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李斯)는 역사적으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이사의 성공은 휘황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이사가 역사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성공에 있지 않고, 그의 실패에 있다. 이사의 실패는 수천년후의 사람들까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정치철학자인 순자(荀子)의 애제자였다. 요즘으로 따지면 당대의 대학자로부터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개 환관의 손에 무너진다.
외국인으로서 그는 불원천리 진나라까지 왔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인생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만일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였으므로 "천고일제(千古一帝)"로 불릴 수 있다면, 이사는 "천고일상(千古一相)"으로 불리워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진시황은 그의 말이라면 기본적으로 모두 따랐다. 군신간의 관계나 취득한 성과에 비추어볼 때 중국역사상 최고라고 할만하다. 그의 공이 높기는 했지만, 주군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어서,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도 그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신임은 더 이상 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사는 진이세의 등극에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이세는 그가 모반하지 않을까 걱정했고, 결국은 그가 모반했다고 믿었다. 진2세가 즉위하자 1년만에 그를 옹립한 공신을 몰아냈는데, 이것도 역사상 드물게 보는 경우었다.
이사는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대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의 행위는 후안무치한 정객과 다름없기도 했다. 이사의 재주, 학문, 수완은 모두 역사상 제1류급이었다.
이사는 그렇다면 왜 일개 환관인 조고에게 패하였는가? 우리가 아래의 몇가지 점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에 대하여 이해하기가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사는 조고를 적수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조고는 이사를 적수로 생각했다.
둘째, 조고는 황제의 연락권한을 장악했고, 이사는 황제의 얼굴을 한번 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므로 황제의 앞에서 자신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셋째, 조고는 이익과 위협을 통해서 자기의 세력집단을 만들었으나, 이사는 시종 자기의 세력집단을 만들지 않았다.
먼저 첫째 이슈에 대하여 살펴보자.
진시황때, 이사의 지위는 이미 최고급에 달하였다. 더이상 오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고는 신분이 환관이고 인품은 소인이었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신분을 상승시키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사는 지켜야 했고, 조고는 빼앗으려 한 것이다. 이것은 이사도 알고 있었다. 한가지 이사가 몰랐던 점은 조고의 야심이다. 그의 야심은 이사가 생각했던 것처럼 작지가 않았던 것이다. 즉, 이사는 조고를 저평가했었다. 조고의 최종목적은 최소한 조정의 대권을 독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고는 이사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사는 "지기부지피(知己不知彼)"했던 것이다.
이사가 사구(沙丘)에서 조고에 협력한 것은 조고의 분석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는 몽염을 가장 중요한 적수로 생각했다. 조고와 연합하여 부소와 몽염을 가짜조서로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사는 대진제국의 정계에 자기의 적수는 없어졌다고 믿었다.
이사는 스스로 이 방법이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확실히 그랬다. 공로와 재능에서 누가 그와 비교될 수 있단 말인가. 황제도 자기가 조서를 고쳐서 옹립한 것이므로 자기에게 감사할 것이고, 자기를 신임할 것이고, 자기에 의지할 것이다. 오랫동안 부귀를 누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사는 한가지를 잘못했다. 그리고 이는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정치적으로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적수가 된다. 조고는 이사와의 결맹을 통하여 진이세를 옹립하는데 성공한 이후, 즉시 이사를 최대의 적수로 생각했다.
이사의 측면에서는 진시황이 사구에서 죽은 이후, 만일 그가 적극적으로 조고가 그에게 권유한 이유를 생각해냈다면, 자신의 장기적인 부귀영화를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조고와 연합하여 조서를 위조하여 호해를 진이세황제로 옹립하는 것이지만, 호해를 옹립하는데 성공한 이후에는 반드시 즉시 손을 써서 조고의 세력을 제거해야 했다. 심지어 조고를 죽여버려야 했다. 그러나, 이사는 이렇게 하지 않았고, 이렇게 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피동적으로 조고의 음모를 받아들였다. 역사는 "이사가 조고와 연합하여, 사구의 변을 일으켰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역사는 "조고가 이사와 연합하여, 사구의 변을 일으켰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이사는 피동적인 지위에 놓이고, 주동적으로 큰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사는 자기가 이미 조고의 가장 주요한 정치적인 적수가 되었다는 것을 안 이후에도, 여전히 조고를 얕잡아 보았다. 그는 자기가 승상의 존귀함과 옹립의 공을 가지고 조고에 대적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조고를 눈아래 두지 않았다. 이리하여 한번 두번 기회를 잃었고, 결국은 국면을 역전시킬 수 없게 되었고, 수습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그제서야 그가 황제에게 조고가 모반을 하려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무고였다. 이사는 조고가 모반하려한다는 증거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사는 급하게 되자 아무나 막 문 것이다. 만일 그가 맑은 정신이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원인은 그 자신에 있었던 것이다.
