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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53

"충의군(忠義軍)"의 진상 글: 최애역사(最愛歷史) 명나라때의 희곡가 탕현조(湯顯祖)의 대표작 는 판타지애정물의 거작이다: 두려낭(杜麗娘)이 꿈속에서 서생 유몽매(柳夢梅)와 서로 사랑에 빠졌다가, 죽게 된다. 그후 한줄기 혼백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사랑하다가 결국 기사회생하여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탕현조는 판타지와 애정이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많은 역사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는 두려낭의 이야기를 송금전쟁(宋金戰爭)이라는 배경하에 두고, 다시 강도부부를 출연시킨다: 이전(李全)과 양낭낭(楊娘娘). 극에서 금나라황제 완안량(完顔亮)이 군대를 몰고 남으로 쳐내려와 남송을 삼킬 준비를 한다. 산동(山東) 회해(淮海)일대에서 활약하던 이전 부부는 장두초(墻頭草, 담장위의 풀과 같이 이리.. 2023. 8. 3.
원나라때 이슬람과의 천문학 교류와 접촉 글: 강효원(江曉原) 징기스칸이 남정북전(南征北戰)하면서,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뒤에는 중국을 차지한 원(元)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칸국이 병립하고 있었다. 원나라는 명목상 종주국이고, 각국간의 문화와 교류가 아주 활발했다. 이 시기의 중국천문학과 이슬람천문학간의 접촉에 관하여 국내외의 학자들이 모두 기술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이런 접촉이 존재한 것은 확실하지만, 적지 않은 구체적인 이슈는 아직 명확한 단서나 결론이 없다. 본문에서는 대체로 연대순서에 따라, 비교적 중요한 6가지 이슈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 시기의 중국과 이슬람천문학간의 교류와 접촉에 대하여 더욱 전면적이고 분명한 인식을 얻고자 한다. 1. 야율초재(耶律楚.. 2023. 6. 18.
중국은 세계관을 바꿀 수 있었던 4번의 역사적 기회를 모두 놓쳤다. 글: 갈조광(葛兆光)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복단대학의 교수 갈조광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얘기할 주제는 고대의 중국인들은 어떻게 세계를 인식했는지, 이런 세계인식의 관념과 방법이 역사상 바뀌어질 기회는 없었는지, 이런 관념과 방법은 오늘날의 중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해보면, 고대에 특히 선진(先秦, 진시황의 천하통일이전)시대에 이미 고대중국인들은 중국을 인식하는 약간의 특색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고대 중국인의 상상 속에서 천하는 구주(九州)와 그 주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주는 소위 기주(冀州), 연주(兖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이다. 대체로 현재 중국의 핵심지역혹은 주로 한족인 중국인.. 2023. 2. 3.
원세조 쿠빌라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한 원나라 글: 황보용(皇甫容) 원나라는 원세조 쿠빌라이가 창건했고,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강역이 유라시아에 걸쳤던 왕조이다. 쿠빌라이는 일찌기 몽케칸의 명을 받아, 막남(漠南)의 한지(漢地)를 관할했다. 그때 사건담당관리인 아로와적(牙魯瓦赤)과 부지아(不只兒)등은 밀린 세금을 납부하도록 추궁하다가 하루에 28명을 죽인 적이 있다. 쿠빌라이는 이들을 질책하며 이렇게 말한다: "무릇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반드시 상세하게 조사한 후에 비로소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지금 하루에 28명이나 죽였으니 분명히 무고하게 죽은 자가 있을 것이다. 장형에 처해도 될 경우에 참살을 한다면 그게 무슨 형법인가?" 당시 부지아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1260년,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를 승계하고 형법을 개혁한.. 2022. 1. 10.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없다. 글: 살사(薩沙) 대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도대체 중국에 왔던 것일까? 1298년 9월 7일 마르코폴로는 감옥에 갇히고, 루스티첼로와 합작으로 를 쓴다. 마르코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있을까? 쿠빌라이를 만난 적이 있을까? 지금 보면,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와서 쿠빌라이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없다.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나라때의 모든 역사기록에서 마르코폴로를 찾아볼 수 없다. 몽골인들이 원나라를 건립한 후에는 더 이상 유목민족이 아니고, 계통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그가 여러번 원나라의 대칸 쿠빌라이를 배알했다고 적었다. 1275년 여름, 23살의 마르코폴로는 처음 쿠빌라이를 만났고, 동행한 사람은 그의 부친과 숙부였다. 마르코폴로의 기술에 따르면, 대칸은 젊고 .. 2021. 10. 8.
포수경(蒲壽庚): 송원교체기의 아랍계 부호 글: 하신(何新) 중국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각종 원인으로(주로 사신(史臣)이 무지하거나, 혹은 유가적인 이데올로기로 편견을 가져서), 정사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역사의 그림자 속에 매몰되어 버렸다. 남송말, 원초에 한 아랍계통의 상인이 있었다(아마도 유태인일 수도 있다. 당시 유태인과 아랍인을 중국인들은 혼동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포수경이다. 포수경(1205-1290). 일명 포수경(蒲受畊), 호는 해운(海雲)이다. 출신은 불명인데, 고조우(顧祖禹)에 따르면 그의 부자는 서역에서 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의 선조가 점성(占城, 지금의 월남)의 서역 아랍인의 후예라고 한다. 남송시기, 육상비단길은 이미 막혔고, 중국과 아랍의 교역은 해운을 위주로 .. 2020.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