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곽찬금(郭燦金)
출신으로 보면 진말한초의 걸출한 인물은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귀족: 항우, 장량, 위표....
하급관리: 유방, 소하, 조참....
천직종사자: 번쾌, 주발(천업종사자); 경포, 팽월(범죄분자); 한신, 장이, 진여(유민)....
영웅의 결말을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성공자와 실패자.
성공자: 유방, 소하, 조참, 장량, 번쾌, 진평, 장이....
실패자: 항우, 위표, 주발, 경포, 팽월, 한신....
이상은 비록 간단한 분류이지만, 이런 분류를 살펴보면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출신이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위의 분류에서, 성공률이 가장 높은 것은 하급관리계층이다. 성공률이 가장 낮은 것은 원래 사회가 가장 낮은 사람들이고, 성공률이 중간인 경우는 귀족후예이다. 여기에서 어떤 정보를 알 수 있을까?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 간단하게 분석해보도록 하자.
진나라말기의 영웅중 귀족출신은 세 사람이다: 항우, 장량, 위표. 먼저 그들의 운명을 보자.
항우는 키가 8척여에 이르고, 힘이 정을 들 정도이며, 재주가 남들보다 뛰어났다. 항우의 조상은 대대로 초나라의 대장이었고,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항씨는 실패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항우는 일찌기 글자를 배운 적이 있으나 중도에 포기하였다고 하다; 검술을 배운 적이 있으나 역시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항우는 심각한 학습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이렇다: "글자는 많이 알 필요가 없다. 이름만 쓰면 된다. 검술로 배워서는 아무리 잘해야 기껏 1사람을 상대할 수 있어서 더욱 재미없다. 하려면 큰 일을 해야 한다. 배우려면 천군만마를 상대하는 진짜 재주를 배워야 한다." 말은 비록 이렇게 하였지만, 그가 진정 병법을 배우려 했을 때는 역시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래도 항우는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있었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출순하는 진시황을 보게 된다. 한 마디가 바로 튀어나온다: "그를 대신하여 자리를 차지하겠다."
진나라말기의 대혁명에서, 항우는 형세를 따라, 금방 지도자가 된다. 출신이 항우를 도왔다. 왜냐하면 그의 혁혁한 집안배경으로 그는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호소력은 금방 실질적인 전투력으로 전환된다. 여러 측의 추앙으로, 항우라는 성성지화(星星之火)는 요원지세(燎原之勢)를 이룬다.
그러나 출신은 그를 망치기도 했다. 출신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운명이 비범하다고 느끼게 하고 그로 하여금 학습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기연도 만났고, 담량도 있었다. 그러나 모략은 없었다. 또 다른 위대한 지도자 유방과 비교하면, 항우의 약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유방은 각양각색의 결점이 있지만, 그는 한번도 최선의 건의를 그냥 넘긴 적이 없다. 항우는 다른 사람의 건의를 듣지 않았고, 마땅히 지녀야할 모략을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실패를 피할 수 없었다. 오강에서 자결하는 것도 피하기 어려웠다.
같은 귀족출신이지만 장량은 또 다른 유형이다.
장량의 선조는 한(韓)나라 사람이다. 조부와 부친을 합쳐서 5대에 걸쳐 한나라의 재상을 지낸다. 그러나 장량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미 한나라에서 관직에 나갈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진나라의 통일과정에서 한나라는 일찌감치 멸망했기 때문이다. 망국의 장량은 모든 재산으로 용사를 찾아 진시황을 암살하고자 한다. 마지막에 대역사를 한 명 찾고 120근의 무게를 지닌 철추를 만든다. 진시황이 순유할 때, 박랑사에 매복한 장량과 대역사는 손을 쓴다. 투포환선수처럼 철추를 던졌지만, 아쉽게도 진시황의 부차(副車)를 맞추었을 뿐이다. 진시황은 대노하여, 전국에 걸쳐 대거 수색한다. 장량은 이름을 바꾸고 하비(下邳)로 숨는다.
