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대선(大仙)
2006년 10월 24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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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겨울부터 나는 무협지를 읽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고룡은 들어보지 못했고, 그저 김용만 미친 듯이 읽어댔다. 그리고 적지 않은 "김용류"의 가짜 김용도 읽었다. 물론 양우생(梁羽生)과 소일(蕭逸)도 읽었고...
그러나, 양우생의 무협은 너무 수준높게 썼다. 시사를 많이 읽어서, 자기의 그러한 문학적인 기호를 소설속에 전부 집어넣었다. 나중에 나온 여추우(余秋雨)도 이 노선이다. 그는 무협을 수련한 것은 아니지만, 신주(神州, 중국대륙)을 넘나들며, 눈으로 팔황을 바라보며, 마치 중국 5천년의 문화를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하고 있다. 양우생과 여추우는 모두 하나의 문제점이 있는데, 바로 세계에서 그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문맹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소일에 대하여, 그가 쓴 무협은 마치 <<금광대도>>나 <<끓어오르는 군산>>과 같다.
김용이 세상에 나타났고, 그는 무협에 인정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무협에 약간의 악동기운을 불어넣었다. 예를 들면, 위소보, 예를 들면 대리의 단예, 예를 들어 영호충이 그렇다. 그가 가장 잘 쓴 무협은 <<의천도룡기>>이다. 그가 가장 잘 그린 인물은 일월교주 양소이다.
그러나, 그 때 고룡은 아직 나의 눈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내가 고룡의 무협을 읽고나서 느낀 것은, 김용은 무협을 쓴 것이 아니라, 싸움을 쓴 것이라는 것이다.
고룡의 첫번째 말은 나를 바로 놀라게 하였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너를 친구로 사귀겠다"
고룡의 두번째 말은 나를 또한 놀라게 하였다: "고수들중에 영원히 더한 고수가 있는 법이다. 한 사람이 만일 천하제일고수가 된다면, 아마도 더 빨리 죽게 될 것이다"
고룡의 세번째 말은 나를 더욱 놀라게 하였을 뿐아니라. 놀란 다음에 공감을 느꼈다: "남자는 술을 마시면, 각양각색의 여자를 생각하게 된다. 여자가 술을 마시면 왕왕 그저 한 남자를 생각한다. 바로 자기를 버리고 떠난 남자이다"
고룡의 이 세마디 말을 보고난 후에, 나는 고룡이 진짜 제대로 썼다고 느꼈다. 김용은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일까? 바로 그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김용이 쓴다면 그저 경요와 비슷하다. 느끼하지 않은가?
무협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무협은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다. 그러나, 김용의 무협의 항상 봄날의 따뜻한 물위에 기름기있는 화장한 얼굴을 보는 것하다. 붉은 살구나무가 갑갑해서 담장 밖으로 나가려고 한번 내다보다가(紅杏出墻은 붉은 살구나무가 담장밖으로 나갔다는 것으로 남편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것을 의미한다), 다시 움츠려든다. 담장밖으로 나가면 또 어떤가? 누가 당신을 반금련이라고 욕하겠는가?
고룡을 보고 나서는 다시는 김용을 보지 않았다. 두 사람을 절대로 같은 등급의 사람이 아니다. 김용이 하는 말은 모두 헛소리이고, 고룡이 하는 말은 술취한 후의 진담이다. 김용은 거짓으로 떠드는 것이고, 고룡은 진실한 마음이다.
김용이 무협을 쓰면서 비황등달하던 그 때에, 고룡이 무협을 쓰는 것은 술취한 후에 마음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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