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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유방의 깡패주의: 소깡패, 대깡패 및 수퍼깡패

by 중은우시 2013. 11. 10.

글: 대지약(大智若) 

 

무엇이 소깡패(小流氓)인가? 이런 류의 사람은 개략 기이한 복장을 하고, 몸에는 청룡과 백호 문신을 하고, 행동거지가 속되며, 휘파람을 불고, 걸음걸이는 건들건들한다. 먹고 마시면서 가끔 간이 부으면 부녀자를 희롱하고, 간통하는 류의 일을 벌인다. 이들 소깡패는 호풍환우하는 강호큰형님이 아니라, 철저히 주변화된 패류(敗流)이다.

 

무엇이 대깡패(大流氓)인가? 이런 사람은 대부분 혼자서 독단적으로 전횡하며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방파를 결성해서, 사리사욕을 취하고, 세력이 방대해지면 한 지방을 독패한다. 대깡패의 영향을 받는 것은 한, 두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깡패는 기남패녀(欺男覇女), 살인월화(殺人越貨)를 저지른다. 소깡패는 그저 남다르게 보이면서 사회를 돌아다니고 사회에 미치는 위해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대깡패는 타인의 존엄에 해를 끼치고, 법률과 민주를 짓밟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무엇이 수퍼깡패(超級流氓)인가? 정치를 속이고, 법률을 속이고, 역사를 속이고, 백성을 속이면서 권력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당세와 후세의 인민들이 영원히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를 해치고, 법률을 해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수퍼깡패는 역사를 해친다.

 

세상에 물어본다. 소깡패, 대깡패 그리고 수퍼깡패를 한 몸에 가지고 노화순청(爐火純靑), 등봉조극(登峰造極), 영수청사(永垂靑史)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있다. 비록 그 수는 아주 적지만, 유사이래로 이런 깡패중의 뛰어난 깡패가 있어왔다. 최소한 한고조 유방은 바로 그런 깡패이다.

 

유방은 중국역사에 깡패주의를 만든 사람이다. 유방은 개국황제이고 국가지도자이므로, 유방의 깡패성은 간과되었다. 소위 깡패주의는 역사기록의 복잡한 인상을 깡패의 논리로 환원시켜, 불가일세의 제왕의 생생한 깡패근성을 드러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소깡패의 주색지도(酒色之徒)

 

여치(呂稚)를 유방에게 시집보내는데 여치의 모친은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방은 당시에 바로 깡패이고, 주색에 빠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주점에서 외상을 달고 그냥 먹고 마시면서 입으로는 미친 말을 내뱉으니 부랑자제였다. 다만 여치의 부친은 유방이 인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당시 유방은 이미 사십여세였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 당시 40살이면 할아버지가 될 만한 나이이다. 유방은 당시 한 유부녀와 몰래 사귀면서 사생아를 낳았다. 평민시기의 유방은 말 그대로 소깡패였다고 할 수 있다.

 

소깽패의 육친불인(六親不認)

 

제왕은 제왕이고, 위인은 위인이다. 그렇다고 깡패와 관계를 끊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소위 제왕과 위인은 깡패주의를 극치로 행하는 사람이다. 소깡패, 대깡패와 수퍼깡패의 결합체이다.

 

사람은 이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육친불인해서는 안된다. 유방의 부친이 항우에게 체포되었을 때, 항우는 기실 유방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질을 가지고 유방을 위협하고자 한다. 네가 빨리 투항하지 않으면 태공을 삶아서 먹어버리겠다. 그러나 유방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일찌기 강호에서 같이 놀던 형제이다. 나의 부친은 바로 너의 부친이다. 네가 반드시 너의 부친을 삶겠다면, 나에게도 고기탕을 한 그릇 나누어 달라." 