이것은 장량이 처음으로 정치에 개입한 건이다. 이번 실패경력은 그에게 너무나 많은 교훈과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그 이후, 장량은 일처리에 있어서 더욱 성숙해지고 노련해진다. 이 점에서 항우는 달랐다. 항우의 혁명생애에서 진정한 실패를 겪지 않았다. 그는 계속 순조롭게 일을 진행해나갔다. 항상 꽃다발과 박수를 받으면서. 유일한 한번의 실패로 그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장량은 혁명의 첫걸음에서 중대한 좌절을 맛본다. 그 이후 장량은 일처리에서 완전히 다르게 된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손으로 황석공의 신화전설을 만들어 내고, 암중으로 여후등을 도우는데도 천의무봉이었다.
이외에 장량의 최대 공헌은 유방을 신격화한데 있다. 유방의 가족외에 장량은 유방을 신격화한 첫번째 인물이다. 그리고 이 원칙을 시종일관 관철한다. 그는 자주 외부인의 앞에서 유방을 평가할 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하늘이 준 것일 것이다." 유방이 승리를 거둘 때, 유방이 위기를 벗어날 때, 유방이 개인적인 매력을 발산할 때, 장량은 반드시 이런 말을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장량이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유방의 자아신격화는 아마 많이 약화되었을 것이다. 장량이 유방을 반인반신의 이미지로 사회각계의 사람들 마음에 뿌리내리게 한다. 장량은 유방을 부축해서 신단으로 끌어 올렸다. 이 점에 대하여 유방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장량이 비록 탁월한 전공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작위를 받는다. 유방은 "운주유악지중결승천리지외(運籌帷幄之中決勝千里之外)"라는 말로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므로, 장량을 통하여 우리는 귀족계층의 세심한 마음씀씀이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장량과 항우는 같은 귀족이지만, 운명이 달랐다. 이는 귀족운명의 불확정성을 충분히 설명한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또 다른 조의 운명은 더욱 명확하다. 이 조의 인물의 가장 원시적인 신분은 모두 하급관리이다.
진말한초의 영웅중 하급관리출신은 세 사람이다: 유방, 소하, 조참. 세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성공을 거둔다. 소하, 조참의 성공은 그들이 사람을 잘 골라서 따랐다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원인이다. 사람을 잘 골라서 따른 사람이 어찌 그들 둘 뿐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유방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유방이 공신들을 대거 죽일 때, 그들 둘은 생명을 보전한다. 이것은 충분히 설명한다. 그들 두 사람에게는 남다른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을.
소하와 조참은 모두 패현 사람이다. 그들은 법률을 잘 알았다. 패현현령 수하의 관리들이었다. 소하가 주리(主吏)로 있을 때, 조참은 옥연(獄掾)을 맡는다. 그들 둘은 흑백에 모두 통했으므로 현지에서의 명성은 이미 중천에 뜬 해와 같았다.
확실히 두 사람은 공개된 사회신분이 있었다. 그들은 현정부의 공무원이다. 손안에 일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두 사람의 능력도 상당히 두드러졌따. 그들은 신통광대하고 수안통천(手眼通天)했으며, 관직은 높지 않았지만, 능력은 적지 않았다. 현의 많은 일들을 그들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회에 대한 이해, 각계층의 상황에 대한 파악에서 생각지 못할 정도로 정확했다. 시국에 대하여도 독보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은 괴롭혀도 되고, 어떤 사람을 존경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러므로, 한고조 유방이 평민일 때, 소하는 자신의 관리신분의 직권을 이용하여 여러번 그를 보호해준다. 유방이 정장이 된 후, 소하는 더욱 자주 그를 도운다. 유방은 관리의 신분으로 함양에 복역하기 위해서 갔다. 관리들은 모두 그에게 300전을 준다. 유독 소하만 긍게 500전을 준다. 이것이 바로 소하의 안목이다. 비록 그는 당시에 유방이 장래 황제에 오를 것을 생각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떤 사람을 존경해야하는지는 알았다. 이 것을 알았기 때문에, 패현에서 그들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팔면영롱, 찰안관색(察眼觀色)의 능력에 의존하여, 소하와 조참같은 이들은 위기를 벗어나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런 능력은 그들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능력은 그들이 동시대의 사람들보다 일처리수준이 훨씬 뛰어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출신이 평민백성들보다는 훨씬 높았고, 보통백성과 비교하면, 그들의 우월성이 있었다. 보통백성보다 견식이 있고, 존엄이 있고, 사상이 있고, 관계가 있었따. 동시에 그들은 몰락한 귀족들보다 나았다. 몰락귀족은 옛날의 영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에 대하여 원망을 지니고, 보통백성들은 멸시했다. 그러므로, 몰락귀족들 항우, 장량등은 많은 정도에서 사회와 단절되었다. 그러나, 소하, 조참같은 자들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상층과 하층을 연결하고, 관청과 민간을 연결하며, 흑도와 백도를 연결했다. 사회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자유자재였다.
