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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진)

범증(范增)은 왜 항우에게 버림받았는가?

by 중은우시 2013. 11. 15.

글: 양무후(陽武侯)

 

한(漢)나라 3년 12월, 유방(劉邦)은 형양(滎陽)과 오창(敖倉)의 사이에 양식을 운송하는 용도(甬道)에서 자주 초나라군대의 침탈을 받았다. 그리하여 한군은 양식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인심이 안정되지 못했다. 곤경을 벗어나기 위하여, 유방은 자주 기이한 계책을 잘 내는 진평(陳平)에게 항우(項羽)의 힘을 뺄 수 있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지 물어본다. 진평이 말한다. 항우가 믿는 사람은 항왕의 골경지신(骨鯁之臣) 범증(范增), 종리매(鍾離昧), 용차(龍且)와 주은(周殷) 등의 인물이다. 항우는 사람됨이 다른 사람을 시기하기 좋아하니, 만일 유방이 진평에게 반간계를 쓰도록 한다면, 가볍게 항우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방은 진평에게 거금을 주고 그에게 항우와 부하의 관게를 이간진시키도록 한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항우는 정말 계책에 말려들어 종리매를 불신임하기 시작한다.

 

한3년 4월이 되어, 항우는 유방이 소재한 형양을 돌연 맹렬하게 공격한다. 유방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신을 보내어 청화(請和)하게 된다. 형양을 경계로 하여 서쪽은 한, 동쪽으로 초로 나누자는 것이다. 그러나 범증은 동의하지 않는다. 항우에게 계속 유방을 공격하라고 건의한다. 유방은 이 때 범증을 눈여겨 보았다. 항우의 사신이 유방의 군영에 왔을 때, 진평은 높은 규격의 접대를 베푼다. 그러다가, 항우가 파견한 사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돌연 높은 규격의 예우를 취소하고 한 마디 덧붙인다: "나는 아부(亞父)가 보내온 사신인 줄 알았다. 일찌감치 얘기하지 그랬느냐." 그리고 바로 접대의 규격을 낮추어 버린다. 항우는 이로 인하여 범증을 의심한다. 적과 내통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방은 한나라를 건립한 후, 여러 신하들과 자신이 왜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얘기하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다: "항우는 범증 한 명이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나에게 붙잡힌 이유이다." 이 말은 무형중에 범증의 지위를 끌어올렸다. 우리의 전통적인 인상 속에, 범증과 항우의 관계는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보다 더 나은 관계이다. 70여세의 범증은 시시각각으로 항우의 이익을 보호했고, 항우를 자신의 아들처럼 돌보고 관심을 가졌다. 그는 많은 나이에도 반란에 참가하였고, 사서에는 그가 "호기계(好奇計)"했다고 하였다. 분명히 강호경험, 인정세고(人情世故)와 기모도략(奇謀韜略)에 모두 능통한 인물이다. 각종 문학작품과 영화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를 제갈량과 장량과 같은 신선급의 인물로 그리고 있다. <홍문연전기>라는 영화에서 그는 침온(沉穩), 모략(謀略)과 기인기질은 확실히 장량보다 더 했다. 그러므로, 젊고 세상에 나온지 얼마되지 않은 항우는 당연히 그를 의존할 수있는 부친을 여겼을 것이다.

 

비록 사서에 명확히 기록하지 않아, 항우가 주재한 희수분봉(戱水分封)때 범증이 곁에서 어떻게 방안을 확정하는데 도와주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제후분봉때,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항왕, 범증은 패공이 천하를 가지려는 것인지 의심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범증과 항우가 분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협의해본 바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소한 유방을 파촉으로 폄봉(貶封)하는 것은 분명 범증과 관련이 있다. 이로써 추단하면, 항우의 많은 의사결정은 범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많은 의사결정과 계모는 범증이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진평이 그다지 고명하지 않은 반간계 하나로, 범증이 항우의 의심을 받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긴다. 범증과 항우의 관계가 우리가 알고있는 것처럼 그렇게 친밀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현존 사료를 보면, 우리는 범증과 항우의 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그저 추측을 해서 여러분들과 나누어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추측한다. 범증은 아마도 항씨가족의 핵심인물에게 배척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위때문에 항우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홍문연은 범증과 항씨가족의 미묘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비록 <사기>에서 홍문연에 관한 기재는 강한 문학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현재 우리는 기본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 사마천이 홍쿤연에 관하여 쓸 때, 유방의 근신 육가(陸賈)가 쓴 <초한춘추(楚漢春秋)>를 참고하였다. 그러나, 육가가 <초한춘추>를 쓸 때, 유방과 당시 홍문연에 참가한 한나라대신은 모두 이 책을 보았을 것이다. 육가는 이 책에서 아마 "억류양항(抑劉揚項)"할 수가 어려웠을 것이다. <사기>의 홍문연에 대한 기록을 본 사람이면 모두 강렬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항우의 머리는 다눈하고, 항씨집안사람들은 내분에 빠졌다. 유방은 확실히 대지대요(大智大勇)할 뿐아니라, 말도 잘했다. 유방의 기지와 여러 부하들의 목숨을 걸고 도우는 바람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맣은 구체적인 부분은 통상인들의 이해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그 진실성은 고금의 연구자들에게 의심을 받아왔다.