 

유비의 이 말은 정치모략이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육친불인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유방이 항우와 교전할 때, 여치와 유태공이 인질로 잡힌다. 유방이 패전하여 도망가면서, 마차에 자신의 친아들과 친딸이 있었다. 마차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자, 유방은 두 발로 이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아들과 딸을 차서 마차 밖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마부인 하후영이 차마 보질 못하고 아이들을 안아올렸다. 그러나 다시 한번 유방은 걷어차서 마차밖으로 떨어뜨린다. 하후영은 오누이 둘을 구한다. 두번이나 걷어차인 사내아이가 바로 한혜제이다. 유방은 하후영을 죽일 마음까지 품는다. 한 깡패제왕은 관건적인 순간에 친정, 감정, 의리를 모두 버릴 수 있다.

 

대깡패의 깡패구호

 

무릇 제왕이면 한우충동(汗雨充棟)의 노래하고 울만한 이야기들을 남기는 외에, 대부분 약간의 호기있는 구호를 천고에 남긴다. 유방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유방은 후세의 제왕과 비교했을 때, 자체학습의 동력이 결핍되어 있다. 평민때 학문을 익히고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사료에서 고증할 수 있는 바에 따르면, 유방은 지식인을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방에게 무슨 예술적인 세포가 없다는 점이다. 무슨 문화라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유방은 문예작품을 천고에 남겼다. 그것은 바로 <대풍가>이다.

 

만일 그당시의 역사를 잘 모른다면, <대풍가>의 가사를 보면 그저 유방의 영웅주의 기개가 산하를 덮을 만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만일 자세히 분석해보면, 기실 <대풍가>는 유방의 깡패구호이다.

 

<대풍가>는 아주 짧다. 대풍기혜운비양(大風起兮雲飛揚), 위가해내혜귀고향(威加海內兮歸故鄕), 안득맹사혜수사방(安得猛士兮守四方). 원래 이름은 <삼후지장(三侯之章)>이다. 유방이 원창자인지 유생에게 대필하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세마디 말을 지금 보면 괜찮은 문장처럼 보이지만, 기실 한나라때 이 세마디 말은 완전한 구어이다. <대풍가>는 바로 유방이 창작한 한나라때의 록큰롤이라고 할 만하다. <대퐁가.는 거칠고 무슨 문채(文采)랄 것이 없다. 문헉시기의 구호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붓을 칼이나 창처럼 들고, 화력을 집중하여 흑방(깡패조직)을 치자. 문화혁명은 모두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혁명의 길에 선봉장이 되자" 민간에서 전하며 부르기에 적합하다.

 

유방이 이 노래를 창작할 때는 이미 천하를 평정한 뒤이다. 황제가 되었다. 영포의 반란을 격패하고 부대를 이끌고 성으로 돌아갈 때이다. 자신의 고향인 패현을 지나가면서 사람을 불러 술을 마시고, 마시다가 얼굴과 목이 발개질 때 축(筑)을 치면서 <대풍가>를 부른다. 그리고 120명의 아이들에게 노래를 배우게 한다. 유방의 사후, 패현은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 이 노래를 불렀다. 한혜제, 한문제, 한경제의 3대에는 고치지 않는다. <대풍가>가 전해진 것은 선제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유방의 정치적 구호를 부르는 것이었다.

 

유방이 영포의 모반을 평정한 것은 내전이다. 당시 전쟁은 막 평정되었다. 백성들은 여전히 휴양생식했으며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유방이 항우를 친 것과 유방이 영포를 친 것은 다르다. 영포의 모반을 평정한 것은 내전이다. 장병들은 전쟁에 번잡했고, 일찌감치 피로해 있었다. 그런데, 충분히 쉬기도 전에 다시 전쟁의 불길이 번진다. 유방은 실제로 내전에 지친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고자 했다. 그들이 칼과 창을 들고 혁명대오의 반도를 정리해주기를 격려한 것이다.

 

<대풍가>는 유방의 깡패구호일 뿐이다.

