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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44

이연영(李連英)의 진면모: 만들어진 매국노 글: 천진망 중국역사상 가장 유명한 태감은 아마도 이연영(李連英)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李蓮英"이라고 적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연영이 태후와 공친왕의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여, 정변을 성공시키는데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후, 그는 궁중에서 아주 신속히 .. 2014. 4. 6.
일본역대 수상중 12명은 청일전쟁에 참전하였다 글: 장풍(蔣豊) 전쟁은 역사를 바꾼다. 전쟁은 운명을 바꾼다. 전쟁은 국가의 명의로 진행하는 살인이다. 120여년전의 그 청일전쟁은 중국일본 양국의 국력과 지위에서 역전이 발생했을 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운명도 바뀌어 버렸다. 이 청일전쟁은 일본의 여러 수상을 만들어 낸다. 그.. 2014. 4. 4.
역사법칙: 일본의 변신은 항상 중국과 부닥친다. 글: 정만군(程萬軍) 일본수상 아베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후, 다시 일본의 심장 신도의 성지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참배했다. 그는 이번 신년담화에서 상징적으로 중국한국에 '선의'를 얘기했을 뿐, 바로 헌법개정의 결심을 드러낸다. 이와 거의 동시에 내각에서는 "비군(備軍)" 대계.. 2014. 1. 15.
9.18사변에서 누구를 가장 질책해야 하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2013년 9월 18일은 "9.18사변" 82주년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9.18사변"은 "7.7사변"보다 더욱 큰 치욕이라고 생각해 왔다. 비록 전자로 잃은 영토가 후자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군대와 그 지도자들의 행동은 적국으로 하여금 완전히 무시하게 만들었기 대문이다. 이 사변에 .. 2013. 11. 11.
송교인: 중국근대헌정의 최후희망 글: 장천범(張千帆) 나는 개인적으로 미신이 있다. 항상 13이라는 숫자는 불길하다고 믿는다. 백년전의 그 13(1913년)에 과연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3월 20일 저녁, 상해 기차역에서, 한 발의 총탄이 청넌정치가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죽은 사람은 나이 겨우 32살이었다. 이것은 보통.. 2013. 11. 10.
왕정위(汪精衛)는 매국노인가? 글: 양각목염자(楊康穆念慈) 어떤 사람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인구, 자원, 공업생산능력에서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미국에 전쟁을 건 것은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짓이라고 본다. 그런, 그런 생각은 일면적이고, '사후제갈량'이다. 전쟁의 승리는 단순히 '물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013. 6. 10.
오키나와: 중국과 일본간의 이슈로 될 것인가? 글: 장풍 "오키나와가 일본영토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아무런 쟁점이 없는 사실이다. 만일 중국에 그런 말이 나왔다면 확실히 식견이 부족한 견해다." 일본의 내각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가 2013년 5월 8일 동경에서 한 이 말은 중국매체에 나온 '오키나와문제 재심의'.. 2013. 5. 18.
"일본귀자(日本鬼子)" 용어의 유래 글: 이자지(李子遲) "일본귀자"라는 말은 1930,40년대 중국인민들이 항일전쟁기간중에 일본침략자를 지칭한 말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귀자"는 중국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멸칭(蔑稱)이 되었다. 어떤 때는 "일본귀자"를 줄여서 "귀자(鬼子)"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귀자래료(.. 2013. 4. 27.
근대중일교섭: 시기, 교훈 및 보완 글: 마용(馬勇) 중일관계는 당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국관계이다. 더구나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양국관계이다. 중일협력, 아주단결, 안정은 바로 세계의 안정이다. 중일충돌, 아주혼란은 바로 세계의 불안정이다. 이는 과거 근 이백년역사가 이미 증명한 사실이다. 상호불신의 연유 만.. 2013. 4. 16.
일본학자: "청나라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글: 정만군(程萬軍) 청일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근대대부'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渝吉)는 '문명'의 각도에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중국의 문명정도는 일본에 미치지 못하다. 그러므로 전투에서 일본을 이길 수 없다." 왜 중국의 문명이 일본만 못하다고 .. 2012.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