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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부열(傅說): 중국 최초의 성인(聖人)

by 중은우시 2010. 11. 3.

 

: 월초(越楚)

 

 

 

중국역사상 최초의 성인부열이라는 사람이다(說은 悅로 읽는다). 그는 상()나라 무정중흥(武丁中興)시기의 중신이다. 공자보다는 약 800년이 앞선다.

 

상나라는 성탕(成湯)에서부터 무정(武丁)까지 이미 스무명의 천자가 있었다. 그동안 수재등으로 다섯번이나 왕도를 옮겨야 했다. <<사기.은본기>>에 따르면, 무정은 가슴에 큰 뜻을 품은 군주였다. 천자의 자리에 오른 후,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은상(殷商)을 부흥시킬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도와줄 좋은 신하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삼년간 말을 하지 않고, 정무를 총재()로 하여금 결정하게 했다 어느날 새벽, 무정은 돌연 문무백관을 소집하여 한가지 대사를 정중하게 선포한다: 자신이 꿈 속에 성인(聖人)을 얻었는데, 이름이 ()이다. 그는 꿈 속에 본 성인의 형상을 가지고, 조당에 모인 신하 하나하나를 대조해 보았다. 그러나, 결론은 모두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하들에게 꿈속에 본 사람의 화상을 들고 민간에서 찾아보게 한다. 마침내 부험(傅險)이라는 곳에서 이름이 이고 용모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낸다.

 

은 당시에 부험 일대에서 도로를 닦는 사람이었다. <<사기>>에는 서미(胥靡), 즉 노예 혹은 죄를 범해서 노역을 하는 자라고 하였다. 은 왕궁으로 불려들어간다. 무정은 그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꿈 속에서 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무정은 그에게 은상을 부흥시킬 계책을 묻는다. 은 마치 미리 생각해둔 사람처럼 폐단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무정은 감탄을 금치 못하고, 과연 성인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애세 그를 재상으로 임명한다. 그후 은상은 정치가 바르게 되었다. 부정은 그에게 부열이라는 이름을 내린다.

 

<<사기>>의 이 기록은 신화에 가깝다. 무정이 꿈에 본 성인의 이름이 인데, 과연 찾아보니 용모가 완전히 같은 부열이 있었다. 아마도 무정은 사전에 부열을 찾아두었거나 아니면 만나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국가를 중흥시킬 동량지재라는 것도 파악해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열의 지위가 미천하여, 은상의 귀족집단이 아마도 이 노예출신의 인물이 국가의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상 사람들은 미신을 믿었고, 점을 숭상했다. 무정은 아마도 귀족들의 이러한 미신심리를 이용하여, 꿈속에 성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교묘한 수단으로 일개 노예를 국가의 재상으로 승진시켰다. 은상의 귀족들은 비록 그 자리를 탐내기는 하였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든 것이다.

 

하늘이 내린 이 성인 부열은 그후 무정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싱크탱크역할을 한다. 부열의 보좌하에, 상왕조는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하며, 국경을 확장하는 중흥국면을 맞이한다. 역사상 무정중흥이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사기>>에는 은나라가 잘 통치되었다(殷國大治)라고 쓰고 있다. 고고자료를 보면, 무정이 재위했던 59년간은 은나라가 가장 번성한 시기였다.

 

부열의 이야기는 <<묵자>> <<국어>> <<여씨춘추>>등에도 모두 기록되어 있다. 부열의 치국방침에 대한 내용은 동진시기에 만들어진 가짜고문 <<상서.열명(尙書.說命)>>에 나와 있다. 상중하의 삼편으로 되어 있어서, <<열명삼편>>이라고도 불린다. 상편은 부열이 처음 무정을 만난 과정 및 무정에게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받아들이라고 권하는 내용이 있다. 그 중의 가장 대표적인 말은 나무는 줄자와 먹에 따라 자르면 바르게 되고, 군주는 간언하는 말을 잘 듣고 행동하면 성인이 된다(木從繩則正, 后從諫則聖)는 것이다. 중편은 부열이 무정에게 치국방략을 얘기하는 것인데, 그중에 세상에 전해지는 유명한 말은 아는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難, 行之惟難).하편은 군신이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내용이다.

 

후세의 사람들도 부열을 성인 천신(天神)으로 모셨다. 굴원, 이세민, 두목, 왕유, 사마광, 소식등이 모두 글을 써서 그의 높은 덕을 칭송한 바 있다.

 

그는 중국역사상 첫번째 성인일 뿐아니라, 당금 천자에게서 성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공자의 성인 존호는 그가 죽은 후에 추존된 것이다. 공자는 살아있을 때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각박하리만치 그를 상갓집 개'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