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예(直隸)
장진방(張鎭芳) 하남 항성사람. 광서30년진사. 원세개의 큰 형의 내제. 원세계의 4촌형제. 천진도, 장호염운사, 직예안찰사, 하남제법사등의 직위를 맡음.
양강(兩江)
장훈(張勳): 강서 봉신사람. 어려서 가난함. 군인출신. 공을 세워 강남제독이 됨. 강절연합군이 남경을 함락시키자 서주로 도망침. 민국후에 정무상장군등의 군직을 받음. 그의 부대는 이후 부의를 다시 모시는 복벽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네덜란드대사관으로 도망침. 이후 천진에 은거. 70세로 사망.
섬감(陝甘)
장경(長庚) : 이얼근각라씨. 만주정황기. 보지현승, 이리장군, 주장대신, 성도장군, 병부상서등의 직을 역임. 섬감총독이 됨. 신해년에 이리장군 지예, 섬서순무 승윤등과 선통제를 서쪽으로 모시려고 하고, 완강하게 항거하나, 실패함. 1915년에 사망.
민절(閩浙)
송수(松壽) : 만주정백기. 여러 직을 거쳐 민절총독이 됨.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민군이 난을 일으켜 송수에 무기를 내달라고 하나 거절하고, 결전을 벌이나 대패함. 도망치지 않고, 자결함. 청나라조정은 태자소보직을 내림.
호광(湖廣)
서징(瑞澂): 만주정황기. 대학사 기선(琦善)의 손자. 구강도, 상대도등의 직을 거침. 그는 재택(載澤)의 처제임. 신해혁명후 서징은 성을 버리고 도망침. 먼저 병선에 숨었다가 나중에 상해로 도망침. 상해에 4년간 살다가 사망. 나중에 손문은 “무창의 성공은 의외인 점이 있다. 주요 이유는 서징이 도망쳤기 때문이다. 만일 서징이 도망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무한신군에서 혁명을 지지하는 자들은 단방에 의하여 사천으로 보내졌기 �문에, 무창에 남아있던 자들은 그저 포병과 공정부대의 일부분에 불과했었다.”
사천(四川)
왕인문(王人文). 운남성 대리사람. 백족(白族).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였고, 향시, 전시를 연이어 통과하고 광서13년에 진사가 됨. 귀주, 광동, 섬서등지에서 20여년간 관리를 지냄. 선통3년에 천진변무대신이 되고, 사천총독인 조이손이 동북으로 전근가게 됨에 따라 왕인문이 대리총독을 맡았다. 당시 철로국유조서를 내리면서 호로운동이 벌어지자 왕인문이 백성들의 편에 서서 상소를 올리자 조정은 그를 조이풍으로 교체한다. 그는 북경으로 소환당해 가는 길에 섬서까지 갔을 때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북경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왕인문은 사천으로 돌아가 열렬히 환영받고 나중에 상해로 간다. 민국초에 신해8공신의 하나로 봉해진다. 나중에 천진에 살면서, 북양정부에서 농상총장을 임명받으나, 취임하지 않는다. 일본이 화북을 점령한 후에도 여러 차례 그를 모시려 했으나 계속 거절했다. 1939년 천진에서 병사. 향년85세.
조이풍(趙爾豊) 한군정남기. 산서정락지현, 영제지현, 사천영녕도, 건창도. 대리사천총독에 오름. 이후 호로운동을 진압함. 무창기의후 성도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대한사천군정부를 세움. 그는 겉으로는 정권을 내놓으면서 암중으로 조종하여 병변을 준비하다가 신임도독
양광(兩廣)
운귀(雲貴)
동삼성(東三省)
조이손(趙爾巽): 한군정남기. 요녕철령출신. 사천총독 조이풍이 친동생임. 진사출신. 어사, 호북향시부고관, 신강포정사, 산서순무, 성경장군, 사천총독등의 직을 지냄. 신해혁명때 동북삼성총독을 지냄. 동북에서도 혁명당인들이 일어나려 하자, 조이손은 “보경안민”을 이유로 대군을 모집하여 진합함. 중화민국성립후 직위해제당하고 청도에 은거. 1914년 3월, 조이손은 원세개에 의하여 청사관관장이 됨. 청나라의 유신인 저명한 학자 가소문, 묘전손등 100여명을 모아서 청사(淸史)를 편찬함. 나중에 장훈의 복벽에 참여하나 실패하고, 계속 청사편수작업을 함. 스스로 청조의 밥을 먹고, 청조의 일을 하고, 청조의 사서를 편찬했다고 함. 청사고를 완성한 후 조이손은 북경에서 병사함. 년8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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