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효(李曉)
강태공(姜太公)의 이름은 강상(姜尙)이며, 자는 자아(子牙)이다. 그의 조상이 일찍이 여(呂)라는 지방에 분봉을 받은 바 있어, 고대인들은 지명으로 씨(氏)를 삼아 여상(呂尙)이라고도 부른다.
강태공을 얘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강태공의 낚시에는 낚시바늘이 곧아서, 원하는 자만 스스로 걸린다”는 말일 것이다. 강태공에게 걸려든 대어는 바로 주(周) 부락의 우두머리인 희창(姬昌), 즉 나중의 주문왕(周文王)이다. 이때부터 강태공은 주문왕 및 주문왕의 아들 주무왕을 보좌하여 상(商)왕조를 무너뜨리고 주(周)왕조를 건립한다. 이것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강태공이 도대체 어떻게 하여 주문왕을 알게 된 것일까? 사마천의 <사기>에는 세 가지 견해가 실려 있다.
첫번째 견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태공의 낚시에는 낚시바늘이 곧아서, 원하는 자만 스스로 걸린다’는 것이다. <사기.제태공세가>에 따르면, 여상은 일찍이 빈곤했고, 나이가 들었는데, 낚시를 하는 기회에 주문왕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중용되었다고 한다.
두번째 견해는 강태공이 젊었을 때 박학다식하여, 일찍이 상나라에서 관리로 있었다. 심지어 상나라 주왕(紂王)의 곁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강태공은 상주왕이 달기를 총애하고, 황음무도하며, 포학무도하여, 조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는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강호를 유랑하고 열국을 주유했는데, 가는 곳마다 그를 기용해주는 곳이 없었다. 나중에 주문왕에 의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번째 견해는 강태공은 원래 평민백성이고, 해변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주문왕은 아주 재주가 있었고, 현명했다. 그리하여 상주왕의 시기를 받았다. 그래서 상주왕에게 붙잡혀 유리(羑里)라는 곳에 구금되어 있었다. 여러해동안 갇혀 있었는데, 몇몇 강호호걸이 주문왕이 천하에 보기드문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가 갇혀있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를 구조하는 팀을 만들어 계획을 세워서 주문왕이 감옥을 나오도록 해준다. 이 팀에 바로 강태공이 있었다. 강태공은 많은 미녀와 재물을 모아서 상주왕에게 바치고, 상주왕이 기뻐할 때, 주문왕을 석받하도록 한다. 그후 강태공은 주문왕을 따른다.
사마천은 이 세가지 견해를 다 쓴 후에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서 모시게된 것에 대하여 여러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그가 나중에 주문왕, 주무왕의 스승이 된 것은 맞다.”
즉,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강태공이 어떻게 주문왕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최소한 3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맞을까? 사마천은 확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모두 기록해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기에, 이 세가지 견해중 어느 견해가 가장 믿을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낚시”이야기를 믿고 싶다.
이는 이 견해를 지구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마천도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마천도 이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 것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견해가 강태공의 내력에 더욱 부합한다는 것이다.
강태공은 어떤 경력을 지니고 있었던가? 우리 먼저 “강태공낚시” 이야기를 보자. 삼천여년전의 위수 강가에 백발이 성성한 강태공이 손에 구부러지지 않은 낚시바늘을 달고, 낚시를 했다. 호사가들이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얘기를 한다: 이 사람은 미쳤거나 아니면 머리가 이상해졌을 것이다. 강태공의 웃기는 짓은 소리소문없이 퍼져나갔다. 일시간에 길거리의 핫이슈가 된다. 이것은 오늘날의 뉴스의 헤드라인과 비슷하여 전파위력이 상당히 강했을 것이다. 금방 이 일은 위수 일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된다.
위수 일대는 주부락의 근거지이다. 당시 주부락의 수령은 성이 ‘희’이고, 이름은 ‘창’이다. 나중에 주문왕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아주 현명한 지도자였다. 그는 상주왕이 포악무도한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세력을 키우고 널리 인재를 모집했으며, 상왕조를 뒤집을 준비를 한다.
주문왕이 인재를 모으는 방법은 남달랐다. 그는 자신이 널리 인재를 모집하고 있음을 알려서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이 곳으로 오라고 선전해놓고, 사무실에 앉아서 오는 인재들을 기다릴 뿐아니라, 스스로 길거리로 나가서 인재를 찾아다녔다.