 

대깡패의 거친 언어

 

유방은 무슨 군자가 아니다. 수하를 대할 때 입을 열면 욕이었고, 손을 들면 때렸다. 당시 위표(魏豹)가 유방을 배반한다. 누군가 위표에게 권한다. 그에게 유방과 얘기를 해보라고. 그러나 위표는 거절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유방은 수하들을 오만하고 무례하게 대한다. 입만 열면 욕이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소하는 일찌기 도망친 한신을 쫓아가서 데려온 바 있다. 그리고 유방에게 말한다. 부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 마라고. 이것이 바로 한신이 도망친 주요원인이었다. 이를 보면 유방은 말을 할 때 온통 욕이었고, 깡패기질이 뚜렷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바로 이런 깡패가 어찌 항우를 이길 수 있었을까? 일찌기 항우의 수하로 일했던 한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항우는 수하들에게 인자하게 대하고, 언어도 온화하고, 사람들에게 자애롭게 대하고, 누군가 병이 들면 항우는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공신을 분봉할 때, 항우는 아주 인색했다. 이 점에서 유방은 통이 컸다. 부하인 형제들을 왕과 후에 봉한다. 그래서 형제들은 참고 견디고 기회를 기다린다. 왕후에 분봉될 때까지. 유방이 정말 큰형님같은 강호기질을 지녔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사람들과 같이 형제가 되어 몇번 때리고, 몇마디 욕을 하지만 그들을 아끼는 것이다. 이것이 깡패논리이다. 이런 사람은 거칠게 욕하거나 마구 때릴 때 항상 이유는 일때문이다. 국가를 위하거나, 민족이익을 위해서이다. 바꾸어 말하면, 깡패가 제왕이 되면, 모든 깡패행위는 정확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고, 그의 행동거지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한번은 유방이 궁내에서 척희를 안고 놀고 있었다. 유방의 수하중 주창이 와서 그에게 업무보고를 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는 아주 난감해 하여 주창은 몸을 돌려 도망친다. 다만 유방은 주창을 붙잡고 주창의 목에 걸터 앉았다. 비록 유방은 임금이고, 주창은 신하이지만, 이렇게 군왕이 신하의 목에 올라타는 놀이는 이전이나 이후에도 아주 드물다. 다행히 주창은 유방의 깡패근성을 잘 알았다. 유방이 그에게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직설적이고 솔직하기로 유명한 주창은 바로 말한다. 유방은 걸(桀

)이나 주(紂)와 같다고. 그러나 유방은 화를 내지 않고 주창을 풀어준다. 

 

비록 이 기이한 놀이는 비극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황제가 된 유방은 여전히 말그대로 대깡패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깡패의 문인모욕

 

유방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만이다. 그러나 유방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유아독존한다. 그래서 독서인을 극단적으로 차별했다. 그래서 학문이 있는 지식인들이 유방과 함께 어울리면 특이한 모욕을 당하게 마련이다. 유방은 유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유생의 모자를 오줌통삼아서 오줌을 누곤 했다. 사고가 정상인 사람이라면 모두 큰 치욕이라 여겼을 것이다.

 

역이기는 나이 60에 가까워서 유방에 투신한다. 당시 유방은 아직 황제가 되지 못했다. 역이기는 선진 유사의 변술을 가지고 있었다. 유방의 군영에 갔을 때, 문위(門衛)가 유방에게 말한다. 유생모양이 사람이 와서 만나기를 청한다고. 유방이 말했다. 그는 현재 국가대사를 생각하고 있으니 독서인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역이기는 대노한다. 자신은 술꾼이라고 말한다. 유방은 그제서야 역이기를 만나준다. 이는 유방이 술꾼과는 얘기할 지언정 독서인과는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번은 유방이 두 딸에게 그의 발을 씻게 한다. 자신은 침대에 앉아서 역이기를 맞이한다. 비록 유방이 나중에 역이기의 계모를 듣기는 하였지만, 유방은 뼛속부터 독서인을 멸시했고,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문인은 모욕했다.

