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독수25 진독수(陳獨秀)는 왜 모스크바의 초청을 5번이나 거절했을까? 글: 왕우군(王友群) 중국공산당과 모스크바의 연원은 10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당시의 러시아공산당(이후 소련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꿈)이 장악하고 있던 코민테른(공산국제)은 러시아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대표를 상해로 파견하여 반드시 러시아공산당의 지시를 듣는 중국공산당을 성립시키고자 한다. 진독수는 중공의 초대 당수(黨魁)로 1921년 중공1대부터 1927년 중공5대까지, 진독수가 중공의 당수를 맡았다. 1927년에 이르러, 코민테른의 극동지부로서 중국공산당이 이끈 '대혁명'이 실패로 끝난다. 중공당수 진독수는 일거에 중시지적(衆矢之的)이 된다.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코민테른은 거듭하여 진독수에게 모스크바로 올 것을 요구하였지만, 진독수는 모두 거절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 2023. 4. 21. 홍콩 "토공(土共)"의 "탈민(脫敏)"문제 글: 고림풍(古林風) 2021년, 베이징의 관영매체는 중국공산당기구의 홍콩에서의 "탈민"에 관한 글을 실은 바 있다. "탈민"이라는 것은 홍콩의 중국공산당 당조직이 신분을 공개하는 문제를 가리킨다. 홍콩의 중국공산당 조직은 창당당시부터 존재했다. 진독수(陳獨秀)가 1920년 홍콩으로 가서, 당시 마르크스주의에 흥미를 가진 청년들을 만난다. 1921년 창당이후, 공산당에서는 홍콩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에는 홍콩에 당지부(黨支部)가 결성된다. 그후 이름을 여러 차례 바꾸었지만, 홍콩마카오의 공산당조직은 지금까지도 계속하여 존속해오고 있다. 토공(土共)은 홍콩에 시위(市委)를 성립한 후, 광주시당위와 광동성당위도 일찌기 홍콩으로 옮겨온 적도 있다. 홍콩인들은 일찌감치 공산당조직이 존.. 2023. 4. 13. 진독수(陳獨秀) vs 모택동(毛澤東): 중국공산당의 초기지도자 글: 오성수행(悟性隨行) 중국공산당 최초의 지도자는 진독수이다. 진독수의 특징은 학술사상분야에서 독립구신(獨立求新), 자신불기(自信不羈), 시야서리(視野犀利), 격정양일(激情洋溢)하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좋아하고, 또한 잘 말할 수 있었다. 이런 특징은 현대교육에 종사하거나 방향성과 기치성을 확립하는 인물로서는 더 이상 적합할 수 없다. 그래서 진독수가 중국공산당의 초대 지도자가 된 것은 아주 적합하다. 민주와 과학 덕선생(德先生, Democracy를 말함)과 새선생(賽先生, Science를 말함). 중국의 신문화운동은 모두 진독수가 극력 추진하여 중국의 넓은 대지 위에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스며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그의 한계성이다. 그는 멀리 보고 깊이 보지만, 현실은 도외시했다. 192.. 2023. 2. 1. 장국도(張國燾)의 홍콩세월 글: 조대부화실(趙大夫話室) 장국도의 중국역사상 지위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그는 여전히 많은 밀리터리덕후와 역사애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인물이다. 그의 시비공과에 대하여는 후인들의 평가가 아마 더욱 적합할 것이다. 몇가지 점은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1. 장국도는 북경대학 학생으로서, 북경학생연합회 강연부장과 북경학생연합회 총간사를 맡았다. 그는 "5.4"운동의 가장 중요한 학생지도자중 한명이다. 2. 장국도는 중국공산당의 주요창시자중 한명이다. 100년전 가흥남호(嘉興南湖)의 작은 배 위에서 강서(江西) 평향(萍鄕) 상률(上栗) 방언을 하는 그는 "제1차대표대회의 폐막선언"을 했다. 3. 장국도는 "8.1" 남창의거의 주요발기인중 한명이고 홍군(紅軍)의.. 2023. 1. 25. 중국공산당 비서의 최후: 딩쉐샹(丁薛祥)자살 소문을 듣고.... 글: 조대부화실(趙大夫話室) 인터넷에 올라온 소식에 따르면, "Gancheng Wang"이라는 트위트계정에 오늘 올린 글에 붙인 스크린샷에는 "베이징의 동창이 보낸 소식에 따르면, 정치국상위, 중앙판공실주임 딩모(丁某)가 자살했다고 한다. 마치 장공(蔣公, 장개석)이 하야하기 전의 진포뢰(陳布雷)나 문혁이 일어날 때의 전가영(田家英)이 자살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 소식은 근거가 불명확하여 초보적으로는 그저 스크린샷을 통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오자도 있어서 진실성은 추가로 확인해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련 이슈가 트위터에서 논의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것이 가짜뉴스라고 말하고 있다. 네티즌 yjpc007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6.4사건을 .. 2023. 1. 17. "명청시대폐관쇄국문제신탐": 폐관쇄국 개념의 기원과 변천 2. "폐관쇄국" 개념의 기원과 변천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문헌에서 '폐관쇄국'에 대한 기술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중국전통의 역사개념이 아니다. 17-19세기 서방인은 중국을 묘사할 때 '폐관쇄국'과 대응하는 말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서방의 주변에 있다는 지리적위치로 인하여 서방인들은 자주 중국이 일종의 세계와 '단절된(isolation)' '고립된(seclusion)' '외부영향을 받지 않는(hermetic)' 상태로 인식했다. 여기의 '단절'과 '고립'은 왕왕 '폐관자수(閉關自守)' 혹은 '폐관쇄국'으로 번역되었다. 확실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 개념은 서방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폐관쇄국"이라는 개념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것의 의미는 또 무.. 2022. 9. 8.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