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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후10

영락제의 차남 주고후(朱高煦)의 죽음 (2) 영락22년(1424년) 음력팔월, 주고치가 즉위한다. 그해 십월, 조정은 주고후의 적자인 주첨탄(朱瞻坦)을 한왕세자로 봉한다. 동시에 주고후의 다른 아들들도 왕(王)에 봉한다: 주첨자(朱瞻垐)를 제양왕(濟陽王)에 주첨역(朱瞻域)을 임치왕(臨淄王)에 주첨성(朱瞻垶)을 창락왕(昌樂王)에 주첨.. 2018. 11. 19.
영락제의 차남 주고후(朱高煦)의 죽음 (1) 글: 사우춘(史遇春) 명태조 주원장이 대명왕조를 건립한 후, 송, 원의 '주약신강(主弱臣强)'의 폐단을 없애고자, 홍무3년(1370년)부터 여러 황자를 분봉하여 왕으로 삼아 번병조정(藩屛朝廷)하게 한다. 홍무9년(1376년)에 이르러, 조정은 직언을 구하는 조서를 내리고, 당시 평요유학훈도(平遙.. 2018. 11. 19.
제2차 "정난지역(靖難之役)"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주체(朱棣)의 정난지역이 성공하여 영락제에 오르자, 그의 차남 주고후(朱高煦)는 계속하여 야심을 가지고 형인 주고치(朱高熾)와 태자 자리를 다투었다. 그러다가 주체에 의하여 산동 낙안(樂安)의 번왕으로 쫓겨난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황.. 2018. 7. 19.
주첨기(朱瞻基)의 난제: 숙부 주고수(朱高燧)를 어떻게 할 것인가? 글: 두문자(杜文子) 주고수는 명성조 영락제 주체의 셋째아들이다. 주고치(朱高熾)의 동생이고, 주첨기의 셋째숙부이다. 황위와 인연이 없었던 그는 그러나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간이 작아서, 혼자서 무엇을 하지는 못하고, 항상 둘째형인 주고후(朱高煦)와 힘을 합쳐서 태자 주고.. 2018. 7. 12.
주체(朱棣)와 주고후(朱高煦): 닮은꼴 부자의 서로 다른 운명 글: 두문자(杜文子) 주고치(朱高熾)는 주체의 적장자(嫡長子)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 무예에는 능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주체의 마음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후계자는 아니었다. 반대로, 주체는 정난지역때 많은 공을 세우고, 여러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차남 주고후를 높이 평가하고.. 2018. 7. 11.
정난지역(靖難之役)의 승리는 주체(朱棣)의 두 아들 공로가 아주 컸다. 글: 두문자(杜文子) 정난지역에서 승리하는데에는 주체의 두 아들이 큰 공헌을 했다. 주체가 "정난지역"을 일으켜 건문제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미 사십여세의 나이였다. 이 나이라면 강산을 지키거나 시찰하는 것은 몰라도, 대명제국의 최고권력을 차지하려면 무수한 전투를 치르면.. 2018. 7. 7.
[황자쟁위술] 애옥급조술(愛屋及鳥術) - 교타황손패(巧打皇孫牌) "적자사(嫡子死), 입적손(立嫡孫)". 적장자승계원칙이 유지되던 중국고대에 적자가 죽으면 적손을 세우는 것이 봉건예제의 원칙중 하나였다. 상(商)왕조때 태갑(太甲)이 태정(太丁)의 아들이며 탕왕(湯王)의 적손으로 왕위를 승계한 것이 그 효시이다. 다만, 중국 고대역사상 황태손(皇太.. 2015. 7. 27.
황위계승전: 주고치(朱高熾) vs. 주고후(朱高煦) 글: 두문자(杜文子) 누가 황위를 계승하느냐는 문제는 영락제 주체(朱棣)에게 처음부터 골치거리였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큰아들 주고치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아들 주고후이다. 이치대로라면 장유유서의 관념이 강했던 고대에 큰아들이 원래 합법적인 법정승계.. 2014. 8. 27.
영락제의 후계경쟁에 관하여 글: 풍청등(楓晴橙) 명나라때, 엄격하게 적장자계승제를 집행하였으므로, 황위쟁탈전은 다른 왕조때보다 많이 적었다. 그러나 명나라때, 비교적 격렬한 후계자쟁탈전이라면 영락제때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후계자다툼을 영락제 주체의 편애때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정난의 .. 2013. 4. 13.
해진(解縉)의 죽음 글: 신공무기(申公无忌) 1941년, 모택동은 연안에서 글을 하나 썼는데, 제목이 <<우리를 개조하는 학습>>이다. 글에는 모택동이 글을 하나 인용했는데, 장상노위(墻上蘆葦) 두중각경근저천(頭重脚輕根底淺) 산간죽순(山間竹筍) 취첨피후복중공(嘴尖皮厚腹中空) 담장위의 갈대는 머리는 무겁고, .. 2010.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