 

비록 우리가 보는 홍문연과 진정한 역사적 사실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비교적 확정할 수 있다. 범증은 유방을 죽이자고 주장했고, 항백을 우두머리로 하는 항씨가족들중 많은 사람들은 홍문연을 전후하여 유방을 죽일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첫째, 범증은 여러 경우에 모두 항우에게 유방을 쳐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만들자고 주장해왔다. 둘째, 한나라가 건립된 후, 유방은 항백에게 유씨성을 하사한다. 원인은 바로 항백이 홍문연에서 유방을 도와서 위기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사기>의 기록에따르면, 범증은 항장(項莊)이라는 사람에게 유방을 죽이라고 시킨다. 항장은 동의하여, "항장무검의재패공(項莊舞劍意在沛公)"의 장면을 연출한다. 다만 이것만 가지고는 범증과 항씨가족의 사이가 좋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항장은 이 홍문연이후,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항씨집안의 핵심인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증과 항씨가족중 일부 실력파인물의 관계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 그가 의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항우의 신임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후 초한쟁패를 보면, 항씨가족은 항우가 가장 의존했던 군사정치집단이다. 항백 이외에, 이 가족중 자주 이름을 보이는 사람으로는 항타(項陀, 일반적으로 項他, ㅏ項它는 모두 동일인물로 본다), 항한(項悍), 항관(項冠), 항성(項聲), 항양(項襄)등이 있다. 모두 항우가 아주 신뢰하고, 의존한 장수 혹은 문신이다. 일단 이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한다면 범증은 아주 고립될 수밖에 없다.

 

항씨가족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고 하여 모든 외성인(外姓人)들이 항시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항우는 항씨가족세력에 의존하는 외에, 항씨가족과 연원이 있는 다른 외성인들도 신임했다. 예를 들어, 용차, 주은, 정창(鄭昌), 조구(曹咎), 계포(季布)가 있고, 일부 지방실력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설공(薛公), 종공(終公)등이다. 이들중 용차는 항씨가족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 항성, 항타는 모두 용차와 함께 전투에 참가한 바 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더라도, 종리매는 진평이 쓴 반간계의 영향으로, 항우의 의심을 받지만 그후 종리매의 전투를 보면, 기실 종리매는 항우의 신임을 정말로 잃은 것은 아니었다. 이상의 인물들 중에서 예를 들어, 정창, 조구는 사사에 명확히 기록이 있다. 그들은 항씨집안이 진나라시절에 지하공자을 할 때, 이미 항씨집안에 은혜를 베풀거나 항씨집안과 친밀한 관계였다. 이 두 명을 제외하고, 비록 사서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항씨집안과 초기에 깊은 교분이 있었다. 다만 진평등이 말한 바 있다. 항우는 가족들과 항씨와 관계가 좋은 사람들을 기용하기 좋아한다고. 그러므로, 이들이 항우의 신임을 받고 중임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모두 항씨집안과 연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소한 초기에 항가군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용차, 주은, 계포가 그들이다.

 

그러나, 범증과 이들은 다르다. 그는 항량이 강동에서 거병한 후, 제나라당이었던 설군으로 간 후, 그가 항량(項梁)을 종용하여 웅심(熊心)을 초회왕(楚懷王)으로 옹립하도록 종용하면서, 비로소 초나라와 항가군의 핵심권에 진입한다. 그후 그는 초회왕에 의하여 말장(末將)에 임명되어, 송의(宋義), 항우와 함께 조나라를 구원한다. 아마도 송의가 항우에게 죽고, 범증이 항우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항우와 범증이 가까워진 것일 것이다. 이전에 범증과 항우, 항씨가족은 기실 그다지 친밀한 관계가 없었다.