둘째 이슈에 대하여 살펴보자.
당초 사구에 있을 때, 조고는 이사에게 묻는다: "만일 부소가 후계자가 된다면, 신황제와의 관계에 있어서 당신과 몽염을 비교하면 어떤가?" 이사는 "상대가 안된다"라고 답변한다.
이사는 일찌기, "호해가 즉위한 후 신황제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와 조고를 비교하면 어떤가?"라는 문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진이세가 즉위한 후, 오랫동안 신하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는 거의 조고로부터 듣는 국가정세보고만을 믿을 뿐이었다. 조고는 극력 진이세가 황당한 놀이와 유희를 즐기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옹립에 큰 공이 있는 이사는 오히려 황제를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사도 알 고 있다. 그렇다면 이사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는가? 서면보고서를 한장 달랑 써서 황제에게 올리면, 황제가 자신을 믿어줄 것으로 생각했단 말인가?
황제는 보고서를 받아보고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조고가 먼저 네가 모반한다고 얘기했는데, 너는 나중에야 조고가 모반한다고 얘기한다. 나는 너의 말을 못믿겠다." "조고는 내가 매일 보고 있고, 그의 건의는 모두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인데, 어찌 모반을 한단 말인가"
이사는 당초 순자에게서 배운 것이 제왕지학(帝王之學)이었다. 그는 진시황과의 관계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성공을 거두었고, 진시황의 신임을 받았다. 진이세의 아래에서 그는 제왕학의 기본을 써먹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사는 진이세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황제와 관계가 밀접한 사람은 권력중심에 접근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보다 권력투쟁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 그러하므로, 역대에 총애를 독점하려는 자들은 갖은 방법을 다써서 황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황제의 마음을 알아내려 했고, 황제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천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사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황제와의 연락도 자기의 적수를 통해서 한 것이다. 적수가 어찌 너에게 좋은 기회를 넘겨주겠는가?
셋째 이슈에 관하여 살펴보자.
이사는 승상의 지위에 있고, 백관의 우두머리였지만, 그의 개인적인 세력집단은 두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진시황이 그를 의심하지 아니한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진시황이 살아있을 때에는 황제의 완전한 신임을 가지고 이사는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한비자가 나타났을 때에도 이사는 약간의 수법을 써서 이 위협을 제거했다. 이사에게는 붕당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시황제가 살아있을 때는 붕당을 만들 수도 없었다. 만일 발각되면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황제는 죽었다. 신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것은 이사 자기가 아니다. 이 점에 대하여 이사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틀림없다. 만일 깊이 생각했다면, 적어도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옳다.
조고는 이미 자기의 정치상 최대의 적수가 되었으므로, 조고의 세력이 팽창하기 전에, 즉시 자기의 세력집단을 건립해야 했다. 이사의 지위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법률상 황제가 최고권력을 가졌지만, 이사는 알고 있었다. 권력은 운용의 묘에 있다는 것을. 진이세가 처음 등극하여, 아직 경험이 없으므로 이사에게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자기의 사람으로 조정을 채울 수 있고, 조정을 농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적수인 조고는 즉시 자기의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신하들을 위협했다. 당연히, 스스로 조고에 의탁한 신하들도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빠른 속도로 이사에 상대하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이 집단의 실력이 커지게 되자, 이사는 반격을 생각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어버렸다.
이사는 왜 자기의 집단을 조직하지 않았던가? 분석에 따르면 아마도 여불위의 운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여불위는 진나라에서 자신의 방대한 정치세력을 건립했고, 이사가 처음 진나라로 왔을 때는, 바로 이 집단에 가담했었다. 그러나, 시황제가 친정을 시작한 이후, 금방 이 집단은 궤멸되었다. 이사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연루되었다. 이사는 여불위집단의 패망을 친히 목격하였다. 그래서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내가 여불위의 자리에 앉게 된다면, 절대 그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이사의 일생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더 느끼는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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