유방이 거사를 하여 패공이 되자, 소하는 자주 그의 조수로서 공무를 처리한다. 유방이 함양에 들어간 후, 장수들이 앞다투어 창고로 달려가서, 금은보화와 비단등 재물을 차지할 때, 유독 소하는 먼저 공실로 들어가 진나라 승상과 어사들이 보관하고 있던 법률조문, 지리도책, 호적서류등의 문헌자료를 챙긴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보관한다. 유방이 한왕에 오른 후, 소하를 승상에 임명한다. 한왕 유방이 천하의 험관요새, 가정, 인구의 다소, 각지방의 여러 방면에서의 강약, 민중의 고통등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하가 진나라의 원시자료를 잘 보존한 덕분이다.
소하, 조참은 자신이 구사회 하급정부에서 일한 실제경험을 가지고, 유방에게 아주 귀한 도움을 준다. 그래서 천하통일후, 유방은 소하, 조참에게 상을 가장 많이 하사하고, 두 사람은 전후로 재상에 오른다.
이렇게 하여, 암흑의 구사회의 두 하급관리와 또 다른 하급관리가 힘을 합쳐서 시대의 최대승자가 된다.
당연히, 잔나라말기의 혁명자 중에는, 더 많은 천업종사자, 범죄문자, 유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번쾌, 주발등이 종사한 것이 바로 천업이다. 경포,팽월은 범죄분자이다. 한신은 전형적인 유민이다. 그들은 한나라의 건립에 두드러진 공헌을 세우는데, 이들은 거의 모두 선종하지 못한다. 당연히 번쾌는 제외한다. 왜냐하면 그는 유방과 동서간이기 때문이다. 황실인척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중 번쾌는 개도살전문직이다. 일찌기 개를 잡아서 개고기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주발은 더욱 심해서 누에바구니를 짜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동시에 겸직으로 장례식에 악기를 연주했다; 경포는 진나라때 여산의 죄수이다. 팽월은 강도짓하는 토비이다; 한신, 장이는 한 끼를 먹어도 다음 끼니는 기약이 없는 유랑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시기가 도래할 때 과감하게 손을 쓰고 하늘과 땅이 놀라고 귀신이 곡을 할 큰 일을 해낸다.
개를 잡던 번쾌는 홍문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다.
홍문연에서, 범증은 유방을 모살하고자 한다. 그래서 항장이 검무를 출 때, 패공을 죽이고자 한 것이다. 번쾌는 바로 뛰어들어서 항우가 내린 미주와 고기를 마구 먹으면서 항우에게 교훈을 내린다. 누가 알았으랴 바로 그로 인하여 항우는 유방을 죽일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주발은 유방과 같은 고향사람이다. 처음에, 유바으이 대오가 막 시작되고, 막 거병하였을 때, 주발은 시종관의 신분으로 한고조를 따라 호릉으로 진공하여 방여를 공격한다. 방여가 반기를 들자 주발이 그와 교전을 벌이고 적군을 패퇴시킨다. 그후 풍읍으로 진격한다. 탕군 동쪽에서 진군을 공격한다. 군대는 유현과 소현으로 돌아가서, 다시 탕군을 재차 공격한다. 그리고는 함락시킨다. 하읍을 치는데, 주발은 가장 먼저 성벽에 오른다. 주발은 한고조를 도와 동서남북으로 정벌할 때 크고 작은 전공을 수십차례 세운다. 한고조는 그에게 오대부의 작위를 하사한다.