하루는 주문왕이 현명한 인재를 찾아다니다가 위수 일대로 왔다. 구부러지지않은 낚시바늘로 낚시하는 인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그 노인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부들에게 물어서, 강태공을 찾는다. 주문왕은 강태공과 얘기를 하자, 바로 강태공이 비범하고 견식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문왕은 아주 기뻤다. “내가 조부에게 듣기로, ‘장래 비범한 성인이 나에게 올 것이다. 그가 오면 그의 복으로 흥성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당신이 아마도 우리가 매일 생각하던 그 사람인 것같다.” 내 생각에 강태공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바로 저입니다.” 그리하여 주문왕은 강태공을 군사로 모시고 그를 ‘태공망(太公望)’을 존경하여 부른다. 그 뜻은 우리가 바라마지않던 그 노인 혹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노인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를 강태공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바로 ‘태공망’이라는 칭호에서 유래한 것이다.
강태공은 확실히 경륜이 있고 박학다식하며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그러나, 주문왕이 현명한 사람을 목마르게 찾고 있어서, 강태공은 주문왕에게 의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강태공이 스스로 모수자천을 하여, 직접 주문왕을 만나자고 하면 안되었을까? 왜 그는 강가로 가서, 구부러지지 않은 낚시바늘로 낚시를 하는 괴이한 일을 벌여서 주문왕을 끌어들인 것일까?
이것은 강태공의 출신, 그리고 그가 젊었을 때의 경력과 모두 큰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강태공이 젊어서 무엇을 했는가? 적지 않은 문헌에서 강태공은 일개 평민백성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상왕조의 수도 조가(朝歌)등지에서 장사를 했었다고도 하고, 심지어 소돼지를 잡는 류의 잡일을 했다고도 한다.
예를 들어, 굴원의 <이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망지고도혜(呂望之鼓刀兮), 조주문이득거(遭周文而得擧)”. 여기서 ‘고도’라는 것은 소돼지잡는 칼을 휘두른다는 말이다. 굴원의 이 두 문구는 강태공이 일찍이 소돼지를 잡는 일을 했고, 재주는 있었지만 등용되지 못하다가 주문왕을 만나서 비로소 중용되었다는 것이다. 굴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백정을 지냈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서는 굴원이 하는 말과 다르다. <위료자>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태공망의 나이가 칠십이 되었는데, 조가에서 소를 잡았고, 맹진에서 먹을 것을 팔았다. 칠십이 넘었지만, 정신이 그다지 정상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그를 광부(狂夫)라고 불렀다.
이외에, <염철론.송현>의 기록에 따르면, “강태공은 가난하여 조가에서 등에 물건을 지고 장사를 했다”고 적혀 있다.
이 세가지 견해에 따르면 소돼지를 잡았건, 노점상을 차려서 먹을 것을 팔았건, 아니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보부상을 했다는 것이다. 어느 견해가 맞는 것일까? 우리가 확정하기는 힘들다. 혹은 강태공이 이들 업무를 모두 했을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보자면, 모두 소상인에 속한다. 성격도 모두 큰 차이는 없다.
강태공은 능력이 뛰어났으니, 조금만 신경썼으면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오랫동안 곤궁하게 살았을까? 여기에는 객관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고, 주관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원인으로 말하자면, 하상주 삼대는 노예제왕조이다. 당시에 공상업분야에서, 실행한 것은 “공상식관(工商食官)”의 제도이다. 소위 ‘공상식관’이라는 것은 대규모 수공업상품생산은 노예주귀족이 장악하고, 대규모상업무역도 노예주귀족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노예주귀족만이 재산을 가지고 대규모 상품생산이나 상업무역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일반 백성이 공상업에 종사하려면, 그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노예주에 의탁하여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며, 노예주가 돈을 버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예주가 관심을 두지 않는 자잘한 소상인이 되는 것이다. 약간의 이익을 얻는 것이다. ‘공상식관’은 당시의 제도이고, 강태공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사회제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그저 자잘한 돈을 벌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주관적인 원인으로 말하자면, 강태공의 이상은 돈을 많이 버는데 있지 않았다. 그는 원대한 정치적 포부를 품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 투신할 것을 생각했고, 큰 일을 하고 싶어했다. 다만, 상왕조말기, 정치는 어두웠다. 위로는 혼군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고, 아래로는 간신이 세도를 부리고 있다. 강태공은 이들 혼군간신들과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결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도록, 재능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그저 민간에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왜 강태공이 주문왕에게 의탁할 때. 직접 모수자천하지 않고, 곧은 낚시로 낚시하는 기이한 방식을 썼을까? 이것이 그의 경력과 관련있을까? 아마도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그는 소상인출신의 평민백성이다. 그리고 외지에서 왔다. 아마도 주문왕을 만날 수 있는 관계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곧은 낚시바늘로 낚시하는 괴이한 방식은 사람의 눈길을 끌 것이고 나아가 주문왕의 관심도 끌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케팅의 책략이다. 상인출신의 강태공은 이런 이치를 잘 알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정보사회에서도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고, 강렬한 느낌을 주고, 인상을 깊게 심어주는 선전수단이 비즈니스 마케팅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TV에서 두 만화인물이 한편으로 몸을 흔들며 한편으로 ‘금년 명절에는 선물을 받지 않겠다…”는 류의 광고가 바로 강태공낚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둘째, 역시 중요한 점인데, 강태공은 주문왕을 시험한 것이다. 당시 사회에서 모두 주문왕은 현명한 선비를 존중하는 영명한 군주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짜 그러한가? 강태공은 그와 만나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대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쌍방향의 과정이다. 이런 쌍방향 선택은 실제로 매매거래나 다름이 없다. 군신관계의 이런 본질은 나중에 법가들에 의하여 확실하게 인식된다. 예를 들어 <한비자>는 정곡을 찔러서 말한다. 신하는 자신의 생명과 능력을 군주에게 팔고, 군주는 높은 관직과 봉록을 신하와 교환한다. 군신간에는 부자간처럼 혈연관계가 아니라, 서로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서로 거래하는 관계이다.
