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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영락제)

정난지역(靖難之役)의 승리는 주체(朱棣)의 두 아들 공로가 아주 컸다.

by 중은우시 2018. 7. 7.

글: 두문자(杜文子)


정난지역에서 승리하는데에는 주체의 두 아들이 큰 공헌을 했다.


주체가 "정난지역"을 일으켜 건문제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미 사십여세의 나이였다. 이 나이라면 강산을 지키거나 시찰하는 것은 몰라도, 대명제국의 최고권력을 차지하려면 무수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진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중년에 이르면 이렇게 살상이 벌어지는 전투에 나설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황제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주체로서는 도움을 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믿을만한 조력자는 당연히 자신의 아들들이다.


주체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주고치(朱高熾), 주고후(朱高煦), 주고수(朱高燧). 모두 서황후(徐皇后)의 소생이다. 그중 주체는 자신과 성격도 비슷하고 무예에 뛰어난 주고후를 더욱 좋아한다.


반대로 능문부능무(能文不能武)의 장남 주고치는 주체의 눈에 일을 맡기기에는 마땅치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너무 뚱뚱했고, 다리 하나는 절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본 다음 최종적으로 주체는 주고치를 북경에 남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군사(軍師) 요광효(姚廣孝)와 연왕비(燕王妃) 서씨의 보좌를 받아 본거지 북경을 지키게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주고후와 대장 장옥(張玉), 주능(朱能)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다.


주체의 이런 조치는 리스크가 아주 컸다. "정예장병은 모두 출정했고, 북경에 남겨둔 병력은 수로도 출정을 나간 병사의 10분의 1에 불과했고, 그것도 노약병들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하에서, 주고치는 용감하게 북경을 수비하는 책임을 완수한다. 그는 한편으로, "밤낮으로 성을 수비하는 장비와 도구를 준비했고, 성안의 병사와 백성들을 다독여서 모두 그를 좋아했다." 다른 한편으로, 아랫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주 전투지식을 가진 노병이나 재능있는 문관들에게 물어봐서 배웠다. 매일 사경에 일어나고, 이경에 휴시을 취한다. 아랫 사람들이 그에게 몸을 생각해서 너무 과로하지 알도록 권했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의 부친은 지금 장병을 이끌고 밖에서 죽음을 걸고 싸우고 있다. 나는 아들로서 이때 어찌 편안히 쉬면서 놀 수 있겠는가? 하물며 북경은 우리의 본거지이다. 적이 반드시 공격해 올 것인데,내가 어찌 준비를 잘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예상대로, 얼마후, 건문제의 조정에서는 제2차북벌의 총사령관 이경륭(李景隆)이 주고치의 부친이 요동을 원정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50만대군을 이끌고 진군하여 북경을 포위한다. 당시 북경성은 구사방어업무가 이미 완성되었다고는 하지만, 성안에서 싸울 수 있는 병사는 거의 주체가 데려간 상태였다. 남은 사람은 늙은이나 병약자나 어린이 여자들 뿐이다. 이들을 다 합쳐도 1만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경륭은 주체가 외지에 싸우러 갔다는 것을 알고는 공격을 강화한다. 주체가 되돌아오기 전에 북경성을 함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아주 위급한 상황하에서, 주고치는 전혀 두러워 하지 않고, 성안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한다. 그리고 모두 힘을 내서 싸울 수 있도록 독려한다. 당시 북경성안의 부녀자와 아아들까지도 참가한다. 성 위로 올라가 기왓장과 벽돌을 던졌다. 그렇게 이경륭 부대의 수차에 걸친 공격을 막아낸다. 이와 동시에 주고치는 일부 용사를 모아서 밤에 성을 나가 적을 기습한다.