위의 두 사람은 비록 천업에 종사하였지만, 모두 양민이다. 대혁명이전에, 위법한 일은 거의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경포와 팽월은 달랐다.
진나라때 경포는 죄수였다. 그는 형률에 저촉되어 '경형(黥刑, 이마에 먹으로 글씨를 새기는 형)'을 받는다. 경형을 받은 후, 그는 여산으로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한다. 나중에 항우가 이끄는 의거군에서 큰 공을 세워 삼군중 가장 용맹한 자가 된다. "항상 군대의 선봉에 섰다" 그는 금방 두각을 나타내고, 그 시대의 역사를 바꿀 대표적인 사건에 거의 개입한다. 장한의 20만투항군졸을 생매장한 것은 항우가 명령을 내렸지만, 일처리는 경포가 한 것이다. 초회황을 추격하여 살해한 것도 명령은 항우가 내렸지만, 일은 경포가 한 것이다.. 이런 두드러진 업적으로 경포는 마침내 항우에 의하여 왕에 봉해진다: 구강왕(九江王).
팽월은 창읍 사람이다. 자주 거야의 호수에서 물고리를 잡았다. 일당들을 모아서 강도가 된다. 진승, 오광, 항량이 반란의 기치를 내걸 때, 어떤 젊은이가 팽월에게 말했다: "많은 호걸들이 앞다투어 깃발을 들어,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키는데, 당신도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서 해보자." 팽월은 아주 냉정하게 말한다: "현재 두 마리의 용이 막 싸우는 중이다. 좀 더 기다리자."
1년여가 흐른 후, 호수의 젊은이 100여명이 모여서 팽월을 따르고자 한다: "당신이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주십시오." 팽월은 거절하며 말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고집을 꺽지않고 계속 요청하자, 팽월은 비로소 응락한다. 그들과 다음날 태양이 뜰 때 집합하기로 약속하며, 늦게 오면 목을 베겠다고 한다. 다음 날 태양이 뜰 때, 늦은 사람이 십여명이 있었다. 마지막에 나타난 사람은 정오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당시 팽월은 아주 미안해하며 말한다: "나는 늙었다. 너희가 나에게 우두머리가 되라고 했는데, 지금 약속한 시간마저도 많은 사람들이 늦게 온다. 모조리 죽일 수는 없으니, 가장 늦게 온 한 사람을 죽이겠다." 그리하여, 처벌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명하여 마지막으로 온 자를 죽이라고 한다. 모두 희희낙락하며 말한다: "그럴 것까지 있습니까. 이후 다시는 늦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팽월은 그 말에 전혀 움직이지 않고 직접 그 자를 죽여버린다. 그 후에 단을 만들고 수급을 올려놓고 제사지내고,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다. 그리고 팽월을 두려워한다. 누구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지 못한다. 팽월의 위풍은 세워졌다. 그는 이때부터 이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토지를 빼앗고, 제후들에게서 흩어져 도망친 사병들을 끌어모은다. 이 도적무리들의 실력은 금방 커지게 된다.
유방이 군대를 이끌고 거야를 지날 때, 팽월은 병력을 이끌고 유방을 도와 창읍성을 공격한 바 있다. 실패한 후, 유방은 병력을 서쪽으로 끌고 간다. 나중에 팽월은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유방에 귀순한다. 그리고 위나라땅의 10여개 성을 연이어 격파한다. 한(漢)에서는 위표(魏豹)를 왕으로 삼고, 팽월을 위나라 상국으로 삼는다.
기원전204년(한고조3년), 유방은 서주에서 패배하고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도망친다. 팽월은 한왕이 잃은 성읍을 회복하고, 초나라군대의 양식로를 차단한다. 그리하여 초군은 앞뒤로 적을 맞이하게 된다. 기원전203년(한고조4년), 겨울, 유방은 항우와 형양(滎陽)에서 대치한다. 유방은 위기일발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팽월이 병력을 이끌고 항우의 후방에서 연속하여 수양(睢陽), 외황(外黃)등 17곳의 군사요지를 함락시킨다. 그리하여 유방의 위기를 풀어준다. 기원전201년(한고조6년) 봄, 유방은 팽월을 위왕에 봉한다. 그리고 나중에 양왕으로 고쳐서 봉하고 수도를 정도(定陶)로 삼게 한다.