고대에 이런 말도 있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집을 짓고, 좋은 신하는 주군을 가려서 모신다” 어떤 사람이 ‘좋은 신하’인가? 즉 재주있는 자이다. 도덕이 있는 자이다. 포부가 있는 자이다. 원칙이 있는 자이다. ‘양신’은 ‘명군’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다. 절대로 자신을 아무렇게나 팔아먹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좋은 가격에 팔고, 좋은 고객에게 판다. 소위 좋은 가격이라는 것은 높은 관직과 높은 봉급을 말하는 것이고, 소위 좋은 고객이라는 것은 명군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명군’인가? 명군의 시험기준은 아마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재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재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명군’의 중요한 조건중 하나이다.
‘양신’에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명군’임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는 관찰이 필요하고, 시험이 필요하다. 반드시 원매자가 물건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성의가 있어야 한다. 눈으로 확인해야지, 다른 사람의 말만 들어서는 안된다.
강태공이 곧은 바늘로 낚시를 한 것은 걸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무슨 폼을 잰 것이 아니다. 사실 가격을 제시해주기를 기다리고, 협상을 한 것이다. 협상은 일원, 이원 더 달라는 것이 아니고, 무슨 물질적인 대우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주로는 시험해보고, 탐색해보는 것이다. 주문왕이라는 이 목표고객이 도대체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인지. 주문왕의 태도나 그의 중시하는 정도가 자신의 가치에 상응하는지. 그가 자신에게 재능을 펼칠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 즉, 강태공은 주문왕이 자신의 이상적인 주군인지를 판단해야 했다. 자신을 팔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판단해야 했다.
확실히 강자아는 소상인으로 있으면서 가난하게 지냈다. 그러나 장기간의 소상인경력은 그로 하여금 풍부한 비즈니스 경험을 갖게 했다. 그로 하여금 독특한 비즈니스 지혜를 갖게 했다. 만일 풍부한 비즈니스 경험과 독특한 비즈니스 지혜가 없었더라면, 강태공은 낚시라는 방법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강태공의 방법은 후대의 지혜있는 정치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를 기다린 것도 그의 의도를 보면 강태공과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강태공낚시’의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총명과 재지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 사람의 눈길을 끄는 광고를 한 후에, 사줄 사람이 와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는 사람이 이상적인지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인의 지혜를 반영한다.
다만, 강태공의 이 같은 ‘원하는 자가 낚인다’는 판매전략은 리스크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만일 주문왕이 가치를 알아주지 않거나, 낚시배후에 숨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강태공의 이 방식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비록 주문왕이 현인을 갈구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집안에 앉아서 인재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면,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아가서 인재를 찾으려 하지 않았더라면, 강태공의 낚시에 관한 정보는 아마도 주문왕의 귀에까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강태공의 낚시로 아마 주문공을 낚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강태공의 괴초(怪招)는 계산이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이런 문제는 있다. 다만, 그게 무슨 관계인가. 강태공은 비즈니스 경험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다. 그가 어찌 장사의 도리를 모르겠는가? 이 방식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아마도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이다. 이 방식도 써보고, 저 방식도 써보지만,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시장상황이 좋지 않은 것일 뿐이다. 알아야 할 것은 시장상황은 항상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시장형세가 좋지 않을 때는 좋은 물건도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한다. 인삼도 무우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시장형세가 혼란할 때는 쓰레기까지도 가격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실적주, 블루칩은 오히려 아무도 찾지 않는다. 비록 최대한 노력을 해도, 여전히 사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그저 시장상황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때를 만나지 못하고, 물건은 제대로 쓰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때는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야 한다. 혹은 대은은어시(大隱隱於市)해야 한다. 이것도 상인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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