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정부에서 서양인들에 대한 업무를 처리한 사람은 임칙서(林則徐)이다. 그런데, 임칙서가 조정에 보낸 상소문을 보면 그가 서양에 대하여 얼마나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상소문에 나오는 대표적인 구절 몇 가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인의 병사는 많아야 만명이 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에는 쓸 수 있는 병사가 무궁무진합니다. 어느 적인들 물리치지 못하겠습니까"
임칙서의 이 사고방식은 마치 명나라의 환관 왕진(王振)을 보는 것같다. 그는 명영종으로 하여금 친정하게 할 때 한 말과 비슷하다. 영종이 왕진과 함께 친정에 나섰던 이유는 바로 왕진이 오랑캐의 땅에는 사람이 드뭅니다. 중국에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으니 예센(也先, 오이라트의 두목)을 물리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라는 말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만 많으면 이긴다는 사고방식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공통되는 것같다. 인해전술까지.
둘째, "영국이 중국을 공격하려면, 배를 타고 와야 합니다. 그들이 감히 내륙으로 들어오고자 한다면, 첫째는 강물이 얕아서 배가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둘째는 음식이 맞지 않을 것이며, 셋째는 무기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마른 강에 올라온 것과 같을 것이니 스스로 죽으러 오는 것과 같습니다."
임칙서는 중국에 도착해서도 영국사람들은 계속 배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들도 육지에서는 걸을 수도 있고, 말을 탈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영국인들의 배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던 때문일까?
셋째, "만일 상륙한다면, 오랑캐 병사들은 허리와 다리가 곧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내륙의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이런 자들을 잡아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개나 양을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영국인들이 다리를 굽히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 원인은 매카트니가 영국여왕의 사신으로 건륭제를 만났을 때,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을 거절하는 바람에 중국과 영국의 외교는 곤경에 처하였는데, 매카트니가 돌아간 후 청나라 신하들이 내린 결론은 영국인들은 천성적으로 구조적으로 무릎을 꿇을 수 없나보다. 그래서 황제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국인들은 다리가 곧고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광주에 와서 영국인들를 직접 대한 임칙서가 이런 내용을 황제에게 상소하였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당시 광주에 들어와 사는 영국인만도 한둘이 아니고, 영국인들과 교류하는 중국상인들도 한둘이 아닌데...어찌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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