한신은 회흠 사람이다. 당초 평민백성일 때, 그는 빈곤했을 뿐아니라, 품성도 좋지 못했다. 그러므로, 관직에 추천을 받을 수도 없었고, 장사로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자주 다른 사람의 집으로 가서 받을 얻어 먹게 된다. 그래서 모두 그를 싫어하게 된다. 그는 여러번 하향 남창정 정장의 집에가서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연속 수개월을 그렇게 한다. 정장의 처는 그를 미워했고, 미리 아침을 해서 실내의 침상으로 가지고 가서 먹었다. 식사시간 때, 한신이 갔지만, 식사를 주지 않았다. 한신은 그들의 뜻을 잘 알았고, 화를 내며 떠난다. 그리고 다시는 찾아가지 않는다.
진승,오광의 난 이후, 한신은 항량에 투신한다. 이어서 초패왕 항우를 따른다. 그러나 항우는 그를 중용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유방에게 투신한다. 처음에 유방도 인물도 별로이며 과하지욕(胯下之辱)을 당한 바 있는 한신을 무시한다. 승상 소하가 극력 추천하는 바람에 한신을 대장으로 삼게 된다. 한신은 대장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정의 옛도로를 따라 진창으로 나가서 일거에 관중지구를 차지한다. 그래서 유방이 삼진(三秦)을 차지할 수 있게 해준다. 다음 해, 함곡관을 나가서, 병력을 이끌고 초나라수도 팽성으로 간다.
그후, 한신은 주변의 전장을 정리한다. 위나라를 공격할 때, 위나라를 상대하는 군사배치는 정면으로 도하하는 모양을 취하다가 암중으로 측후방에서 몰래 건너간다. 그리고 그들이 대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공격하고 위왕표를 포로로 잡는다. 정경전투에서는 배수의 진을 친다. 그리하여 장병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일당백으로 싸워서 1만으로 20만의 조군을 이긴다. 회수전투에서는 강물을 빌어 초군을 분할시키고, 제,초연합군을 각개격파한다. 제나라땅을 점령한 후 한신은 제왕에 봉해진다.
기원전202년 봄, 초한양군은 해하에서 결전을 벌인다. 한신은 혼자서 중군을 맡는다. 밤에 되자, 한신은 한군에게 사방에서 초나라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리하여 초나라군대는 투지를 상실한다. 한군에 의하여 일거에 해하에서 섬멸된다. 항우는 대세가 기운 것을 보자, 오강의 가에서 자결하고 만다. 초한전쟁은 한왕 유방의 승리로 끝이 난다.
이들은 한나라의 건립에 공헌하여 역사책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최종 결말은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주발은 감옥에 갇힌 적이 있고, 하마터면 옥리에 의해 죽을 뻔한다. 번쾌는 비록 유방의 동서이지만, 체포된 바 있다. 유방은 친히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만일 진평이 암중으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었을 것이다; 팽월은 유방에 의하여 육장이 된다; 경포는 유방에게 주살될 것이 두려워, 거병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실패후 손위처남 장사왕에게 유인되어 살해당한다; 한신의 최후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삼족이 멸하게 된다.
이들 하층출신의 사람들의 최후 명운은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데, 우연만은 아니다. 그들의 출신이 그들의 시야를 제한했다. 동시에 그들의 사상을 제한한다. 그들은 관료체제의 운영규율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정치의 운영규율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되는 대로 일처리를 했다. 위기감도 부족했다. 그래서 진정한 위기가 초래된다.
그러므로, 한나라초기의 3가지 조의 인물중에서, 하급관리는 잘 영합하는 투기본능의 정치적 뭎격으로 다른 조의 인물들이 거두지 못한 성공을 거둔다. 하층출신들은 비록 한 때 명성을 떨치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결국 그들을 기다린 것은 비극적 최후였다. 귀족출신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능력이라고 믿었다. 어떤 사람은 선종했고, 어떤 사람은 비명에 죽는다. 이 3조의 인물들의 운명을 분석해보면 계층분석이론의 좋은 기초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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