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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무협소설

김용 : 80세의 나이로 캠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하다.

by 중은우시 2006. 5. 11.

 

캠브리지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때의 김용

 

작년 가을, 80세 고령의 김용선생이 캠브리지대학에 가서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80세노인이, 캠브리지로 가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결심하는 것도 어렵지만, 절차도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캠브리지는 영국의 역사깊은 대학이고, 그 문을 넘으려고 한다면, 나이든 김용선생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했다.

 

학교에서 먼저 요구한 것은 김용선생의 출생증명서였다. 80년전의 중국에,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살아남을지 죽을지도 모르는데, 출생증명서같은 것을 준비했을리가 없다. 더구나 그 때는 출생증명과 같은 제도도 없었다. 그래서, 김용선생은 홍콩의 변호사사무소에서 선서서를 만들어 자기는 몇년몇월몇일에 절강성 해녕현에서 태어났다고 기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 후에, 캠브리지에서는 김용에게 초, 중, 고, 대학의 성적증명서와 대학졸업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는 대학졸업장이 없었다. 김용선생은 그래서 영예박사, 영예교수증서등을 가득 내밀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가 상해에서 대학을 다닐 때, 마침 국공내전이 벌어지고 상해근처에서 전쟁에 들어가 학교가 조기에 방학을 하고, 대학졸업증서도 발급하지 않았다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캠브리지는 다음에는 신청인이 배우고자 하는 전공분야에 맞는 언어능력을 가졌다는 점에 대한 증빙을 요구했다. 김용선생은 그래서 옥스포드 세인트안토니대학원의 원장과 캠브리지의 한 교수를 통해서 증명서를 만들었다. 증명서의 내용은 김용선생은 중국고문에 밝고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김용선생이 현재의 젊은이들처럼 무슨 토플같은 것을 쳤을 리가 없다. 교수들은 다시 그에게 이미 발표한 영문문장을 요구했다. 김용선생은 옥스포드출판사가 출판한 홍콩주권반환에 관련된 영문문장을 제시했다. 캠브리지대학교수들의 토론후 결론은 문장이 그다지 좋지는 않고, 영어가 옛날 투이기는 하지만 대학원과정을 배우는데는 문제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캠브리지에서의 마지막 관문은 매우 간단하나 실제적인 것이었다. 김용선생에게 개인적으로 경제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김용선생은 영국은행의 행장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재무능력을 증명해달라고 하고, 홍콩의 은행가로 하여금 담보를 제공해달라고 하였다. 즉 캠브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비를 한푼이라도 안내지 않겠다는...재산이 수억홍콩달러에 달하는 김용선생도 캠브리지대학에 대하여 자신이 자신을 보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현금수표를 하나 끊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김용선생이 캠브리지에 입학하였는데, 이런 절차에만 3개월이 소요되었다.

 

국내외에서는 김용선생이 캠브리지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데 대하여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다. 어떤 사람은 김용이 쇼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용선생은 무척 실질적이다. 그는 "나는 원래 중국의 절강대학에서 교수를 했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나는 당신들 교수를 할만한 능력은 없다. 다만 나이가 좀 더 많으니, 여러분의 선배가 될 수는 있겠다"

 

어떤 사람은 친히 김용선생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캠브리지의 명예박사학위도 있는데, 이미 최고의 학위를 얻었는데, 왜 다시 돈을 들이고 노력을 들여서 보통 박사학위를 받으려 하느냐고? 김용선생은 캠브리지에서 공부하는 것은 바로 작고한 중국의 학자 진인각 선생이 말한 바와 같다는 것이다. "학위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구하려는 것"이라고. 중국근대사의 대학자인 왕국유, 진인각, 전목등의 사람들은 모두 옛글과 현재의 학문에 능통하였던 대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박사, 석사도 아니었다. 김용은 자기의 "명예교수" "명예박사"등의 명예학위는 너무 많다. 학위는 하나의 비실제적인 명칭이다. 그는 스스로 학문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영예학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명실상부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캠브리지에 가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김용선생은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과 어린이들은 김용이라고 하면, 학식이 풍부하고, 모르는것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 모르는게 없는 것이 아니고 단지 아는 것만 쓸 뿐이고, 모르는 것은 쓰지 않으며,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책을 뒤져볼 수밖에 없다."

 

"비록 왕삭선생이 나를 4대속인중의 한 명으로 꼽았는데,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통속소설을 썼으므로 속이라는 글자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내 학문이 부족하다고 비평하는 것은 상당히 중시한다. 학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유일하게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학문을 좋게 만드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낫게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어제보다 낫게 하려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할 뿐이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사람은 김용이 캠브리지에서 박사를 공부하는 것은 스스로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학문이 없으므로 마음이 허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김용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캠브리지에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것은 돈을 벌거나 직위를 올리려는 것이 아니다. 학문은 사람의 인격수양이나 인품견식을 넓히려는 것이지, 책을 읽는 것은 그 다음이다. 책은 세계 어디에든 있다. 그러나 캠브리지는 세계최고의 대학이고, 뛰어난 학자들은 좋은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김용선생의 "학연후지부족, 지부족연후학(學然後知不足, 知不足然後學, 배우고 나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난 후에 배운다)"는 배움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현재 학력만 중시하고 학문은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지, 학력만 원하고 학문은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김용선생이 캠브리지에서 공부한 결과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이 이름을 얻은 후에도 허심탄회하게 배우려는 겸손한 정신이다. 현재 사회에서 모자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신이 아닐까? 우리는 김용선생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