 

한나라때 대유학자 숙손통도 화를 피하지 못한다. 숙손통은 원래 진나라때 박사이다. 항우와도 같이 있은 적이 있다. 나중에 유방에 투신한다. 처음에 숙손통은 유방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방이 영웅기개가 있다고 여기고 자잘한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독서인으로서, 숙손통은 체면을 중시했고 자주 유생의복을 입었다. 다만 유방은 그를 아주 싫어한다. 방법이 없었다. 숙손통은 짧은 옷으로 바꿔 입는다. 그제서야 유방은 아주 기뻐한다. 큰형과 같이 어울리려면 큰형님의 기호와 흥미를 맞춰주어야 한다. 그래야 심복이 될 수 있다. 유방깡패는 수하에 깡패기질을 지닌 자들이 많았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으면 같이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어울리더라도 심복이 될 수가 없었다.

 

수퍼깡패의 형제진압

 

현존하는 사료를 보면, 유방은 음모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원시원하게 처리하고, 말이나 행동이 마음대로였다. 희노가 얼굴에 드러났다. 대체로 그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유방은 형제를 속이고 군중을 속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정치는 수퍼염색통이다. 도덕에 맞는 행위규범은 수퍼정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일 유방이 정치를 잘 하지 못했다면, 그는 황제의 보좌에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유방이 수퍼깡패가 아니라면, 아마도 유씨의 한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한나라이전의 제왕은 정치를 할 때 유방처럼 잘 요리하지 못했다. 주무왕이 천하를 평정할 때, 제후를 분봉했고, 강산을 독패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중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주무왕의 교훈을 받아들여, 제후분봉을 거절한다. 자신의 아들들도 제후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진왕조는 개국공신이 정권에 위협이 되는 일이 없었다. 유방은 평민출신으로 성공을 거둔다. 곁에 있는 대장들은 대부분 유방을 따라다닌 풀뿌리하층민중이다. 유방은 이들의 큰형님이다. 통이 크게 생사를 같이 한 수하인 형제들을 왕후로 분봉해준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에도 계속하여 황위를 호시탐탐 노리는 가상적들이 있었다. 그래서, 유방은 정치를 잘해야 할 뿐아니라, 반드시 이겨야 했다.

 

유방은 후세에 개국황제의 스승이 된다. 필자는 조광윤의 배주석병권, 주원장의 화소경공루의 방식이 모두 유방을 본뜬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방은 일찌기 같이 싸웠던 형제이지만 지금 병권을 장악한 제후들을 반혁명의 명의로 하나하나 제거한다.

 

정치를 하는데 유방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유방이 가장 성공한 것은 사람을 쓰는 것이다. 유방은 일찌기 말한 바 있다. 운주유악 결승천리는 장량만 못하고, 백성을 다독거리고, 나라를 지키고, 양식을 운송하는데는 소하만 못하고, 백만대군을 통솔하고, 전투에서 필승을 거두는 것은 한신만 못하다고

 

이것은 유방이 막 황제가 되었을 때 한 말이다. 그 이후에는?

 

유방이 정공(丁公)이라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정공은 항우의 수하인 대장이었다. 당시 군대를 이끌고 팽성의 서쪽에서 유방을 추격했다. 양군이 접전을 벌일 때 유방은 정공을 이길 수가 없었다. 유방이 정공에게 말한다: "사나이들끼리 어찌 서로 해치겠는가?" 당시 정공은 유방을 풀어준다. 그래서 유방은 도망칠 수 있었다. 항우가 멸망된 후, 정공은 유방을 배알한다. 정공은 아주 유치했다. 그가 유방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일찌기 유방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방이 그에게 상을 내리고 관직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정공이 이런 꿈을 꾸고 있을 때, 유방은 정공을 죽여서 사람들에게 보인다. 그리고 장병들에게 말한다: "정공은 항우의 신하로서 불충했따. 항왕이 천하를 잃게 된 것은 정공때문이다. 후대에 신하가 되는 사람들은 정공을 본받지 말라." 이것이 바로 승리전과 승리후의 두 얼굴이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목숨을 아끼지 않을 형제들이 필요했다. 황제가 된 후에는 망명객은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것은 충실한 신하이다. 형제들에게 앞으로는 배반하지 말라고 말한다. 만일 변절하면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유방은 말 그대로 정계의 수퍼깡패이다.

