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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44

광서제의 비극: 동년, 사업 그리고 애정 글: 풍현일(馮玄一) 광서제는 청나라의 제11대황제이다. 그의 이름은 애신각라 재첨(載㵇)인데, '첨'자는 물리 조용히 흐르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의 성격과는 아주 잘 들어맞는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화상(畵像)을 보면, 그는 문약하고 청수(淸秀)한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준수한 얼굴 .. 2020. 1. 16.
과거제 폐지의 과정 글: 맹헌실(孟憲實) 팔고문(八股文)을 폐지하는 것은 과거제도의 고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특과(經濟特科)의 설립은 고시제도의 새 방향을 대표한다. 엄수(嚴修, 1860-1929), 천진사람이며 광서9년 진사이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생한 후, 귀주성학정(貴州省學政)에 임명된다. 현.. 2019. 5. 24.
북양수군의 패망: 이홍장(李鴻章)과 옹동화(翁同龢), 누가 원흉인가? 글: 백가잡평(百家雜評) 중국최초의 근대화 해군함대로서, 북양수군은 이 오래된 제국의 무수한 희망을 안고 있었다. 자료를 보면, 북양수군은 주로 전함이 크고 작은 25척이 있었고, 보조군함이 50척 있었으며, 운수선이 30척, 관병이 4천여명 있었다. 당시 세계9위, 동아시아1위의 수준이.. 2019. 5. 12.
영년(英年): 서태후가 총애한 풍수가 글: 포강객(浦江客) 광서24년(1898) 팔월 초엿새, 서태후는 정변을 일으켜, 변법을 시행하는 광서제는 영대(瀛臺)에 연금하고, 훈정(訓政)이라는 명목으로 최고권력을 다시 장악한다. 기실 1년전에, 대권을 놓칠까 우려하던 서태후는 이미 광서에제게 손을 쓴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칠왕분(七.. 2019. 1. 20.
청일전쟁 직전에 청과 일본은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1894년 봄여름이 교차하는 시기에,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전인데, 대청국에서는 한 목소리로 '싸우자'고 외치고 있었다. 다만, 청정부는 제대로된 정보가 없었다. 그들은 일본의 군사력이 어떤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인식에서 혼란이 있을 정도였다. 전쟁전에 중국내.. 2018. 12. 5.
현양사(玄洋社): 일본의 간첩조직 글: 융성전우(戎星戰友) 열본역사를 잘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1860년대이래 일본은 외국 각 분야의 정보수집을 계속 중시해왔다. 이런 정보의식으로 일본인은 시시때때로 어디에서든지 정보를 포착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는 '전민정보국가(全民情報國家)'라는 칭호가 있었다. .. 201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