.

 

대우의 이 말은 현신(賢臣)이 하는 말이 아니라, 권신(權臣)이 위협하는 말이다. 대우가 스스로를 자랑하는 속에서 우리는 그가 이미 양식분배권한을 장악하고, 제후의 우두머리를 임명하고, 부락간의 무역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수를 통하여 그는 공전(空前)의 권력을 집중시킨 것이다. 이를 통하여 천자 순을 압도할 수 있었다.

 

순이 입장이 되어 한번 생각해보자.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는다. 하나는 기꺼이 자리를 우에게 선양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짐을 챙겨서 창오산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 속에 그 곳에서 죽는 것이다. 두 선택은 바로 두 개의 버전이다. 어느 버전이더라도 한 가지 일은 똑같다. 순의 통치는 끝난 것이다.

 

곧이어 하왕조(夏王朝)가 시작된다. 세습제가 회복된다. 요,순,우의 삼부곡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우의 아들이 순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유가들이 보기에, 이 삼부곡은 성인과 성인이 대를 이은 것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어 보자면, 아마도 이는 그저 신구왕조의 과도에 불과할 것이다. 요는 구왕조의 종결자이고, 우는 신왕조의 개창자이다. 삼부곡의 시작은 귀족이고, 끝도 귀족이다. 평민 순은 그저 중간이 간주곡에 불과하다.

 

위기에 대항하기 위하여, 귀족에 대항하기 위하여 요는 순을 기용한다. 평민역량을 정치무대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위기를 종식시킨 것은 여전히 귀족인 우이다. 귀족만이 충분한 자원을 투입하여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수가 지나간 후, 순이라는 이 중간다리는 가차없이 버림받는다. 국면을 통제하는 것은 여전히 귀족들이다.

 

모든 것은 옛날 그대로 돌아갔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홍수위기는 권력집중을 불러온다. 우가 장악한 수중의 권력은 요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권력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상승한 것이다. 요의 부락연맹은 진정한 왕조로 변신한다. 이때부터 역사학자들은 중국이 문명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