 

유방이 수퍼깡패가 되어 형제를 진압하도록 결정한 것은 유방이 황제에 오른 5년째 되는 해이다. 당시 형제들이 같이 술을 먹고는 공을 다투었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하여, 크게 소리쳤다. 무기를 들고 연습하며 마구 베었다. 천하는 형제들이 싸워서 얻었는데, 황제는 한 사람이다.

 

유방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은 당연히 소하이다. 다만 소하도 의심을 받는다. 소하는 자기 집의 가산을 모조리 군비로 바치고 나서야 유방이 기버한다. 유방이 외부로 나가 반란을 평정할 때, 여러번 사람을 보내어 소하는 무얼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분명히 유방은 자신이 전선에 있으므로 뒷마당에 불이나는 것을 겁내는 것이다. 소하는 자신이 멸족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토지를 많이 사고, 다시 임대해준다. 이를 통하여 자신의 명성을 스스로 더럽힌다. 그렇게 하여 유방이 안심하도록 만든다. 나 소하는 그저 돈이나 재물만 탐한다. 황위에는 흥미가 없다.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소하는 운이 좋았다. 명철보신으로 소하는 위기를 넘긴다.

 

유방이 황제가 된 6년째 되는 해, 처음으로 손을 쓴다. 상대는 바로 중병을 장악하고 있는 초왕 한신이다. 한신이 살아있으면 유방이 편안히 잠들 수 없다. 모반죄는 천고이래로 계속 쓰이던 정치음모이다. 당연히, 유방은 잘 알았다. 한신은 모반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신을 없애는 것은 어려웠다. 한신은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했으므로 군중기반이 있다. 유방은 운유(雲遊)의 명목으로 제후들을 만난다. 한신이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유방은 한신을 밧줄로 꽁꽁 묶는다. 한신이 붙잡혔을 때 이렇게 말한다: 비조진(飛鳥盡), 양궁장(良弓藏), 교토사(狡兎死), 주구팽(走狗烹). 이 명언을 한신이 만든 것은 아니다. 원창자는 범려이다. 당시 범려는 월왕 구천에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마치고 범려는 정계를 은퇴한다. 한신의 초왕은 면직되고, 회음후로 강등된다. 한신은 원래 모반을 하지 않았으므로, 모반은 유방이 한신의 병권을 빼앗기 위하여 가져가 붙인 것에 불과했다. 한신이 병권을 잃은 후, 우울하게 지낸다. 유방이 시시때때로 자신을 방비한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죽을 날도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한신이 정말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이것은 유방이 그를 핍박하여 반란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거사를 하기 전에 소하의 계책에 걸려 황궁으로 들어가서 피살당한다.

 

한신이 주살된 후, 회남왕 영포가 불안해 한다. 영포는 공로가 높은 대장이고, 일찌기 항우와 함께 있었다가 나중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그는 일찌기 20만 진군을 산채로 매장하기도 했고,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이 있었다. 이때, 영포는 모반할 생각이 없었다. 영포는 애첩이 다른 사람과 간통한 것을 의심하였으므로, 누군가 유방에게 영포가 모반한다고 고발한다. 소하는 영포의 모반을 믿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어 조사를 한다. 영포는 이미 자신이 유방의 사망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거병하여 반항한다. 나중에 유방에게 패배하고 영포는 피살된다.