 

당연히, 항씨가족과 혈연도 없고, 항씨가족과 깊은 교분이 없었지만,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범증은 항우의 '아부'이다. 이것은 최소한 범증이 항우로부터 아들과 부친간의 관계와 같은 신임과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범증의 이 '아부'신분은 의심스럽다. <사기.항우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홍문연을 기술할 때만 범증이 항우의 아부라고 언급한다. 이전과 이후에는 모두 범증을 이런 칭호로 부르지 않는다. 홍문연의 장면을 기술할 때, 범증의 좌석을 언급할 때 돌연 이런 말이 나온다. "아부는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아부는 범증이다."이렇게 한 사람의 신분을 표현하는 것은 사마천의 이전 기술방식과 전혀 다르다. '아부'라는 것을 범증을 칭하는 것은 주로 <사기.고조본기>이다. <고조본기>에서 처음으로 아부라는 칭호가 나타난 것은 홍문연이전이다. 범증이 항우에게 유방을 치라고 권할 때, 사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부는 항우에게 패공을 치라고 권했다"그렇다면, 문제는 명확해지낟. 어떤 사람은 이로 인하여 범증의 아부 신분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이에 기하여 유방의 진영에서 고의로 범증의 지위를 끌어올려, 유방이 사람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결점을 드러내려 한 것이라는 것이다. 모두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항우는 부친마저도 버리는데, 항우가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범증은 성격이 대단했다. 아마도 이것이 항우가 그를 버리게된 원인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아마도 송의를 죽일 때, 말장의 신분으로 항우를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항우를 도와 천하의 분봉을 실시한다(아마도 이것때문에 항우는 그를 역양후에 봉했을 것이다). 이때부터, 점차 항우에 말투가 공손하지 않았다.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홍문연에서 항우가 유방을 보내준 후, 범증은 화가 나서 항우르 "수자(竪子)"(우리가 말하는 홍문연은 아마도 누군가가 편찬한 것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믿을 만한 증거는 바로 범증이 진평의 이간질로 항우에 의하여 '삭탈관직'된 후, 범증은 항우가 더 이상 그를 신임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성격이 대단한 범증은 대노하여 한 마디 한다: "천하의 일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군왕께서 뒷일을 알아서 하십시오. 이제 해골(대왕게 바친)을 돌려주십시오." 이 말은 아주 가슴아프다.

 

기실 전쟁때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항우가 일만은 두렵지 않으나 만일은 두려워하는 심리로 그를 의심한 것이고, 그의 일부 권력을 빼앗은 것이지 드러내놓고 그를 배척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더더구나 그는 격리조사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대노하면서, 무슨 "천하의 일은 이미 정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분명하다. 즉, '너 항우는 이제 끝났다. 유방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화를 낼 것이다. 그가 한 이 말을 보면 그가 항우를 떠난 것이지, 항우가 그를 버린 것은 아니다. 더구나 떠나도록 핍박한 것도 아니다. 만일 범증이 조금만 화를 억눌렀더라면, 머리를 썼더라면 항우에게 분명하게 설명하고 진평의 그 반간계를 깨트려 버리는 것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진평에게 걸려든 것이다. 젊은이인 항우는 자존심이 있었다. 항우는 그 시대에 능력이 출중했고, 세력이 거대했던 풍운아였다. 자존심이 분명 아주 강했을 것이다. 범증이 이렇게 나오자 그는 분명 화가 나서 그를 떠나보냈을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나, 항우는 그래도 이성적이었다. 범증이 이처럼 풍자와 적의와 비꼬는 것이 충만한 말을 내뱉었지만, 그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뜻대로 보내준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왕왕 지나치고 보지 못하고 있다. 범증이 항우를 떠나서 간 곳은 팽성이다. 자신의 고향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항우가 그에게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항우는 범증을 그래도 잘 대해주었다. 사서에 따르면 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범증은 "저발배이사(疽發背而死, 종기가 등에 나서 죽었다)" 이런 병을 앓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범증오 아마도 이렇게 홧김에 죽은 것일 것이다.

 

범증의 능력문제에 대하여, 기실 한고조가 천하를 얻은 후에 그를 끌어올리는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범증은 능력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 정말 신선급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찾아볼 수 있는 사서에 따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범증은 항우가 분봉천하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기타 방면에서는 그다지 내놓을만한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유방이 팽성을 공격할 때, 범증이 무슨 탄복할만한 모략을 내놓았다는 기록은 없다. 모두 항우가 혼자서 버텨냈고, 반패위승(反敗爲勝)한다. 장량과 비교하면, 범증은 관건적인 순간에 항우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진평이 쓴 반간계를 보면 범증에게서 효과를 발휘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따. 한고조가 그저 범증을 가지고 얘기한 것은 항우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다. 그 근거로 삼은 것이다. 한고조가 고의로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