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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105

항우식비애(項羽式悲哀) 작자: 미상 왕안석(王安石)은 이런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중영(仲詠)이라고 불리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천부적으로 좋은 글을 쓰는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 사람들이 그의 글을 보고서는 모두 걸작이라고 칭송했다. 중영의 부친은 돈을 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로 하여금 글을 써서 .. 2006. 12. 11.
유방(劉邦)의 용인지도(用人之道) <<사기 고조본기>> 유방 : 만일 나라면 병사를 얼마나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 : 폐하는 10만이상을 거느릴 수 없을 것입니다. 유방 : 그대는 어떠한가? 한신 :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多多益善). 유방 : (웃으며) 다다익선이면서, 어떻게 나에게 붙잡혔는가? 한신 : 폐하는 병사를 거느.. 2006. 9. 27.
병마용의 병사들은 왜 투구를 쓰고 있지 않은가? 진시황의 병마용을 가서 본 사람들은 한가지 사실에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많은 사병들이 머리에 작은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는데,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것은 마포(麻布)로 만든 두건이라는 것이다. 장교모양을 한 사람들은 소가죽으로 만든 판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더 많은 사병.. 2006. 4. 28.
항우(項羽)는 아방궁(阿房宮)을 불태웠는가? 당나라때 두목이 지은 <<아방궁부>>라는 시에는 "초나라 사람이 불을 붙이니, 아까워라 초토가 되었구나"라는 구절이 있고,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는 "진시황은 함양에 사람이 많고, 선왕의 궁정이 작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듣기로 주문왕은 풍에 도읍을 정했고, 무왕은 호에 도읍.. 2006. 1. 13.
항우(項羽)가 오강(烏江)을 건너지 않은 이유? 생전주인걸(生前做人杰) 살아서도 인걸이더니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죽어서도 귀웅이구나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지금까지 항우가 강동으로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건너려고 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네. 이 사는 송나라때의 여류사인 이청조의 명작이다. 항우는 진나마 말기 농민의병의 영수였고,.. 2005.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