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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순자(荀子): 중국2천년의 진정한 대부

by 중은우시 2012. 2. 16.

글: 정만군(程萬軍)

 

2천년 봉건중국의 대부를 뽑으라고 하면, 아마도 세상사람들은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孔子)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를 꿰뚫어보는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꼽을 것이다. 이 사람의 교의는 유학 "원래의 교지(敎旨)"를 더욱 오래갈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이며, 그야말로 중국이천년을 가로지르는 진정한 대부이다.

 

그는 바로 '통합의 대가'인 순자이다.

 

순자의 중국 왕도(王道)에 대한 공헌은, 한무제 유철의 진시황에 대한 '수정(修正)"과 마찬가지이다. "이론과 실천을 결합" 시킨 점에서 보자면 순자는 유철과 마찬가지로 '통합의 대가'이다.

 

순자는 '전진(前秦, 진나라이전) 최후의 유가대사(儒家大師)"로 불린다. 순자 version의 유교는 청출어람이며, "위군자(僞君子)와 진소인(眞小人)"을 결합시킨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다.

 

순자의 공헌은 중국의 상황에 맞게 왕도의 실용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낸 데 있다. 그가 글을 쓰고 학설을 내눃을 때는 아직 '법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발견한다: 유가와 법은 '손에 손잡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은 bad guy 역할을 맡고, 하나은 good guy 역할을 맡는다. 그는 중국식 왕도의 표준답안을 제시했다. 예법겸시(禮法兼施), 왕패통일(王覇統一). 이것이 바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의 경세치용 소스코드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순자의 문하에는 뛰어난 제자가 있다. 이름은 한비자(韓非子)라 한다. 그는 유가에서 배운 문하이지만 나중에 법가의 비조(鼻祖)가 된다. 법가는 유가에서 나왔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사제 두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이곡동공(異曲同工)이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제왕은 백성을 대할 때 엄한 수단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비자는 사문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한비자는 스승의 마음을 잘 이애했다. 그러나 그는 스승만큼 흉금이 넓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극단적으로 순자의 '왕도론'을 발전시킨다. '패력(覇力)'이라는 점에서 한비자는 스승보다 훨씬 더 많이 나갔다. 그는 엄격한 법과 가혹한 형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술을 제시한다. 이리하여 중국의 군왕은 '늑대의 모습'으로 천하에 나타난다.

 

중국이천년 봉건사회의 기초를 만든 진시황의 '첫번째 대부'는 바로 한비자이다. 그는 한비자의 대작 <한비자>를 읽은 후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오호라, 과인이 이 사람을 얻어서, 같이 논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사람들은 포악한 진나라가 멸망하면서 한비자의 사상은 파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비자는 중국군주들의 마음 속에 계속하여 살아있었다. 법가의 "약육강식"은 중국황제의 핵심기술이다. 이십사사(二十四史)를 통틀어 적용되지 않은 적이 없다. 단지 중국의 제왕은 궤도(詭道)에 능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이를 깨닫기는 했지만 널리 선전하지는 않았다. 한비자의 이 "제왕살인도(帝王殺人刀)"에는 공자맹자라는 "칼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순자는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한무제의 "파출백가 독존유술(罷黜百家 獨尊儒術)"에서 확립한 것은 "겉으로는 유가이지만 실질은 법가(明儒實法)"의 현규칙(顯規則, 드러난 규칙)과 잠규칙(潛規則, 숨은 규칙)이다. 그는 '독존유술'을 선포하는 동시에 내심으로는 한비자를 잊지 않았지만, '명유실법'은 기실 순자의 궤도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순자가 완곡했다. 중국의 군주는 이때부터 '양가죽을 뒤집어쓴 늑대"가 된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유가의 외투를 걸친 법가의 신도"가 된 것이다.

 

나중에 청나라말기의 유신학자 담사동(譚嗣同)은 중국의 왕도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이천년이래로 정치는 진나라의 정치였다. 모두가 대도(大盜)이다; 이천년이래로 학문은 모조리 순자의 학문이고 모조리 향원(鄕願)이다. 대도는 향원을 이용했고, 향원은 대도에게 아부했다."

 

소위 "향원"은 원창자인 공자의 해석에 따르면, '위군자(僞君子, 위선적인 군자)'이다. 담사동의 보기에는 순자의 학문은 "위군자학"의 집대성이다. 중국군주인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 늑대'의 합법적인 대변인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대군주가 왜 순자를 모시지 않고 공자를 모셨는가? 담사동은 따로 말하지 않았다. 필자가 대신하여 대답하자면 이렇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도이다. 다른 사람에게 배우라고 제창하는 것을 자신이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다.

확실히 말하는데 공자가 순자보다 '듣기 좋다'. 법가의 모든 출발점은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이 바로 제왕이 백성들을 보는 시각이다. 유가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말한다. 최소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더욱 쉽고, 더욱 사기성이 짙다.

 

이것은 조정에서 도덕적인 모범을 내세우는 것과 같다. 그 도덕적 모범은 군주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본받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다.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는" 성인을 신단에 모셔 놓는다. 그러나 순자는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회충'이다. 위군자와 진소인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괴물이다. 중국에서 군신의 인격분열은 바로 여기서에 연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