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105 항우는 왜 제국을 잃어야 했는가? 글: 후홍빈(侯虹斌) 1 부득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시기에 성을 도살하는 것(屠城)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항우는 특히 이를 좋아했다. <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2세 2년(기원전208년), 항우는 양성(襄城)을 도살한다. 같은 해, 유방, 항우는 성양(城陽)을 도살한다. 2년후, .. 2015. 3. 26. 여후(呂后): 불행한 가정에는 각자의 불행이 있다 글: 후홍빈(侯虹斌) 1 섬서(陝西) 함양(咸陽) 진도구(秦都區) 교점향(窖占鄕) 부근, 한고조 유방의 능묘인 장릉(長陵)이 있다. 장릉의 동쪽에 200여미터 떨어져서, 여후의 합장릉이 있다. 한나라때 제왕능묘를 살펴보면, 한나라 장릉의 건설은 한나라 제왕능묘중에서 가장 특별하다. 그 .. 2015. 3. 26. 중국역사상 초일류 십대무장(十大武將) 글: 단전룡(段錢龍) 1. 병가식신(兵家識神) 손무(孫武) 후인들이 그를 손자(孫子), 손무자(孫武子), 병성(兵聖), 백세병가지사(百世兵家之師), 동방병학비조(東方兵學鼻祖)로 추앙한다. 그는 기원전535년경에 출생했고, 일찌기 <병법> 13편을 오왕합려에게 보여주어, 장군의 직을 받는다. .. 2015. 3. 26. 수후지주(隨侯之珠) 행방의 수수께끼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수후지주"는 춘추전국시대 수(隨)나라의 보물이다. 그것은 "화씨지벽(和氏之璧)"과 함께 나란히 춘추시대의 양대기보(兩大奇寶)이다. 이 두 개의 기보는 춘추전국시대에 여러번 언급된다. 예를 들면, "변화보박(卞和報璞)", "완벽귀조(完璧歸趙)" 등 역사이야기는 .. 2015. 2. 10. 항우가 죽은 후 항우의 부장(部將)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서 그는 즉시 공신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상을 내리지 않고 그가 생각하기에 더욱 중요한 한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것은 항우의 부하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는 원래 그를 옹호했던 몇몇 제후를 다시 한번 확.. 2014. 12. 12. 여후(呂后)는 심이기(審食其)와 사통했는가? 글: 복녕객(福寧客) 벽양후(辟陽侯) 심이기는 유방과 같은 고향사람이고, 얼굴과 눈이 청수하고, 말재주가 뛰어났다. 유방이 거병한 후, 집안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자, 심이기를 '사인(舍人)'으로 삼아 집안일을 대신 처리하게 하였다. 여후는 심이기와 밤낮으로 모여서 얘기하여, .. 2014. 10. 2. 이전 1 ··· 5 6 7 8 9 10 11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