 

진희(陳)는 병력이 많았다. 밖에서 독립적으로 병력을 장악한지 여러 해가 되었다. 유비는 사람에게 명하여 진희의 빈객이 재물등 방면에서 법률이나 기율을 어긴 바 있는지 조사하게 한다. 그중 적지 않은 사정은 진희와 연결되어 있었다. 진희는 아주 두려웠다. 황제가 사람을 보내어 진희에게 입경하라고 한다. 그러나 진희는 병이 심하다고 말하며 가지 않는다. 나중에 그는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 대왕(代王)이 된다. 결국 번쾌에게 피살당한다.

 

팽월은 물고기잡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었다. 나중에 유방과 어울린다. 그도 대장이다. 유방은 병력을 이끌고 진희를 소탕한다. 팽월에게 출병하라고 하는데, 팽월과 진희는 옛날에 같이 전투했던 전우이다. 서로 죽고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병을 핑계로 가지 않는다. 그저 부장만 보낸다. 유방은 화가 났다. 그때의 팽월은 모반할 생각도 없었고 모반의 흔적도 없었다. 유방은 기회를 잡아 중병을 가진 팽월을 제거하고자 한다. 팽월의 수하들이 유방에게 고발을 했다. 팽월이 모반하려 한다고. 고발한 사람은 바로 팽월에게 모반을 권했으나, 팽월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유방을 찾은 것이다. 유방은 아무렇게나 죄명을 붙여서 팽월이 모반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평민으로 강등시킨다. 팽월이 이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여후는 팽월의 가신을 부추겨서 팽월이 모반했다고 고발하게 하였었다. 그 결과 팽월의 삼족은 주살되고, 팽월은 살을 발라 육장(肉醬)을 만들어 제후들에게 나눠주며 먹게 했다.

 

일찌기 생사를 같이 했고 강산을 차지하는데 도와주었던 형제들이 이 때는 모조리 조용해졌다. 사람들마다 위기를 느낀다. 연왕 노관은 유방과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고 허물이 없었다. 유방이 황제에 오르자, 노관은 유방과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었다. 노관은 죽어도 유방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유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방은 노관이 진희와 내왕이 있었다고 의심하여 심복을 보내어 연왕 노관을 조사한다. 어쨌든  강산은 이미 얻었다. 정치를 잘 아는 노관은 확실히 알았다. 그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유방이 노관을 모반죄로 규정하였을 때도 노관은 아직 반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이 없었다. 번쾌가 병력을 이끌고 노관을 칠 때, 노관은 병력을 이끌고 응전한 것이 아니라, 수천명을 데리고 궁중으로 가서 죄를 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유방은 이때 사망한다. 노관은 나중에 흉노로 도망치고, 타향에서 죽는다. 노관은 유방의 다른 몇 형제, 한신, 영포, 팽월과 마찬가지로, 모반의 죄명을 뒤집어쓰고 강등, 주살 및 몇족당한다.

 

노관은 일찌기 아주 중요한 말을 한 바 있다. "한신과 팽월은 모두 멸족되었다. 유씨가 아니면서 왕에 봉해진 사람은 나와 장사왕(長沙王) 뿐이다." 이 말은 그의 내심에서 나온 말이다. 유방이라는 수퍼깡패가 가상적을 제거하는 원인을 말해준다. 유방은 확실히 그렇게 했다. 먼저 예전 항우의 부하였던 사람부터 처리한다. 예를 들어 항우와 영포이다. 그 후에 하나하나 유씨가족이 아니면서 왕에 봉해진 장군들을 처리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개국공신중 몇 명이나 선종했는가? 반혁명죄는 가장 두드러진 정치적 이유이다. 백성을 속이고, 역사를 속인다. 이렇게 정치를 하는 사람은 수퍼깡패라 아니할 수 없다. 유방은 반혁명죄로 형제를 없애고 공신은 자연히 위기를 느끼게 된다. 전체 국가에 혈우성풍이 몰아친다. 유방에 있어서 이것은 깡패의 정치기술이다. 진상을 모르는 풀뿌리 인민들에 있어서 이는 큰 정치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