오랫동안 공성을 진행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밤에는 다시 북경성에서 나온 용사들의 기습을 받자, 이경륭의 수하들은 힘든 상태가 된다. 그들은 쉴 수가 없었고, 피로에 지쳤다. 사기도 떨어진다. 바로 이때 요동에서 이미 대녕등 요새를 점령한 주체가 북경공방전이 벌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죽시 연군의 방향을 북경으로 향하여 맹렬히 진격한다. 이렇게 이경륭의 본진을 압박한다. 이때 주고치도 병사를 조직하여 공격한다. 이제 성아래 있던 이경륭의 군사는 졸치에 양면으로 협공을 받아야 했고, 대패하여 도망친다.


이번 전투에서, 주고치는 지휘를 적절하게 했다. 성공적으로 북경을 지켜냈을 뿐아니라, 주체의 원정승리를 위해 귀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를 보면, 그는 상당히 조직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난'4년간 주고치는 북경이라는 후방을 반석처럼 안정시켰다. 절대로 주체가 보기에 보기는 좋으나 쓸 수는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다시 주체를 따라 남하한 둘째아들 주고후를 보자. 그는 아주 용맹하고 전투를 잘했다. 주체의 '정난'을 위하여 뒤를 따르면서 적진으로 돌진하고, 오른팔이 되어 부친의 '정난지역' 과정을 끝까지 함께 한다.


네번의 아주 중요한 전투에서 정난군이 반패위승(反敗爲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고후가 국면을 전환시킨 때문이다. 그의 군사능력은 확실히 강했다. 용기와 모략으로 항상 가장 위험할 때 돌연 나타나서 번개처럼 기습하여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1. 백구하(白溝河)전투. 백구하에서 연군은 전투에서 밀려서 말은 상처입고, 화살을 떨어지고, 검도 부러져 반격할 수 없을 지경에 처한다. 주체는 하마터면 건문제조정의 대장 구능(瞿能)의 포로가 될 뻔한다. 이때 주고후가 수천의 철기를 이끌고 적시에 참가하여, 바로 달려나가 결전을 벌이고 구능을 참한다. 이를 보고 조정군대는 도망츨 치고 주체는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2. 동창(東昌)전투. 이 전투에서 정난명장 장옥이 전사한다. 주능은 손가락 2개가 잘린다. 주체는 단창필마로 도망치고, 거의 생포될 지경에 처한다. 이때 주고후가 다시 왔고, "명성조가 몸만 빼서 도망치는데, 주고후가 마침 군대를 이끌고 도착하여, 남군을 격퇴시켰다." 주고후는 다시 한번 주체를 죽음에서 구해낸 것이다.


3. 영벽(靈璧)전투. 이는 지구전이었다. 쌍방은 계속 대치하며 승부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력과 물력이 부족한 주체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이때 주고후가 기병을 이끌고 온다. 그리고 일거에 조정군대를 궤멸시킨다. 이에 주체는 기뻐서 어쩔 줄 오르고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힘이 다 했다. 네가 용기를 북돋아 다시 싸워라" 과연 주고후는 기대를 저버리지 ㅇ낳고, 말을 몰고 나가서 싸웠고, 남군이 퇴각한다.


4. 포자구(浦子口)전투. 포자구는 남경 강북의 문호이다. 장기간 달려와서 연군의 전투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주체도 힘이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건문제의 의화(議和)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을 한다. 이러한 중요한 순간에 주고후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새로 훈련한 군대를 이끌고, 조정군을 격퇴시킨다. 그리하여 주체는 순조롭게 장강을 건너고 남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네 번의 전투를 보면 주고후는 확실히 대단했다. 아마 주체도 '정난'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둘째아들의 공로가 가장 크다고 여긴 것같다. 그래서 그에게 태자의 자리까지 약속하게 된다: "열심히 해라. 세자는 병을 많이 앓고 있지 않느냐."


주체는 운이 좋았다. 이 두 아들을 데리고 강산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집안을 지킬 줄 알고, 하나는 창업을 할 줄 알았다. 이 둘이 없었더라면, 정난지역은 아마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